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싱: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야채→채소 |
편집 요약 없음 |
||
38번째 줄:
|비고 = 촬영: [[가로세로비 (영상)|4:3]] [[SDTV]]
}}
《'''오싱'''》({{llang|ja|おしん|오신}})<ref>오싱은 별다른 의미 없이 지은 이름이기 때문에 [[한자]]가 아닌 [[히라가나]]로 표기된다. 단, 오싱이 결혼하기 전의 성인 다니무라는 谷村로 표기된다.</ref>은 [[일본]]의 [[방송]] 작가인 [[하시다 스가코]]가 쓴 역사 [[소설]]이다. 일본 현대사를 시대배경으로 한 NHK-TV 소설이 원작이므로, 한국에 빗대면 [[한국방송]] 2텔레비전 TV 소설 [[순금의 땅]], [[일편단심 민들레]]를
== 줄거리 ==
54번째 줄:
==== 첫사랑과의 만남 ====
더부살이 기간 동안 오싱은 [[여걸]](女傑)답게 여자도 배워서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고 믿는 큰방마님 구니({{llang|ja|國}})의 배려로 [[주산]],[[회계]], [[서예]], [[다도]],[[꽃꽂이]], [[요리]]를 배운다. 어느날 해변에서 오싱은 [[민중]]운동을 하다가 쫓기던 [[사회주의자]] 고우타와 만났다. 처음에는 낯설음에 경계했지만 고우타를 이해하면서 가까워진다. 이는 가요도 마찬가지여서 만나자는 [[편지]]를 읽게 된 가요가 오싱 대신 약속장소에 나가서 고우타와 [[도쿄]]로 가는 일이 벌어지고, 이 때문에 [[집]]이 발칵 뒤집히자 마음의 부담을 느낀 오싱은 가가야 일을 그만두고 집에 온다.
어느 날 오싱의 큰 언니 하루가 제사공장에서 혹사당하다 폐결핵에 걸려 집으로 온 뒤에 그녀를 보살피고 아버지의 의견과 다르게 사카다에 있는 후지에게 전보를 해 하루를 만나게 한다. (오싱은 아버지에게.수 차례.맞고 그 오빠 쇼지는 돈없다라는 한탄만 늘어놓는다)그녀가 마음속으로 연모하던 히라노를 하루에게 데리고 와서 하루의 깊은 연모의 사정을 풀게하고 히라노가 가져온 꽃을 단 한 송이라도 좋으니 말려 관에 넣어달라 한다. 그런데 아버지 사쿠조가 중개인 가츠지에게 야마가다의 큰 음식점으로 오싱을 팔려하자, 속뜻을 알아차린 하루는 "창녀로 팔려가서 우는 아이들이 많다...도망가라! 더부살이를 가려던 집이다. 제사공장이나 더부살이같은 단순노무직으로는 삶이 나아질 희망이 없다. [[기술]]을 배워서 장사를 해야 한다."라면서 오싱을 죽을 힘을 다해 설득하고 그 날 새벽 죽는다.하루의 장례식 이후 오싱은 언니의 유언이니 가야한다고 어머니 후지에게만 얘기 후 도쿄로 향한다.
==== 다카 미용실 ====
집에 돌아온 오싱은 일본 [[산업혁명|산업혁명기]] 당시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악명높던 사업체중 하나였던 제사공장<ref>제사공장은 [[실]]을 짓는 공장을 말한다. 공장안의 습기가 높은데다가 보균자를 격리시키지 않아 [[폐결핵]]에 걸릴 확률이 높아서 근무조건이 나쁘기로 악명높던 사업체였다. 대부분의 생산직 여직원들이 [[소작인]]의 딸이었는데, 이들의 부모들이 지주에게서 진 빛을 갚기 위해 선불로 임금을 받았기 때문에 이동의 자유조차도 없었다. [[소설]]속에서도 오싱의 언니 하루는 제사공장에서 혹사당하다가 [[폐결핵]]에 걸려서 죽는데, 죽기직전 동생에게 다카 미용실의 주소를 알려준다.오싱은 이 주소를 간직하고 있다가 언니가 세상을 떠나자 [[도쿄]]에 무작정 가서 다카의 제자가 된다.</ref>에서 혹사당하다가 불과 19세에 [[산업재해]] 보상도 못 받고 [[폐결핵]]으로 죽은 하루 언니를 대신하여 [[도쿄]]의 다카 전통미용실에서 일한다. 