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빈 박씨 (장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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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빙애는 [[인원왕후]]전의 침방 나인이었고, 사도세자는 그녀를 [[화완옹주]]의 처소에 숨겼으나, 결국 영조가 알게 되었다. 한편 이 날의 《[[조선왕조실록]]》에는, 밤에 대신들이 입시한 상태에서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양위를 발표하였다가 사도세자가 기절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ref>《조선왕조실록》영조 90권, 33년(1757 정축 / 청 건륭(乾隆) 22년) 11월 11일(기해) 4번째기사</ref>.
이후 박씨는 종6품 [[수칙]](守則)에 봉해졌고(수칙은 후궁이 아니라, 궁녀의 품계 중 하나이다), 남편 사도세자와의 사이에서 [[은전군]]과 [[청근옹주|청근현주]](淸瑾縣主, 훗날의 청근옹주)를 낳았다.<ref>
사도세자의 총애를 받던 박씨는 사도세자의 비행에 대해 자주 지적하게 되었는에 이것이 사도세자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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