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근대화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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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반론 ===
그러나 이들 반론측 의견은 한쪽으로 편향된 의견이 일부 존재하며, 반론측 의견과 달리 일제가 [[일제강점기]] 당시 도입한 것들은 현대 한국의 정치-사회-교육등 다방면에서 쓰이고 있다. 참고로 해방 이후 식민지배 이전의 제도와 법을 도입하려 했지만 일본이 도입한 서구식 제도와 법의 효율성과 편리성이 지금도 쓸 수 있을만큼 높았기 때문에 무산 됐다. 먼저 교육면에서는 [[여고]]와 [[남고]]의 개념, [[고등교육]]([[고등학교]])의 개념이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쓰이고 있으며, 매년 한국 초-중-고등학교에서 개최하는 [[운동회]], [[학예회]], [[수학여행]] 등은 모두 일제가 도입한 잔재이다. 또한 문화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에서 1년이 끝나고 새해를 맞이할 때 섣달 그믐날 밤에 울리는 [[제야의 종]]은 [[신토]]의 문화요소중 하나로서, 일제때 도입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민이 매해 명절마다 조상님께 드리는 제사양식도 거의 대부분 일제 잔재의 양식을 띄고 있다. 우선 현대 한국에서 제삿상에 올리는 술이 일제의 술인 '청주'이며, 일본식 발효주인 정종이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스포츠면에서도 [[일제강점기]] 당시 모든 체육부분을 총괄하던 [[조선체육회]]는 후에 대한민국의 [[대한체육회]]가 되었으며, [[야구]]와 [[축구]] 등의 한국의 인기스포츠 역시 일제가 시초이다. 역사기관 역시 일제가 조선에 두었던 [[조선사편수회]]가 [[진단학회]]를 거쳐 [[진단학회]]의 대표 [[이병도]]가 [[서울대학교 역사학과]]를 차리면서 한국의 역사학과 역시 일제강점기를 기원으로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언어적인 면에서도 [[일본제 한자어]]가 한국인의 생활-문학적으로 다방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한국의 다수 단어 중 60-70%는 모두 [[스기타 겐파쿠]]와 [[후쿠자와 유키치]]가 영향을 끼친 [[일본제 한자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