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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시대 : [[마한]]의 54개국 중 [[불미국]](不彌國)이었다고 추정되며, [[백제]]에게 정복당하여 발라군(發羅郡)이 되었다.
* 남북국시대 : [[통일신라]]는 전국을 9주로 편제하고 발라군을 발라주(發羅州)로 승격시켜 오늘날의 전남지방을 관할하는 치소로 삼았으나 발라주는 9년 만에 다시 발라군으로 강등되고 무진군(지금의 광주)을 무진주로 승격시켜 무진주 중심의 지방편제로 개편하고 반남지역은 반남군으로 승격시켰다. 이와 함께 신라의 군사조직인 10정 가운데 미다부리정을 발라군 미동부리현에 설치하여 무진주 관내의 치안을 유지하고 토착세력을 통제하게 한다. 686년(신라 신문왕 6년) 통의군(通義郡)으로 개칭되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년) 금성군(錦城郡) 혹은 금산군(錦山郡)으로 개칭된다.
* 후삼국시대 : [[903년]] ([[태봉]] [[궁예]] 3년/[[후백제]] [[견훤]] 12년/[[신라]] [[효공왕]] 7년)에 나주(羅州)라 개칭된다. [[태봉]]/[[고려]]의 해상정복으로 [[월경지]]가 된다.
* 고려시대 : [[983년]]([[고려 성종]] 2년) 처음으로 [[목 (행정 구역)|십이목]](十二牧)을 두었는데 이 때, 나주에 '''나주목'''(羅州牧)을 두었다. 995년(성종 14)에 이르러 병마절도사를 두어 군대의 칭호를 진해군이라 하였다. 1011년(현종 2) 거란의 침입으로 잠시 피난왕도가 되었으며(기간 1011년 1월 13일~1월31일까지) 1018년 전국8목중 하나로 나주목이 되어 1895년까지 계속되었다. 나주목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5개의 속군과 11개의 속현을 거느리고 있었고, 지방관이 파견된 1부, 4군 4현의 영군현을 지휘감독하는 위치에 있었다
* 조선시대 : 세조 2년([[1457년]]) 병영의 하부조직인 거진(巨鎭)을 설치하고 진장(鎭將)인 병마사(兵馬使)는 목사(牧使)가 겸임하였으며 효종 8년(1657년) 나주거진(羅州巨鎭)을 전라우영(全羅우右營)으로 개편함으로써 우영장(右營將)을 두어 2군 8현의 군비를 장악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