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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대한협회에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09년]] 대한천일은행의 감사로 위촉되고 [[1910년]] [[1월]] 사재를 투자하여 광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사주가 되었다. 그해 [[3월]] 국민경제회 이사로 위촉되었다.
 
[[1910년]] 윤치소는 [[경방|경성직뉴주식회사]]의 사장에 취임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이 회사는 뒤에 재정난으로 호남 출신 교육자 겸 사업가 인촌 [[김성수 (1891년)|김성수]]가 인수했다. 민대식(閔大植)과 50만원씩 공동 투자하여 조선광업주식회사도 경영하였다.<ref name="zi49"/>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그는 서울 [[안동교회]] 예배당 설립에도 참여하여 천원의 돈을 교회개척에 희사하기도 했다. 그해 7월 23일에 정삼품에서 종이품 가선대부가 되고, [[8월]]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임명되었으나 [[10월 1일]] [[한일 합방 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사퇴하고 [[남작]]위도 거절하였다.
 
=== 일제 강점기 이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