기초에서부터 단계에 따라 일을 배워가는 일본의 전통적인 직업교육에 따라 오싱은 [[청소]], [[요리]], 바느질등의 막일부터 하는데, 가가야에서 가사와 장사를 배운 덕분에 모두 잘해낸다. 청소는 꼼꼼한 성격덕분에 먼지 하나 없게 하고, 식비에 맞춰 싼 가격에 식재료를 사온 덕분에-예를 들어 [[유부]]를 사올 때 오싱은 [[두부]]집에서 만들다가 망친 유부를 사오는 방법으로 싼 값에 사온다.-, [[단무지]]에 [[밥]]을 먹던 초라한 [[저녁]]밥상이 [[채소]]유부[[볶음]]과 [[생선]]조림을 먹는 맛있는 밥상으로 바뀐다. 이렇듯 영리한 오싱을 다카는 눈여겨본다. 마침 시간이 오래걸리는 일본 [[전통]]미용이 단순한 [[서양미용]]에 밀려 쇠퇴하기 시작하자, 다카는 오싱에게 서양[[미용]]을 권하고, 덕분에 오싱은 까페 [[웨이트리스]]들의 머리를 만져주는 출장 [[미용사]]로 독립한다. 웨이트리스들은 손님들을 상대로 영업해야 하는 일의 특징때문에 매우 바쁜 삶을 살면서도, 오싱이 [[하숙]]을 구하자 살림살이를 구해줄 만큼 정이 많은 사람들이어서 다른 미용사들의 질투로 외롭게 살았던 오싱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줄 62 ⟶ 60:
=== 시집살이 편 ===
==== 결혼 ====
출장 [[미용사]]로 활약하던 오싱은 자신에게 가가야 [[쌀]]도매점 후계자로서의 삶을 강요하는 부모님의 억압을 피해,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지못한 다른 여급들이 "
==== 시집살이 ====
줄 98 ⟶ 96:
=== 가가야 ===
**
{{인용문2|너, 그렇게 의욕이 없는 아이였느냐? 가요 어멈이 싫은 소리 몇 마디 했겠지. 그렇게 배짱이 없어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 나는 네가 여자이지만 독립해서 자신의 힘으로 살도록 했던 거다. 너 가난이 얼마나 뼈저린 것인지 알지? 그렇다면 다시는 그런 비참한 꼴을 안 겪게 고생이 되거나 힘이 들더라도 자신의 처지를 바꾸려고 힘써야지. ([[회계]]와 더불어 장사를 하려면 배워야 하는)[[주산]]과 (글씨를 읽기 좋도록 단정하게 쓰는)[[붓글씨]]정도는 할 수 있어야 힘든 세상살이를 할 수 있는 게야. 너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겨라. 시시한 일로 기가 죽지 말고 자신의 미래를 만드는데 욕심을 내야 한다.}}
이 말은 오싱이 자신의 힘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여 훗날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여장부가 되게 한다.
* '''미노, 기요타로''':구니의 아들과 며느리. 자신의 딸을 전봇대에 깔릴 위험에서 구출해준 사건을 계기로 오싱을 자신들의 딸처럼 대한다. 자비로운 성정을 갖고 있어서 하인과 하녀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오싱이 어려울 때마다 능력에 닿는 대로 돕는다. [[불경기]]와 사위의 [[주식]]투자로 가가야가 망하자 병이 생겨서 죽고, 가요마저 죽는 불행을 겪지만 오싱이 이들의 [[유골]]을 자신의 [[집]]이 있는 이세에 [[일본]]의 [[전통]]적인 관습<ref>일본에서는 [[막부]]에서 [[기독교]]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기독교인]]과 비 기독교인 모두 [[장례]]를 치를때 [[불교]] 승려가 치르도록 강제했는데, [[전통]]으로 굳어졌다.</ref>에 따라 [[불교]] 승려의 도움으로 장례를 치른 덕에 안식을 누리게 된다.
