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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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에 그해에 [[신라]]의 [[경순왕]]은 [[고려 태조|왕건]]에게 항복하였다. 또 [[견훤]]의 사위이며 후백제의 [[장군]]인 [[박영규 (후백제)|박영규]](朴英規)도 사람을 [[고려 태조|왕건]]에게 보내어 내응(內應)하니 [[고려 태조|왕건]]은 10만 대군으로 선산 부근에서 [[신검]]의 후백제군을 격파하고, 다시 서로 진격하여 황산(黃山)<ref>충청남도 연산</ref> 부근에 진영을 쳤다. 그러자 신검이 다시 항거할 의기를 잃고는 그 아우 양검(良劍)·용검(龍劍)과 문무의 관리를 이끌고 나와 항복했다([[936년]]). 후백제는 결국 44년만에 멸망하였다. 후백제의 항복으로 [[고려 태조|왕건]]은 [[후삼국]]을 [[후삼국의 통일|통일]]하여 [[고려]] 왕조 500년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
 
== 후백제의백제의 역대 국왕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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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훤왕]] || [[892년]]~[[935년]] || 정개 || 후백제의백제의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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