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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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개국 (신라)|개국]](開國), [[대창]] [[홍제]]
}}
'''신라 고종 진흥왕'''(新羅 高宗 眞興王, [[526년]]~[[576년]], 재위: [[540년]]~[[576년]])은 [[신라]]의 제24대 [[군주|임금]]이다. 성은 '''김'''(金)이고 [[피휘|이름]]은 '''삼맥종'''(三麥宗) 또는 '''심맥부'''(深麥夫)이다. [[불교]] 승려로서의 법명은 '''법운'''(法雲)이다. [[법흥왕]]의 동생이며 [[지증왕]]의 아들인 [[입종 갈문왕]](立宗 葛文王) [[구진]](仇珍)과 [[법흥왕]]의 딸 [[식도부인]](息道夫人, [[지소태후]])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법흥왕은 진흥왕에게 큰아버지이자 외조부가 된다. 진흥왕은 국가 발전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화랑도]]를 국가적인 조직으로 개편하고, 불교 교단을 정비하여 사상적 통합을 도모하였다. 이를 토대로 신라는 [[고구려]]의 지배 아래에 있던 [[한강]] 유역을 빼앗고 [[함경도]] 지역으로까지 진출하였으며, 남쪽으로는 [[562년]] [[대가야]]를 정복하여 [[낙동강]] 서쪽을 장악하였다. 이러한 신라의 팽창은 낙동강 유역과 한강 유역의 2대 생산력을 소유하게 되어, 백제를 억누르고 고구려의 남진 세력을 막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천만(仁川灣)에서 수·당(隨唐)과 직통하여 이들과 연맹 관계를 맺게 되어 삼국의 정립을 보았다.<ref name="ReferenceA">{{서적 인용 |제목=[[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장=[[: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삼국의 성립과 발전/신라의 발전#신라의 건국과 발전〔槪說〕|신라의 건국과 발전〔槪說〕]] |연도= 2004|출판사=도서출판 범한 |인용문=553년에는 백제가 점령하였던 한강 하류 지역을 탈취하여 백제를 포위하였다. 이러한 신라의 팽창은 낙동강 유역과 한강 유역의 2대 생산력을 소유하게 되어, 백제를 억누르고 고구려의 남진 세력을 막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천만(仁川灣)에서 수·당(隨唐)과 직통하여 이들과 연맹 관계를 맺게 되어 삼국의 정립을 보았다. }}</ref> 이는 이후 신라가 삼국 경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진흥왕 때는 신라의 전성기였으며, 정복 군주로 불렸다. 고구려의 영토였던 원산만 훨씬 너머까지 진출한 흔적은 마운령비에서 알 수 있다.
 
[[540년]] [[7월]]부터 [[576년]] [[8월]]까지 재위하는 동안 [[540년]] [[7월]]부터 이듬해 [[541년]] [[3월]]까지 [[신라 법흥왕|법흥왕]]의 왕후인 [[보도부인|보도태후]]가 [[섭정]]([[수렴청정]])하였고 [[541년]] [[3월]]부터 [[551년]] [[3월]]까지 어머니 [[지소태후]]가 섭정(수렴청정)하였으며 [[551년]] [[3월]]부터 [[559년]] [[3월]]까지 친정하였고 [[559년]] [[3월]]부터 이듬해 [[563년]] [[3월]]까지 [[상대등]] [[구형왕|구해공]]이 [[대리청정]]하였으며 [[563년]] [[3월]]부터 [[575년]] [[12월]]까지 다시 친정하였고 [[575년]] [[12월]]부터 이듬해 [[576년]] [[3월]]까지 [[왕후]]인 [[사도왕후|사도왕후 박씨]]가 대리청정(수렴청정)하였으며 [[576년]] [[3월]]부터 같은 해 [[576년]] [[4월]]까지 [[미실궁주]]가 잠시 1개월간 대리청정, 이후 [[576년]] [[4월]]부터 [[576년]] [[8월]] 붕어할 때까지 둘째아들 [[신라 진지왕|김사륜]](훗날 [[신라 진지왕|진지왕]])이 [[태자]] 신분으로 대리청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