* '''가요''':구니에게는 손녀, 미노와 기요타로에게는 큰 딸이다. 가가야의 후계자가 될 몸이라 곱게 자란 가요가 응석받이가 될 것을 구니할머니는 매우 염려했다. 그래서 "오싱은 가요와 동갑이지만, 할머니와 동생들의 생활비를 벌려고 노동한다"라고 말했다. 가사노동을 하는 오싱과 자신을 비교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에 화가 난 가요는 혼자서 학교에 가고 [[소학교]] [[교과서]]도 열심히 읽는다. 당연히 [[여학교]]에 진학할 정도로 성적이 좋아진다. 똑똑한 가요는 할머니와 "왜 오싱은 나와 같은 나이인데 학교에 가지 못하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소득불평등이 교육불평등으로 이어지는 불평등사회를 진지하게 생각할 정도로 생각이 자란다. 이를 보면서 구니 할머니는 손녀의 마음이 자람을 흐뭇하게 생각한다. 집안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던 시대에 일본 여성 [[인권]] 운동가 하라즈카 라이초 등의 여성 해방 운동가들의 영향으로 [[서양화]]를 배워서 [[화가]]가 되겠다는 자세한 진로 설계를 하고,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해변에 나가 그림 공부에 몰두할 만큼 독립 정신이 강한 여성이다.<ref>“원시 여성은 태양이었다. 진정한 사람이었다. 지금 여성은 달이다. 타인에 의존하여 살고 타인의 빛에 의해 빛나는 병자와 같이 창백한 얼굴의 달이다.” 라는 하라즈카 라이초의 글이 인용되어 있음.</ref> 하지만 그의 진로 설계는 후계자를 강요하는 어른들과의 갈등 끝에 좌절되어 억지로 [[결혼]]하고, 애정이 없는 결혼생활과 배우자의 무리한 [[주식]]투자에 따른 가가야의 몰락으로 불행하게 살다가, 윤락가에서 [[질병|병]]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그의 아들 노소미는 가요의 친구인 오싱이 고생끝에 키운다. 서양화 화가가 되겠다는 분명한 목적과 이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실제 고우타와 오싱은 가요가 그림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있음을 인정한다.)보수적인 시대 탓에 자신의 뜻대로 살지 못한, 불행한 여성이다.
=== 도쿄의 사람들 ===
* '''다카''':하세가와 미용원 원장. [[일본]]의 전통 [[미용]]을 하는 [[미용사]]이다. 오싱이 일을 배우러 온 날 제자들의 우두머리인 도요가 반대하자,오싱의 삶이 달린 문제라면서 받아들인다. 또한 오싱에게는 "솜씨가 안 좋거나 일이 느리더라도,뭐든지 하려는 사람은 몇 명이라도 제자로 둘 생각이야."라고 말한다. 다카는 밑바닥에서부터 일을 배워나가는 일본의 전통적인 [[직업]]교육방식을 깨고, 영리하고 손재주가 좋은 오싱에게 손님의 머리를 빗겨드리는 빗잡이를 맡기는데, 경쟁관계인 다른 미용사들의 반발로 무산된다. 그래서 전통미용은 익히지 못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는 서양미용을 배워서 출장미용을 나갈정도의 실력을 갖춘다. 이를 본 다른 미용사들이 질투와 시기를 하자, 다카는 방을 구해서 오싱을 독립시킨다. 오싱이 어려울때마다 도와주었다.
* '''리쓰''':다카 원장의 제자. 1904년 생. 12세에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오싱이 처음 왔을때는 [[경쟁]]자로 생각해서 멀리했지만, 남을 배려하는 오싱의 자상한 마음에 감동받아서 언니로 따른다. 1923년 지진 후 독립하여 자신의 미용원을 차린다.
* '''겡''':본명은 나카자와 겡({{llang|ja|中沢健}}). 데키야의 두목. 원단을 처분하기 위해 무허가로 노점상을 차린 오싱과 싸움이 붙지만, 곧 오싱의 배짱에 감탄하여 원단을 팔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후 오싱이 도쿄에 왔을 때마다 도와주었다. 오싱이 사카다에서 밥집 장사를 할 때 진상을 부리던 건달들에게 진기(仁義, 노름꾼·노점상 등이
* '''소메코''':[[커피집|카페]] '아테네'의 종업원. 미용사 시절 오싱이 처음으로 받게 된 손님이다. 처음에는 오싱이 해 준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화를 내면서 돌아갔다가, 가게에서 그 머리 모양의 평이 좋아 단골손님이 된다. 류조에게 보낼 [[편지]]를 오싱에게 대필을 부탁한 적도 있었고, 이 일이 오싱과 류조가 만나는 계기가 되었으며, 후에 카페 [[지배인]]에게 부탁하여 다른 종업원들과 함께 둘의 결혼을 축하하는 잔치를 마련해주는 등 친하게 지냈다. 오싱이 하숙집을 구해서 독립할 때에도 [[이불]], [[주전자]], [[찻잔]] 등의 살림살이를 마련해주었다. 미용기술을 배우느라 돈벌이를 못한 처지를 헤아린 것이었다. 하지만 [[1923년]] [[간토 대지진|관동대지진]] 후 소식이 끊기고 만다.
