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 안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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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안산]]의 잿머리 성황사와 군자봉 성황사에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 김부대왕과 관련된 설화가 부인과 장모에 대해 두 가지로 혼용되어 전해져 오는데, 첫째 잿머리 성황사 설화에는 [[경순왕]]과 '''부인 홍씨'''와 '''장모 안씨'''가, 둘째 군자봉 성황사 설화에는 [[경순왕]]과 '''부인 안씨''', '''장모 홍씨'''가 등장한다.
 
이와 같이 [[안산시|안산]]의 [[경순왕]]과 왕후 사당에 대한 설화의 주인공은 시대적 정황상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 후 맞아들인 후비 [[고려 태조]]의 첫째 딸인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안정숙의공주]](安貞淑義公主)라 하여야 맞다 할 것이다. 그녀는 혼인전 [[경순왕낙랑공주 (고려)|안정숙의공주]]라 불리우다가, 혼인 후 [[낙랑공주 (고려)|효목왕후낙랑공주]](樂浪公主)라 시호를불렸다. 받고,한편으로는 슬하에신란궁부인(神鸞宮夫人)이라 많은일컫기도 아들하였다. 들을 두었다고 한다.
 
그녀는 혼인전 [[낙랑공주 (고려)|안정숙의공주]](安貞淑義公主)라 불리었는바,따라서 여기에서의 안씨(安氏)는 [[낙랑공주 (고려)|안정숙의공주]](安貞淑義公主)를 표현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할 것이며, 장모의 성씨는 후대에 만들어진 설화적 요소로 추정된다. 그녀는 사후에 고려조로부터 효목(孝穆)의 시호가 내려졌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34년]](소화 9) 김경대가 간행한 《신라삼성연원보(新羅三姓淵源譜)》에 별빈 순흥안씨(別嬪 順興安氏)가 등장 하는데, 역사학계 및 보학계(譜學界)에서는 이러한 《신라삼성연원보(新羅三姓淵源譜)》를 위보(僞譜)로 간주하고 있다.
1784년(정조 8)에 개성 어느 산 기슭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경주 김씨]] 후손 [[김사목]]이 족보를 수보하면서 찬한 《김은열 묘지명》에 그녀는 슬하에 8자들을 두었는데 『일(鎰)·굉(鍠)·명(鳴)·은열(殷說)·중석(重錫)·건(鍵)·선(鐥)·종(鐘)』이라 한다.
 
그러나 《김은열 묘지명》의 형태는 배위(配位) 및 생애 등이 누락되어 있고, 단지 형제 서차만 기술되어 있을 뿐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묘지명》에 나오는 아들들의 이름은 《고려사》 등의 문헌(文獻)은 물론이고, 그 이후 사서(史書)· 문헌(文獻) 및 그 어떤 금석문(金石文) 자료에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묘지명》은 나라의 역사 기록들과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의문을 갖는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34년]](소화 9) [[경주 김씨]] 후손이라는 김경대가 간행한 《신라삼성연원보(新羅三姓淵源譜)》에 별빈 순흥안씨(別嬪 順興安氏)가 등장 하는데, 역사학계 및 보학계(譜學界)에서는 이러한 《신라삼성연원보(新羅三姓淵源譜)》를 위보(僞譜)로 간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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