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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
1945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5년 전,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맞은 [[한반도]]는 해방 직후 타의에 의해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
된 것이다.”--></ref> 을 하는 등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 원조를 최소화해 나갔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미국은 소련 공산권과의 직접적인 군사 충돌이 제3차 세계대전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국제적인 정세를 고려하였으며, 소련 역시 그러한 이유로 북한에 대한 공개적인 지원을 중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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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한국의 군정기}}
{{출처 필요 문단|날짜=2019-06-25}}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
그리고 남북분단 후 [[미소공동위원회]]와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1950년까지 [[영국]], [[중화민국]], [[미국]], [[소련]]이 [[신탁 통치]]를 하는 내용도 있는데 즉, 38선을 경계로 남쪽엔 [[영국]]과 미국이, 북쪽엔 [[중화민국]]과 소련이 점령하기로 했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옛날 백제의 수도가 [[부여]]였을 때에 백제의 영토를 [[영국]]이 점령하고, 나머지 38선 이남은 [[미국]]이 점령하기로 했다. 38선 북쪽으로선 개마고원을 경계로 [[평양]], [[개성]], [[남포]], [[신의주]], [[해주]]을 포함한 서부 지역은 [[중화민국]]이 동부 지역 [[원산]], [[금강산]], [[함흥]], [[흥남]], [[장진]], [[혜산진]], [[청진]], [[나진]]을 포함한 곳은 [[소련]]이 점령해서 5년 간 신탁 통치를 하기로 한 것이다. 1949년에 [[국공 내전]]에서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상황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배력 강화와 전쟁준비 교섭 ====
{{참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한국 전쟁의 준비}}
[[김일성]]은 [[조선로동당]]의 일당독재를 기반으로 반대파([[민족주의자]], [[종교]]인 특히 북한 수립 이전 융성하던 [[개신교]], [[지주]], [[마름]], [[기업가]], [[기술자]] 등을 포함한 상당수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에 대한 철저한
1949년 2월 스탈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49년 8월 12일, [[김일성]]과 [[박헌영]]은 대한민국이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평화적 통일안을 거부하고 있으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남공격을 준비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에서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대규모 [[민중봉기]]가 분명히 뒤따를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만약 대남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인민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많은 친북 ‘민족인사’들을 투옥시켰지만 북한은 아직도 대한민국에서의 봉기를 조직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72100289104003&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07-21&officeId=00028&pageNo=4&printNo=1959&publishType=00010 |제목 = 러시아 ‘한국전쟁 관련 외교문서’<1> |출판사 =한겨레신문 |날짜 = 1994-07-21 |쪽 = 5 |인용문 = <!-- ◇ 대남공격 제의 △ 49.8.12= 김일성과 박헌영은 대한민국이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평화적 통일안을 거부하고 있으므로 북한은 대남공격을 준비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되면 남한에서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대규모 민중봉기가 분명히 뒤따를 것이라고 언급했음을 보고. 김일성과 박헌영은 만약 대남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인민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 그들에 의하면 이승만 대통령이 많은 친북 ‘민족인사’들을 투옥시켰지만 북한은 아직도 남한에서의 봉기를 조직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함. -->}}</ref> 이는 1949년 [[남조선로동당]] 등의 대한민국 내부의 [[공산주의자]]들이 반공정권이었던 [[이승만]] 정권의 [[공산주의]] 탄압에 의해 대대적으로 검거되었다는 것을 대한민국에서 온 [[공산주의자]]들의 허위보고로 생각한 까닭이었다.<ref>{{뉴스 인용 |url=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5&art_id=201006301514131 |제목 = <nowiki>[2010연중기획]</nowiki>한국전쟁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 |출판사 = [[경향신문사]]: [[주간경향]] |저자 = [[박태균]] |날짜= 2010-07-06 |인용문= <!--1950 년 초 북한의 조선노동당에서 이뤄진 제반 보고에서는 북한이 남한의 이른바 ‘혁명역량’에 대해 너무나 큰 오산을 하고 있었음이 잘 드러난다. 남한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가 월북한 공산주의자들은 1950년 초 북한에서의 보고를 통해 남한에 수많은 혁명분자가 있다고 보고했다. 북한이 전쟁을 개시할 경우 남한의 혁명 세력은 모두 봉기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ref> 1949년 8월 27일, 북한 주재 소련 대사 [[스티코프]]는 8월 12~14일의 김일성과의 면담내용을 스탈린에게 보고하고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북한의 대남공격이 불가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1. 