줄 125 ⟶ 124:
=== 다노쿠라 가(아들과 딸 그리고 며느리) ===
* '''유''':오싱의 장남. [[1923년]] 1월 14일생.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고생하는 모습을 봐 왔으며, 누구보다도 어머니를 생각한다. 한때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하려고 했지만, 쥰사쿠 오빠의 영향으로 [[평화주의자]]인 어머니의 반대로 단념하고 교토의 [[고등학교]]로, 그리고 [[교토 대학|교토제국대학]]으로 진학한다. [[제2차 세계대전]]때 [[장교]]로 복무하다가 [[전사]]하였다. 굶주림끝에 쓰러졌는데, [[일본군|일본군에]] 저항하던 [[원주민]]들을 만났던 것. 소설 [[데프콘 (소설)|데프콘]]으로 유명한 작가 [[김경진]]씨에 따르면, 일본군의 필리핀 침략으로 [[마닐라]]에서만 10만명이 죽었다고 한다. 당연히 일본군 장교인 유를 만난 원주민들이 그를 살려두었을리는 없었다. 사관학교 친구인 가와무라 상이 전해준 일기장에는 유가 어머니를 매우 그리워한 이야기가 있다. 필리핀에서 군복무를 한 유는 먹을 것이 없어서 물을 마시며 겨우 견뎌내었고, 어머니가 한 [[카레라이스]], [[경단]], [[주먹밥]]을 그리워했다.
* '''히토시''':오싱의 차남. [[1929년]] 10월생. 전쟁 때 특공대에 지원하지만, 출격하기 전에 전쟁이 끝나면서 목숨을 건지게 된다. 욕심이 많고 고객의 니즈(Needs)를 읽어내는 상술로 다노쿠라 상점을 크게 성장시켰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윤리]]에 어긋나든 말든 간에 비열한 방법까지 쓰는 [[우상]]숭배자로 타락한다. 그제서야 오싱은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라고 후회했다. 그래서 [[사업]]이 큰 가게가 들어서서 어려워지자 일부러 돕지 않는다. 히토시는 전쟁후에 같이 고생하고 살아온 형제들에 대한 의리로 하쓰코 누나와 노소미의 [[수예]]가게 개점과 [[도예]]사업을 [[가게]]를 구해주고, 상점에 [[도자기]] 매장을 만들어서 돕는다.
* '''데이''':오싱의 막내딸. [[1936년]] 2월 26일생. [[대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실력이 있어도 인정받지 못하는 학력[[차별]]을 경험한 오빠 히토시가 열심히 뒷바라지를 한 덕분에 [[대학교]]까지 다녔다.
줄 134 ⟶ 133:
* '''다쓰노리''': 오싱의 사위. 히토시와는 해군시절 선,후배 사이였고, 지금은 데이와 결혼하여 다노쿠라 상점을 꾸려나가고 있다. 성격이 착해서 성실하게 가게 일을 도왔던 터라 오싱은 다쓰노리의 노고에 고마워한다.
* '''다케시''':오싱의 큰 손자. 형제로는 두 여동생이 있다. 한때 [[빠칭코]]에 손댈 만큼 방황했지만, 다노쿠라 슈퍼의 영업부장으로서 아버지의 사업을 돕는다.
* '''게이''':오싱의 둘째 손자. 노소미와 유리 사이의 외아들이다 .엄마가 [[교통 사고|교통사고]]로 돌아가신터라 큰아버지 히토시와 할머니 오싱으로부터 귀여움을 받으면서 자랐다. [[대학교]]에서
* '''아카네''':오싱의 큰 손녀. 다노꾸라 상점의 한 직원과 혼담이 오갔으나, 상점이 어려워지자 주변에 이와 같은 상황을 소문내고 회사를 그만두자 무기력한 생활을 한다. 히토시와 미치코가 이혼을 한다고 했을 때 집안일을 모르는 아버지와 함께 살려고 했으며, 나중엔 그만 뒀던 회사까지 다니면서 부모님을 도우려고 한다.
* '''미도리''':오싱의 작은 손녀. 세상물정 모르는 대학생이지만 다노꾸라 상점이 어려워 진 이후
=== 사부인과 사돈어른 ===
줄 143 ⟶ 142:
=== 그 외의 인물 ===
* '''가와무라''':유의 복무시절 전우. 오싱과 하쓰코가 유의 면회를 갔을 때 처음 만났다. 종전 직후, 유의 유품인 일기장을 전해 주었으며 그로부터 몇 년 후 큰 돈을 벌게 되어 오싱에게 아들 대신으로 효도한다는 뜻으로 오싱에게
== TV 드라마 정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