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소년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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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정보
|사건 = 대구 성서
|사 = 개구리 소년 사건
|그림 =
|그림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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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 실종
|결과 = [[2002년]] [[9월 26일]] 와룡산 세방골 중턱에서 실종자의 유골 발견
|생존자= 1명 생존
|사상자1 = 5명 사망
|사상자2 =
|사상자3 =
|전체 인원 이름 =
|보고된 사망자 = 김종식, 박찬인, 김영규, 조호연, 우철원
|보고된 부상자 =
|보고된 실종자 =
|보고된 생존자 =
|보고된 재산 피해 =
|매장지 = 대구 와룡산
|조사 = [[2006년]] [[3월 25일]] [[공소시효]] 만료
}}
'''개구리 소년 사건'''은 [[1991년]] [[3월 26일]]에26일에 [[대구광역시|대구직할시]] [[달서구]]에달서구에 살던 다섯 명의 국민학교학생이 [[개구리|도룡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선 뒤 실종된 사건을 말한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30&aid=0000005008 "아이들 살해된 이유라도 알고 싶다" ::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는 말이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고 왜곡된 것이 초기에 널리 퍼지면서 "개구리 소년"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사건 발생일인 [[1991년]] [[3월 26일]]은26일은 [[5·16 군사 정변]] 이후 중단된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하여 기초의회 의원을 뽑는 시·군·구의회 의원 선거일로 임시 공휴일이었다.
 
5명의 국민학교학생이 그것도 같은 날 동시에 실종된 이 사건은 당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고, 사건 발생 2년 후인 [[1993년]]에는1993년에는 [[KBSKBS의 제1TV|KBS 1TV]]의 [[공개수배 사건 25시|사건 25시]]와25시와 [[SBS]]의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심층적으로 방영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공중전화 카드, 엽서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어린이 만화 비디오테이프 등까지 대대적으로 캠페인이 전개되면서 남녀노소 대부분이 이 사건에 대해 인지할 정도였다.
 
당시 정부는 [[경찰노태우]] [[군인|군]]을정부는 경찰과 군인을 대대적으로 투입하여 현장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전국적으로 수배 전단이 배포되었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미제 사건으로 묻히는 듯하다가 사건 발생 11년 6개월만인 [[2002년]] [[9월 26일]]에26일에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쪽의 와룡산 중턱에서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어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빠졌으며 끝내결국 아이들의 사망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2006년]] [[3월 25일]] 24시에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되면서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이후에도 범인을 찾기 위하여 7명의 형사들이 개구리 소년 사건을 담당하는 대구 성서경찰서에서 전담팀이 구성되어 있다.
 
공소시효 만료 이후에도 범인을 찾기 위하여 7명의 형사들이 개구리 소년 사건을 담당하는 대구 성서경찰서에서 전담팀이 구성되어 있다.
 
== 사건의 발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