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대피라미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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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대피라미드'''({{llang|en|Great Pyramid of Giza, Pyramid of Cheops}})는 [[이집트]] [[기자 (이집트)|기자]]에 있는 [[피라미드]] 중 하나이다. [[기원전 2560년]] 무렵 세워진 '''[[쿠푸]]의 피라미드'''({{llang|en|Pyramid of Khufu}})로 완공에는 약 20년이 걸렸다.<ref>Oakes, Lorana; Lucia Gahlin (2002). Ancient Egypt. Hermes House. {{ISBN|1-84309-429-0}}.</ref> 피라미드 중 가장 큰 피라미드이기에 '''대 피라미드'''라고도 불린다. 바로 옆에 아들 및 손자 파라오의 피라미드가 있다. 파라오 3대의 피라미드가 있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스핑크스 (유적)|스핑크스]]가 기자의 피라미드 군 앞에 있다. 대 피라미드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자, 목록 중에서 유일하게 현존하고 있다.
'''기자의 대피라미드'''({{llang|en|Great Pyramid of Giza, Pyramid of Cheops}})는 [[쿠푸]]의 대피라미드라고도 부르며, [[이집트]] [[기자]]에
 
== 역사 ==
위치하고 있다. 이집트 기자의 세 피라미드들 중 가장 거대하고 오래된 피라미드이며,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며,
[[이집트 제4왕조]]의 [[파라오]]인 [[쿠푸]]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대피라미드는 기원전 2560년경 14년<ref>John Romer, in his The Great Pyramid: Ancient Egypt Revisited notes "By themselves, of course, none of these modern labels define the ancient purposes of the architecture they describe.</ref> 에서 20년간에 걸쳐 완공되었다. 쿠푸의 [[와지르]]([[:en:Vizier (Ancient Egypt)|Vizier]])였던 [[:en:Hemiunu|헤미우누]]가 건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f>Shaw, Ian (2003). The Oxford History of Ancient Egypt. Oxford University Press. {{ISBN|0-19-815034-2}}.</ref>
 
1311년 [[잉글랜드]]에 [[링컨 대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약 3,800년간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ref>Collins, Dana M. (2001). The Oxford Encyclopedia of Ancient Egypt. Oxford University Press. {{ISBN|978-0-19-510234-5}}.</ref>
그들 중 가장 오래되었고, 현존하는 유일한 건축물이다.
 
== 구조 ==
높이는 약 147[[미터]]이며, 밑변의 길이는 약 230[[미터]]이다. 고대 이집트의 단위로는 높이 280 큐빗, 한변의 길이 440 큐빗이 된다. 고대 이집트의 1 큐빗은 0.542[[미터|m]]에 해당한다.<ref>Dilke, O.A.W. (1992). Mathematics and Measuremen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ISBN|0-520-06072-5}}.</ref> 원래 꼭대기에는 [[금]]으로 만든 피라미드석이 있었는데 도난당해 지금은 마치 윗면이 작은 [[사다리꼴]]이다.
 
쿠푸의 대피라미드를 짓는 데 들어간 [[돌]]의 전체 무게는 약 5900만 [[톤]]으로 추정되며, 약 230만개의 [[석회암]]과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은 돌은 2[[톤]] 정도이지만 큰 돌은 한개의 무게가 무려 50[[톤]]에 달한다. 그리고 평균 돌의 무게는 2.5[[톤]]이다.
피라미드 내부의 방에 새겨져 있는 기록에 따르면, 대피라미드는 이집트 고왕국 제4왕조 시대에 [[파라오]] 쿠푸에 의해 지어졌다.
 
== 피라미드 안의 구조 ==
약 146.5m의 높이를 자랑하고, 1311년 [[링컨 대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진 약 3800년 동안 인간이 만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이었다. 대피라미드는 본래 매끄러운 석회암 외벽으로 덮여있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훼손당했고,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안쪽에 위치했던 돌들 뿐이다. 대피라미드 건축 과정에 사용된 건축 기술에 관해서는 다양한 학설들이 존재하지만, 가장 주요
 
학설은 채석장에서 돌들을 채취하여 돌들을 끌어올려 지었다는 설이다.
 
 
피라미드 내부에는 총 3개의 방이 있다. 첫 번째 방은 피라미드의 기반암 속에 위치하여 있으며,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다.
 
