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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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orea-Empress.Myeongseong-Okhoru.jpg|200px|right|섬네일|옥호루. 명성황후가 암살당한 곳이다.]]
 
경복궁에서 이들을 마주친 [[홍계훈]] 경비 대장이 이들을 가로막았으나,<ref name="황616"/>, [[홍계훈]]과 경비대원들은 일본 낭인들, 낭인들에게 협력한 조선인 군인들의 발포에 맞아 죽는다. 명성황후가 있던 궁궐에는 홍계훈을 죽인 낭인들이 들어와 명성황후를 찾아다녔다. 외침을 들은 명성황후는 궁녀복으로 갈아입고 [[건청궁]] 곤녕합 쪽에 있는 [[옥호루]]로 은신했는데, 궁녀와 내관들은 낭인들에 의해 피습당하고 있었다.<ref name="황616"/> [[이경직]] 내부대신이 두 팔을 벌려 명성황후와 궁녀들 앞을 가로막아 가리니 두 팔이 잘려 죽음을 맞는다. 궁녀들과 함께 있던 명성황후는 대궐에 다다른 낭인들을 만난다.<ref>"궁녀들을 학살하던 도중 죽은 몸이 발견되었다"는 언급이 황원갑의 저서 616 ~ 617쪽에 있다.</ref>
 
명성황후는 방 한 구석에 기대어 몸을 감추고 있다가, 낭인 오카모토 류노스케의 눈에 띄어 검에 베여 죽었다 한다.<ref name="ilkyuk">신봉승, 《조선왕조 500년:24. 왕조의 비극》 (금성출판사 , 2010) 390페이지</ref> 명성황후의 죽은 몸은 그 뒤 석유가 뿌려진 다음 불태워졌다. 이 때 명성황후의 나이는 43세였다.<ref name="황616" /><ref name="임385" /><ref>명성황후의 죽은 몸은 흥분한 일본인 낭인들에게 [[네크로필리아|능욕을 당했다]]는 주장이 임중웅의 저서의 385쪽에 언급된 김진명의 〈황태자비 납치사건〉에서는 [[이시즈카 에조]]의 비밀 보고서에 언급된다.</ref><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B%B3%B4%EC%9D%80&keyword=%EB%B3%B4%EC%9D%80 왕후가 곤녕합에서 묘시에 붕서하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33권, 32년(1895 을미 / 청 광서(光緖) 21년) 8월 20일(무자) 1번째 기사에서.</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