"열녀 나주나씨 정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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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 [[2014년]] [[9월 30일]]
|해지 =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보덕리 133-3
|시대 = 1676년(숙종 3년)
|소유 =
|면적 =
|수량 =
|지도 = 대한민국
|꼬리표 = 세종 보덕리
|위도도 = 36.635273
|경도도 = 127.270462
|문화재청 =
}}
 
'''열녀 남양홍씨 정려'''(烈女 南陽洪氏 旌閭)는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전동면]] 양곡리에보덕리에 있는 정려이다. [[2001년]] [[5월 31일]] [[연기군의 향토유적]] 제32호로 지정되었다가,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의 향토문화유산]] 제30호로 지정되었다.<ref>세종특별자치시 고시 제2014-111호,《세종특별자치시 향토유적 지정 고시》, 세종특별자치시장, 세종특별자치시 시보 제93호, 44면, 2014-09-30 </ref>
 
== 현지 안내문 ==
열녀 나씨는 본래 온순하여 효성이 지극하기로 이름이 났다. 그녀는 부부금슬이 남달리 좋았으며 시부모를 봉양하며 걱정없이 살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남편이 득병하여 수년간 병고 끝에 백약이 무효인지라 부인의 정성도 아랑곳없이 죽고 말았다. 부인은 밤낮으로 눈물로 세월을 보냈으나 죽은 사람보다 산사람을 생각하여 시부모와 어린 자식을 지극정성으로 봉양하고 키워가며 시부모의 사랑을 받았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서 시부모가 노환으로 돌아가시자 3년상을 고이 모시고 탈상후 시부모 뒤를 따라 죽으니 동리 사람들이 효성이 지극하다 하여 나라에 상소하여 1676년에 명정하여 정문을 건립해 후세의 본보기로 삼았다.<ref name="현지">현지 안내문 인용</ref>
시부모와 어린 자식을 지극정성으로 봉양하고 키워가며 시부모의 사랑을 받았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서 시부모가 노환으로 돌아가시자 3년상을 고이 모시고 탈상후
시부모 뒤를 따라 죽으니 동리 사람들이 효성이 지극하다 하여 나라에 상소하여 1676년에 명정하여 정문을 건립해 후세의 본보기로 삼았다.<ref name="현지">현지 안내문 인용</ref>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