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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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자]]
* [[차용애]]
 
== 가족 및 인척 관계 ==
가족 및 친인척 관계가 여러모로 복잡하면서도 화려하다.
 
장영자는 대학시절 두 차례 결혼했다가 이혼한 후, 나중에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인 이철희와 재혼했다. 이 사람은 대북 작전 쪽에서 활동한 전문가이며, 김대중 납치 사건을 비롯한 대규모 공안사건에도 개입한 인물이다. 장영자가 유명하게 된 1982년의 사기사건도 이 남편과 함께 저질러서, 부부가 나란히 교도소에 들어갔다.
 
자녀는 1남1녀가 있는데, 모두 이철희와 결혼하기 전의 결혼에서 얻은 자식들이다. 이 남매는 부모가 이혼한 후 아버지 밑에서 컸고, 아버지가 크게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유학생이 드물었던 80년대에 유학을 다녀오는 등 경제적으로 유복하게 자랐다. 하지만 남매 모두 어머니 장영자와 얽히며 구설수에 오르고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남매 중 첫째인 딸은 배우 김주승과 결혼해서 외동딸을 낳고 잘 살았는데, 장영자가 출소하고 다시 사기 사건을 일으켰을 때 김주승이 연루되었다. 그 여파로 김주승의 연예계 제작사가 부도나고 김주승은 한동안 미국으로 도피했다. 이 일과 그 밖에 여러 사정으로 부부는 결국 이혼했고, 2007년에 김주승은 지병으로 사망했다. 남매 중 둘째인 아들은 어머니 장영자가 2000년에 구권 사기로 구속될 때 함께 잡혀갔다가 풀려났는데, 그 후에 뺑소니 사고를 치고 외국으로 도망쳤다. 몇 년 후 희귀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 된 상태로 귀국했다가, 외국으로 도피하기 전에 사귀다가 헤어졌던 여배우 차주옥이 자신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장영자의 아들은 차주옥과 혼인신고를 해서 법률상 부부가 되고 얼마 안 되어 사망했다. 그런데 장영자의 아들이 생전에 아버지의 유산을 두고 누나에게 소송을 건 상태였는데, 소송 중에 사망하면서 유족인 차주옥이 그 소송을 계속하게 되었다. 즉, 장영자의 딸과 며느리 사이에서 재산분쟁이 벌어진 것이다. 장영자 가족 잔혹사 3탄 이번엔 재산분쟁
 
한편, 장영자의 친언니는 전두환의 처삼촌(즉, [[이순자]]의 삼촌) 이규광과 결혼했다. 장영자가 1982년에 단군 이래 최고 수준이라는 대규모 사기사건을 일으킬 수 있었던 배경 중에는, 당시의 영부인인 이순자가 자기 친언니의 시조카라는 점을 어필했던 것도 있다. 장영자가 전두환 처가 쪽으로 인척관계이며 평소에 청와대 이름을 팔고 다녔다는 점 때문에, 사기사건이 터진 후 전두환과 이순자 일가가 이 사건의 배후세력이라는 소문이 시중에 떠돌기도 했다.
 
그리고 장영자의 고종사촌 언니는 공교롭게도 전두환 정권에 맞서던 김대중과 결혼했다. 다만, 장영자의 고종사촌 언니는 김대중의 부인으로 널리 알려진 이희호가 아니라, 김대중의 첫 부인이며 김대중의 첫째 아들 김홍일 및 둘째 아들 김홍업을 낳고 일찍 사망한 차용애이다.
 
'''이런 사실때문에 김대중과 전두환이 친척관계라는 이야기가 떠돌아 다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김대중과 장영자는 혼인으로 연결된 인척관계인데, 인척관계는 혼인관계의 소멸(이혼, 혼인의 취소, 배우자의 사망 후 생존배우자의 재혼)으로 소멸한다. 차용애의 사망후 김대중이 이희호와 재혼했기때문에 기존의 처가와의 인척관계는 소멸된다. 장영자가 이철희와 결혼한 것이 1982년으로 이때부터 전두환과 이순자와는 인척관계가 되지만, 김대중과 이희호가 결혼한 것은 1962년이므로 이미 20년전부터 김대중과 장영자는 법적으로 완전 남남이었다. '''따라서 김대중은 이규광이나 전두환과 법적으로 인척 관계가 없다. 한마디로 호사가들이 어거지로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하다.'''
 
== 참고 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