나머지 두 방은 '왕비의 방'과 '왕의 방'이라고 불리는데, 피라미드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피라미드 주위에는 파라오 쿠푸를
 
추모하는 2개의 신전이 피라미드 주변에 1개, 나일 강 어귀에 1개가 있으며, 쿠푸의 왕비가 묻혀있는 소규모 피라미드가 3개가
 
지어져 있다. 2개의 신전은 작은 참배로로 인해 연결되어 있고, 조그만 당시 권력자들의 [[마스타바]]가 주변에 묻혀있다.
 
 
== 설명 ==
대피라미드는 파라오 쿠푸(혹은 케옵스라고도 불린다.)에 의해 고대 이집트 4왕조 시대에 지어졌으며, 약 20년 동안 건축되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집트의 재상이었던 '헤미우누'가 설계한 것으로 생각된다. 피라미드가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그 높이가 약 146.8m였을
 
것이로 추정되나, 후에 지반이 침하되거나 돌들이 깎여나가며 현재는 138.8m이다. 피라미드 아랫면의 길이는 모두 230.4m이며, 질량은
 
약 590만 톤에 달한다.
 
 
피라미드에 대한 산술적 측정은 1800년도에 처음으로 이루어졌는데, 당시 이 발표를 바탕으로 출간된 책의 계산은 실제 피라미드의 값과
 
굉장히 유사하며, 또한 피라미드 내부의 방과 밀도에 관해서도 놀랄만큼 정확한 측정이 이루어졌다.
 
 
피라미드는 약 3800년 간 인간이 만든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는데, 이 기록은 영국에 링컨 대성당이 160m의 높이로 세워지며 깨지게 되었다.
 
피라미드는 놀랄 만큼 정교한데, 네 면의 길이가 모두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며, 오차는 겨우 58mm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피라미드는 약
 
0.6mm의 오차로 거의 완벽한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네 면의 방향은 모두 정확히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어, 당시 고대인들의 놀라운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는 단적인 예이다.
<br />
 
== 재료 ==
피라미드는 약 230만 개에 이르는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바위들은 모두 인근 채석장에서 끌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라미드의 외벽용
 
석회암은 나일 강을 통해 멀리서부터 운반해왔을 것으로 알려졌다. 피라미드에서 가장 큰 바위는 왕의 방을 이루는 바위인데, 약 80톤에 이르며
 
800km나 떨어져 있는 [[아스완]]의 채석장에서부터 운반되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바위의 가공을 금속 끌과 나무 쐐기로만 진행했다. 끌로 나무 쐐기를
 
바위에 박은 후, 물을 부으면 쐐기가 이를 흡수하여 팽창하게 되는데, 이 힘으로 바위를 쪼갠 것으로 생각된다. 바위를 쪼개낸 이후에는, 배를 통해
 
나일 강으로 피라미드까지 운반하였을 것이다. 대피라미드 제작에는 약 550만 톤의 석회암, 아스완에서 채굴된 8000톤의 [[화강암]], 50만 톤의 모르타르가
 
사용되었다. 가장 작은 돌의 크기는 2톤이고, 평균적인 돌의 크기는 약 2.5톤이다.
 
=== 외벽 ===
고대 이집트 당시 대피라미드는 하얀색의 외벽으로 감싸져 있었다. 이들은 모두 매끄럽게 광을 낸 순백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기원후 1303년에 대지진이 일어나 외벽의 구조 자체를 흔들었고, 당시의 술탄이 성과 요새, 사원들을 짓기 위해 1356년에 외벽의 석회암들을
 
대거 벗겨 갔다. 그후 19세기에 이집트 총독 알리 파샤가 [[카이로]]에 모스크를 짓기 위해 남아 있는 석회암 외벽을 거의 다 벗겨가면서,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계단형의 헐벗은 피라미드의 모습 뿐이다. 현재 피라미드의 외벽을 이루던 석회암들은 카이로의 모스크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고,
 
발굴 도중 발견된 피라미드 발치에 위치한 외벽의 잔해 일부가 남아있다.
<br />
 
=== 피라미드석 ===
피라미드석은 본래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얹혀진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피라미드 전체의 완공을 뜻하는 기념비적인 역할을 하였다. 본래 쿠푸의
 
대피라미드에도 황금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피라미드석이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도난당해, 지금은 윗면이 평평하다.
<br />
 
=== 건축 방법 ===
대피라미드의 건축 방법은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온 주제이다. 가장 주목받는 학설은 이 돌들이 인력에 의해 끌어지거나 굴려서 제 위치에 쌓였다는
 
것인데, 이 주장에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피라미드가 노예들을 착취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했으나, 현대의 조사에 의하면
 
약 1만명에 달하는 숙련된 노동자들이 피라미드를 지었다고 한다. 1만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은 숙련도에 따라 5개의 계급으로 분류되었고, 이 계급에 따라
 
봉급, 대우 등이 달랐다고 한다.
<br />
 
== 피라미드 내부 구조 ==
피라미드에는 두 개의 입구가 있는데, 하나는 가짜 통로로 통하는 입구, 하나는 현재 쓰이고 있는 9세기 초반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마으문|알 마아문]]이 보물을 찾기 위해 뚫은 통로이다.
 
