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사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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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사상의 모순론(생산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변증법적 모순에 대한 이론)은 [[1920년대]] 데보린 학파에 의해 전개된 유물변증법과 더불어 [[이오시프 스탈린]]이 『레닌주의의 기초와 레닌주의의 제문제』에서 밝힌 입장이 반영된 『소련공산당사』의 [[마르크스주의]]의 일반적인 모순론과 비교되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순과 사회주의 사회에서 그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모순의 본질은 제반경제투쟁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일치하며, 그것은 어떻게 하든 현실에서 계급 투쟁(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의 형태로 발생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해 지도되는 사회주의 정체는 모순이 있을 수 없다.
 
반면, [[마오쩌둥]]은 모순을 적대적 모순(敵對的矛盾, Antagonistic contradiction)과 비적대적 모순으로모순(非敵的對矛盾)으로 나눈 다음, 전자의 모순은 처음부터 끝의 과정까지 모순의 과정을 관통하며, 비폭력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모순, 즉 본질적 모순에 해당하고, 후자는 비폭력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순이라고 하였다. [[마오쩌둥]]의 모순론에 따르면, 전자의 경우는 계급 전쟁에서 최일선에 해당하는 모순인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모순이므로, 서로의 계급 전쟁에서 나름대로의 전략을 구사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며 또한, 갖가지 양태를 갖고 있는 모순으로 변화하게 된다.<ref>마오쩌둥 저, 김승일 역, 『실천론 모순론외』(범우사, 2001) pp. 74 - 80</ref> 예를 들면, 그것은 [[백인]]과 [[유색인종]] 사이의 싸움이 될 수도 있으며, [[남성]] 권위주의자들과 [[여성주의]]자들 사이의 모습으로 양태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오쩌둥]]은 이것들이 본질적인 모순에 해당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구분하기 위해서는 결국 매개 모순의 특수성, 즉, 모순의 진행도를 인식하고 그것을 정합(整合)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모순의 진행도가 제각각인 것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자연변증법]]』(Dialektik der Natur)에서 논한 자연물 사이에서의 모순을 포함하여 모든 본질적인 모순이 가진 보편적인 것(보편성)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주요 모순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마오쩌둥]]의 모순론에 따르면, 주요 모순은 모순성의 특수성을 정합성에 따라 인식한 후에 판단될 수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상황에 따라 또 유동적으로 변한다. 이러한 입장은 혁명에 현실성을 부여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의 정식을 받아들인 기존의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양태를 갖고 있는 모든 본질적 문제를 단적인 경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투쟁으로 환원시키고 그것들의 속성을 근시안적으로 바라보는 경험주의적 단견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수많은 본질적 분쟁인 사건을 비본질적 분쟁으로 취급하는 결정적 오류를 범했다. 실제로 [[마오쩌둥]]의 비판 대상인 교조적인 공산주의자들은 농민은 소부르주아이기에 본질적인 혁명 동력이 없다고 봤으며,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양분적 대립 등을 비본질적 모순으로 보아 그것들의 중요성을 무시했다. 마오쩌둥은 이러한 기조를 혁명에서의 소극주의 경향으로 단죄하였다. 그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계급 투쟁 관계를 단순히 무산자-임금노동자와 유산자-사업가의 싸움으로 표시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그것의 본질은 사실 무산자와 유산자 사이라는 간극보다는 혁명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세력과, 반동으로 나가는 세력 사이의 간극이라고 본 것이다.<ref>마오쩌둥 저, 김승일 역, 『실천론 모순론외』(범우사, 2001) pp. 85 - 90</ref> [[마오쩌둥]]이 혁명의 시기인 [[1910년대]]에서 [[1940년대]] 사이에 농촌에 기반한 농민운동에 중점을 둔 것도 바로 위와 같은 철학적 지론에서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