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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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심한 언쟁으로 번역된 파록쉬스모스({{llang|el|παροξυσμὸς|paroxusmos}})는 엄청난 분노와 성냄을 포함하는 말이다. 바울와 바르나바간의 언쟁은 서로에게 엄청난 적대감을 드러내며 벌인 감정다툼이었던 것이다.<ref name="ogj"/> 이들의 분쟁에 대해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 [[신학자]]인 [[톰 라이트]] 주교(Bishop Tom Wright)는 [[사도]]들이 '위로의 아들'이라고 불러줄만큼 성격이 유순한 [[바르나바]]와 성격이 불같고 급한 바울이 서로 원만하게 지내기는 힘들었기 때문으로 이해한다.
 
바울는 [[아테네]], [[테살로니키]], [[코린토스]], [[에페소스]] 등에서 선교활동을 했으며, 특히 고린토스에서는 브리스킬라와 아퀼라라는 유대인 [[천막]]업자 부부와 같이 일하면서 하느님의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나중에는 [[마케도니아 지방]]에서도 선교활동을 할 정도로 활약하지만, [[64년]] [[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로 [[순교]]하였다. 탈 율법적인 신학을 가진 그의 선교활동은 나사렛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유대교 소종파로 남아 있던 [[기독교]]를 세계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종교로 발전시키는 업적을 남겼다. 또한 [[영국 성공회]] 사제로서 [[청교도]]적인 배경을 갖고 있던 [[존 폭스]] 신부의 《순교자》에 따르면, 사도 성 바울로의 선교활동은 [[에페소스]]교회의 [[주교]]인 성 [[디모테오]]에게 계승되었다.
 
=== 다른 사도들과 불편한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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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론 ===
이방기독교 지도자 바울는 [[토라|율법]]이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느님과의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칭의를 주장했으며, 이러한 구원관은 유대교 전통을 강조한 유대 기독교와 갈등을 겪게 하였다. 그래서 신약성서학자 [[김득중 (1941년)|김득중]]은 마태오 복음서에서 믿음의 실천을 강조하는 이유를 바울의 칭의교리가 실천을 소홀히 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으로 추정한다.<ref>{{서적 인용|제목=《[[복음서 신학]]》|저자=김득중 지음|출판사=컨콜디아}}</ref>
 
=== 성례전 해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