입구를 통과하고 오르막길을 오르면, 피라미드 내 좁으면서 길고 높은 거대한 [[대회랑]]이 나온다. 이곳에는 현재 용도를 알 수 없는 세로 홈이 있는 벽이 있다. 대회랑의 끝에 파라오파라오의 무덤 방이 있다.
 
의 무덤 방이 있다.
 
=== 왕의 방 ===
[[파일:Great Pyramid Diagram.svg|섬네일|300픽셀|피라미드의 구조]]
 
왕의 방은 [[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건물의 중간에 있는 텅 빈 공간이다.따라서 방 주위가 아무리 단단한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하더라도 위에서 내리누르는 힘을 견디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 [[석회암]] 1m<sup>3</sup>의 무게는 2.6[[톤]]으로 왕의 방의 지붕은 1m<sup>2</sup> 당 무려 254.8[[톤]]의 무게를 받는다. 그래서 피라미드 설계자들은 조금이나마 돌들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돌 위에 돌을 쌓아 무게를 분산시켰다.
왕의 방은 동서로 10.47m이고, 남북으로 5.234m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 방의 높이는 약 5.852m이고, 남쪽과 북쪽에
 
이름은 비록 왕의 방이지만, 현재 용도를 알 수 없는 방이다. 왜냐하면 왕의 방에 들어가면 중간에 있는 [[관]] 빼고는 특별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이 방이 왕의 방이 아니라 단지 도굴꾼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알 마아문]]이 들어갔을 때도 [[보물]]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조그만 구멍들이 나있는데, 이들 중 한 개는 현재 통풍을 위해 조그만 환풍구가 설치되어 있다. 이 구멍들의 용도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하늘의 별들을 가리킨다는 것과, 그저 통풍의 용도로 만들어졌다는 학설들이 존재한다. 오랜 기간 동안
 
통풍용 구멍이었을 것이라는 학설이 유력했으나, 현재는 왕의 영혼을 하늘로 올려보내는 의식에 쓰였을 것이라는 학설이
 
우세한 편이다.
 
 
왕의 방은 완전히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왕의 방의 천장을 이루는 9개의 바위가 약 400톤에 이르는 무게를 떠받치고
 
있고,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5개의 방들이 위쪽에 존재한다. 아래 4개의 방은 평평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맨 위의
 
방은 뾰족한 형태를 갖고 있다. 이 방들은 혹시 모를 왕의 방의 붕괴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방들을 이루는 돌들은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어떤 방의 돌에는 당시 석공의 표시자국이 그대로 남아있기까지
 
하다.
 
 
왕의 방에 있는 유일한 물건은 한쪽 모서리가 깨진 화강암 관이다. 이 관은 방으로 통하는 통로보다 약간 더 크기 때문에,
 
통로가 아직 다 지어지기 전, 그러니까 피라미드가 지어지는 도중 이 위치에 놓아졌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왕의 방을 이루는
 
벽들이 제대로 마감된 것과는 달리, 이 석관은 거칠게 다듬어졌고, 석공의 줄질 자국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어느 학자는
 
원래의 관을 아스완에서 실어왔지만, 도중 침몰하여 어쩔 수 없이 제대로 마감되지 못한 관을 대신 쓴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br />
 
=== 왕비의 방 ===
왕비의 방은 역시 [[돌]]로 만들어졌으며, 아직 용도를 알 수 없는 방이다. 동서로 5.7[[미터]]이고, 남북으로 5.2[[미터]]이며 높이는 6.2[[미터]]이다.
왕비의 방은 정확히 피라미드의 남쪽과 북쪽 면의 중간에 위치하여 있다. 남북으로 5.75m, 동서로 5.23m의 크기를 가지고
 
현재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있다. 지붕은 뾰족하게 경사져 있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높이는 약 6.23m이다. 방의 동쪽 부분에는 거대한 틈새가 있다.
 
본디 그 깊이가 1.04m였는데, 도굴꾼들에 의해 그 크기가 더 벌어졌다.
 