현재 한반도에는 두 나라가 존재하며 그중 대한민국은 미국 및 기타 국가에 의해 승인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격시 미국은 대한민국을 무기탄약 공급뿐 아니라 일본군의 파견을 통해 지원할 가능성이 있음.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남공격은 미국이 대소련 모함∙선전에 이용할 수 있음. 3. 정치적 측면에서 북의 공격은 남북한 인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으나 군사적 측면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아직 대한민국에 대해 압도적 군사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 4. 대한민국은 이미 상당수 강한 군대와 경찰력을 창설하였음에도 소련의 지원하에 있는 조선인민군에 비하여 약세에 있었다.(스티코프는 김일성이 제의한 강원도 지역의 '해방구역' 창설계획에는 찬성하고 또한 인민군에 의한 옹진점령계획도 군사적으로 타당하다고 보고했으나 남한의 반격시 이 작전이 지구전이 돼버릴 수 있다고 언급)<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72100289104003&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07-21&officeId=00028&pageNo=4&printNo=1959&publishType=00010 |제목 = 러시아 ‘한국전쟁 관련 외교문서’<1> |출판사 =한겨레신문 |날짜 = 1994-07-21 |쪽 = 5 |인용문 = <!-- ◇ 대남공격 제의 △ 49.8.27= 슈티코프 대사는 8월12~14일 면담내용을 스탈린에게 보고하고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북한의 대남공격이 불가하다고 결론을 내림. 1. 현재 한반도에는 두 나라가 존재하며 그중 남한은 미국 및 기타 국가에 의해 승인됨. 북의 공격시 미국은 남쪽을 무기탄약 공급뿐 아니라 일본군의 파견을 통해 지원할 가능성이 있음. 2. 북의 대남공격은 미국이 대소련 모함∙선전에 이용할 수 있음. 3. 정치적 측면에서 북의 공격은 남북한 인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으나 군사적 측면에서 북은 아직 남에 대해 압도적 군사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 4. 남한은 이미 상당수 강한 군대와 경찰력을 창설하였음.(슈티코프는 김일성이 제의한 강원도 지역의 '해방구역' 창설계획에는 찬성하고 또한 인민군에 의한 옹진점령계획도 군사적으로 타당하다고 보고했으나 남한의 반격시 이 작전이 지구전이 돼버릴 수 있다고 언급)-->}}</ref> [[스탈린]]에게 제출한 9월 15일자 보고서에서, 스티코프는 “[[김일성]]과 [[박헌영]]은 현 정세하에서는 평화통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북이 남한 정부를 무력공격하면 남북양쪽의 인민들이 이를 지지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지금 무력통일을 안하면 통일이 연기될 뿐이고 그동안 남한 정권은 좌익세력을 탄압하면서 북진할 수 있는 강력한 군대를 만들어 통일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일성은 남진을 시작할 때 소련과 중공이 원조해줄 것을 기대하는 듯하다.”고 썼다. 그의 견해는 남북의 내전은 북에 유리하나 북한군이 남한 공격을 개시하면 소련이 국제적 비난을 받게 되며 미국이 끼어들 것은 물론 남한을 적극 지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 물론 북한이 남한에서 빨치산 활동을 강화하는 것은 좋다. 옹진작전은 유리한 상황하에서는 실시 가능하고, 이를 위해 38선 지역에서 남쪽의 도발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72100289104003&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07-21&officeId=00028&pageNo=4&printNo=1959&publishType=00010 |제목 = 러시아 ‘한국전쟁 관련 외교문서’<1> |출판사 =한겨레신문 |날짜 = 1994-07-21 |쪽 = 5 |인용문 = <!-- ◇ 슈티코프 보고서 △ 49.9.15= 슈티코프 대사가 스탈린에게 제출한 한반도 상황 보고서 – 김일성과 박헌영은 현 정세하에서는 평화통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북이 남한 정부를 무력공격하면 남북양쪽의 인민들이 이를 지지할 것이라고 믿고 있음. 그리고 지금 무력통일을 안하면 통일이 연기될 뿐이고 그동안 남한 정권은 좌익세력을 탄압하면서 북진할 수 있는 강력한 군대를 만들어 통일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음. 김일성은 남진을 시작할 때 소련과 중공이 원조해줄 것을 기대하는 듯함. - 슈티코프 대사의 견해는 남북의 내전은 북에 유리하나 북한군이 남한 공격을 개시하면 소련이 국제적 비난을 받게 되며 미국이 끼어들 것은 물론 남한을 적극 지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임. 물론 북한이 남한에서 빨치산 활동을 강화하는 것은 좋음. - 옹진작전은 유리한 상황하에서는 실시 가능함. 이를 위해 38선 지역에서 남쪽의 도발을 이용할 수 있음. -->}}</ref> 그러나 이에 대해서 [[소련 공산당]] 정치국 중앙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침이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시문을 [[스티코프]]를 경유하여, 김일성에게 전달하였다.(1949년 9월 24일)<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72100289104003&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07-21&officeId=00028&pageNo=4&printNo=1959&publishType=00010 |제목 = 러시아 ‘한국전쟁 관련 외교문서’<1> |출판사 =한겨레신문 |날짜 = 1994-07-21 |쪽 = 5 |인용문 = <!-- ◇ 슈티코프 보고서 △ 49.9.24= 공산당 중앙위는 평양주재 대사에게 현재의 대내외적 상황으로 보아 남한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지침을 하달.-->}}</ref><ref>김영호, 《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과정》 (성신여자대학교출판부, 2006) 138쪽. <!--“1949년 9월 24일 북한의 남침이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소련공산당 정치국의 지시문이 김일성에게 하달된 후,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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