 
왕비의 방 옆쪽에는 수직 갱이 존재하는데, 왕의 방과는 다른 구조를 취하고 있다. 양 옆의 벽들이 경사지기 전에 약 2m정도
 
수직으로 뻗어있다는 것도 왕비의 방에서만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왕의 방에서도 비슷한 수직 갱들이 후대의 발굴에 의해
 
발견되었으나, 이 수직 갱들은 바깥이나 다른 방들로 통하지 않았고, 그 안에는 구형의 돌조각과 함께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청동 덩어리가 나왔고, 이 것들은 현재 [[대영박물관|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왕비의 방에 있는 수직 갱들은 1993년에 조종 로봇에 의해 탐험되었는데, 이 로봇이 올라가던 도중 이 갱들이 석회암으로 된
 
문으로 막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 2000년대에 이 문을 뚫고 들어갔으나, 뒤에 또다른 문이 존재해 더이상 발굴을 진행할 수 없었고,
 
다른 수직 갱은 그 구조가 복잡할 뿐더러 석회암 문에 의해 막혀 있어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2011년에 특수제작된 카메라를 사용하여, 전에 뚫은 구멍을 통하여 석회암 문 뒤에 있는 방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방에는
 
붉은색으로 쓰인 상형문자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또한 그들은 석회암 문에 붙어있었던 청동 손잡이들이 그저 장식용이었으며,
 
방을 이루는 돌들이 모두 세심하게 광을 내었고, 아름답게 손질한 흔적을 통해 이 방들이 모두 무언가 특별한 이유로 인해 고의적으로 만들어
 
졌음을 밝혀내었다.
 
<br />
 
=== 대회랑 ===
대회랑은 피라미드 내부에 있는 거대하고 긴 통로인데, 약 8.6m의 높이이고 46.68m의 길이를 자랑한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천장과 바닥에 있는 바위들이 서로 정확히 일치하게 만들어졌고, 대회랑의 벽들이 무게를 나누어 떠받침으로써, 혹시 모를 붕괴의 위험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대회랑 상부에는 조그만 구멍이 있고, 이 구멍은 피라미드 하부의 조그만 방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이 방은 1800년대에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2017년에, 대회랑 위쪽에 거대한 공동이 존재함이 밝혀졌다. 그 길이가 최소한 30m에 달하며, 그 너비는 대회랑과 비슷한 크기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 공동의 용도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아마 대회랑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일본 연구자들의 발표에 따르면,
 
이 공동이 다른 건축과정에서 생긴 구조물들과는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br />
 
=== 피라미드의 정문 ===
현재 피라미드 관광객들은 칼리프 알마문이 820년에 뚫어놓은 도굴용 구멍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지만, 피라미드의 정문은 따로 존재한다.
 
이 문은 4개의 거대한 바위들이 서로를 떠받치고 있는 형식을 띠고 있으며, 피라미드가 모두 완공된 직후 거대한 돌을 굴려서 이 문을
 
정식으로 막는 의식을 치렀을 것으로 생각된다.
 
== 비밀의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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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ustralian 11th Battalion group photo.jpg|300픽셀|오른쪽|섬네일|[[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제11 대대 병사들이 피라미드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압바스 왕조의 7대 칼리프 [[알 마아문]](재위 813~833년) 칼리프가 구멍을 뚫고 832년 쿠푸의 무덤 방에 들어갔다. 알 마아문은 쿠푸의 무덤 속에서 쿠푸의 유골은 물론, 그가 기대했던 어떤 보물도 갖고 가지못한 것으로 얘기된다. 물론 아직도 [[알 마아문]] 칼리프가 대피라미드를 완벽히 털어 간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는지에 대해 논쟁이 있다. 하지만 빈 무덤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대피라미드 안에는 [[보물]]은 물론, 찢어진 [[직물|천]] 조각이나 부서진 [[도자기]] 등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압바스 왕조의 7대 칼리프 알 마문(재위 813~833년) 칼리프가 구멍을 뚫고 832년 쿠푸의 무덤 방에 들어갔다. 알 마문은
 
==== 비밀 공간 ====
쿠푸의 무덤 속에서 쿠푸의 유골은 물론, 그가 기대했던 어떤 보물도 갖고 가지못한 것으로 얘기된다. 물론 아직도 알 마문
그래서 일부 [[역사학자]]들은 쿠푸의 대피라미드 안에 비밀 공간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도 일리가 있는데, 대피라미드 내부에는 [[왕]]의 방이 무려 37,000개나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있다. 또 피라미드 내부에 공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밀 [[중력계]]나 전자파 레이다를 이용했는데, 현재까지 확인된 대피라미드의 비밀 공간은 모두 세 곳이다.
 
칼리프가 대피라미드를 완벽히 털어 간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는지에 대해 논쟁이 있다. 하지만 빈 무덤이었다
 
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대피라미드 안에는 [[보물]]은 물론, 찢어진 [[직물|천]] 조각이나 부서진 [[도자기]] 등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비밀 공간설 ====
그래서 일부 [[역사학자]]들은 쿠푸의 대피라미드 안에 비밀 공간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도 일리가 있는데, 대피라미드 내부에
 
는 [[왕]]의 방이 무려 37,000개나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있다. 또 피라미드 내부에 공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밀 중력계나 전
 
자파 레이더를 이용했는데, 현재까지 확인된 대피라미드의 비밀 공간은 모두 세 곳이다.
 
* 왕의 방 밑에 있는 공간
* 왕비의 방으로 가는 수평 통로 아래에 직선으로 뻗어 있는 공간
* 왕비의 방 남쪽 벽에 있는 환기 통로 중간의 공간:최근에 소형 로봇을 이용해서 탐사한 결과, 통로 중간에서 [[금속]] 덩어리가 달린 칸막이가[[칸막이]]가 발견되었는데, [[드릴]]을 이용해서 구멍을 뚫고 내부를 살펴본 결과, 용도를 알 수 없는 공간이 나왔다고 한다.
 
<br />
 
== 장례용 배 ==
피라미드 주변에는 세 개의 거대한 배 모양을 한 구덩이들이 존재한다. 이 구덩이는 어느 거대한 건축물의 잔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얕고 작았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 구덩이 속에 장례용 배들이 들어있었을 것이라 추정했다. 그러던 중, 1954년 5월에
 
한 고고학자가 훼손되지 않은 4번째 구덩이를 발견했고, 그 속에서 1224개에 달하는 나무 조각들을 발견했다. 나무 조각들은
 
10cm에서 23m에 달하는 것도 있는 등 그 크기가 다양했다. 이 잔해들은 이집트의 조선 전문가에게 넘겨졌으며, 이 배가 다시
 
짜맞추어지는데는 약 14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배는 [[레바논시다|백향목]]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무려 43.6m에 달한다. 나무 조각들은 밧줄로 인해 연결되어 있다. 현재 이 배는 피라미드 주변에 위치한
 
박물관에서 특별한 관리를 받으며 보존되고 있다. 이 박물관을 짓는 도중 두 번째 배 구덩이가 발견되었고, 이 배 구덩이를 발굴하는 것은
 
2011년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br />
 
== 약탈 ==
피라미드 건축은 더 크기가 작아지긴 했어도, 무려 중왕국 시대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하지만 이 모든 피라미드들은 대부분 신왕국 시대에
 
와서 도굴되었고, 이 때문에 파라오들은 도굴을 피하기 위해 왕가의 계곡에 비밀리에 무덤을 만들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대피라미드는
 
이미 고왕국 시대에 도굴된 것으로 보이며, 기원후 820년에 [[칼리파|칼리프]] 알 마문이 피라미드에 진입했을 때는 이미 아무것도 없었다.
 
 
대피라미드는 바깥쪽의 돌들을 차례대로 걷어나가는 방식으로 도굴된 것으로 보이며, 이미 고왕국 시대 말에 도굴되었으며, 다시 봉인된 후에도
 
후대에 몇 차례 더 도굴된 것으로 보인다. 도굴꾼들과 파라오들이 대피라미드 내부로 출입할 때, 피라미드의 본래 문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편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원래 문의 존재가 잊혀져서 후에 알 마문이 이 문을 찾아내는 데 고생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고대 그리스인 역사가 [[헤로도토스]]도 이에 대해 말했는데, 그는 약 기원전 5세기에 이집트를 방문하여 대피라미드 속에 있는 쿠푸의 시신이 위치한
 
방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학설에 따르면 이미 헤로도토스의 시대보다 한참 전에 대피라미드가 도굴되었고, 이집트 26왕조에 다시 봉인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헤로도토스가 이야기한 것은 당시 피라미드 해설자들이 말한 것을 그저 되풀이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br />
 
== 같이보기 ==
 
* [[세계 7대 불가사의]]
 
* [[쿠푸]]
* [[파라오]]<br />{{위키공용과 분류|Great Pyramid of Giza|기자의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Giza}}
 
<br== />{{각주|3}} ==
{{위키공용과 분류|Great Pyramid of Giza|기자의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Giza}}
{{각주|3}}
 
{{구 세계 7대 불가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