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태그: m 모바일 웹
Simms1001(토론)의 24687504판 편집을 되돌림
5번째 줄:
1917년 3월에 일어난 [[러시아 2월 혁명]]은 [[러시아 제국]]을 멸망시켰다. 혁명 이후 수립된 [[러시아 임시 정부]]는 1917년 11월에 일어난 [[10월 혁명]]으로 붕괴하였고 [[볼셰비키]]가 러시아의 정권을 잡았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백군]]이 반란을 일으켜 [[러시아 내전]]이 일어났지만 [[볼셰비키]]는 내전에서 승리하였다. [[1922년]] [[12월 30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자카프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통합되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탄생하였다.
 
소련의 초대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레닌]]은 [[1924년]] [[1월 21일]]에 사망하였고,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이 소련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다. 소련은 스탈린의 경제 정책과 강력한 정치 억압을 통하여 거대한 규모의 산업화를 이루어 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이 불가침 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공하여 독소인류 전쟁이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쟁인 [[대조국전쟁]]이 발발하였다. 소련은 1945년 5월 9일 독소 전쟁에서대조국전쟁에서 승리하였고 1945년 8월 [[소련 대일전 참전|대일전에 참전]]하여하였다. 소련은 대일전에서도 승리하여 [[제2차 세계 대전에서대전의 승리하였다연합국|제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이후 소련은 [[미국]]과 함께 세계의 주도권을 두고 다투는 [[초강대국]]이 되었다. 소련과 중앙유럽 [[위성 국가]]들은 서방 세계에 맞서 [[냉전]] 체계를 구축하였다. 이로 인하여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양측 동맹국 사이에서 갈등, 긴장, 경쟁 상태가 이어졌다. [[1986년]],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통해 소련의 경제를 중흥시키려 하였다. [[1991년]] 8월 [[소련 공산당|공산당]] 보수파가 일으킨 쿠데타가 소련 국민들의 반발로 실패한 뒤 [[1991년]] [[12월 25일]]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사임하면서 소련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 국명과 상징 ==
250번째 줄:
소련은 세계 2위([[1985년]] GDP 2조 2천억 달러,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었다. 1인당 GDP는 약 9,300$([[1990년]] 기준, 세계 31위)에 달했다. 소련은 생산 노동자에 한하여 주 35시간 근로제를 채택했으며, 농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경우는 특별한 경우에만 한하여 주 41시간 근로까지 허용했다.<ref>[http://www.departments.bucknell.edu/russian/const/77cons02.html 소련 관련 법]</ref> 경제력에 관련해서 소련은 군수산업, 산업정비기기산업 부문에서 그 규모가 세계 1위였으며, [[1986년]] 고르바초프가 [[시장 경제]]를 받아들였다. [[1965년]] 이전까지는 소련의 경제는 [[고스플란]]이 통제하였으나, [[1965년]] 이후부터는 고스플란의 역할이 축소되고, 각 생산 수단을 맡은 경영인들의 역할이 중시되었다. 농민들은 [[콜호스]]에서 일을 했다.
 
[[1920년대]]에 일어난 [[러시아 내전]]은 소련 경제를 피폐화했다. 이러한 상태에서 [[계획 경제]]의 문제점이 크게 부각되자, [[레닌]]이 [[자본주의]]를 도입하여 "[[신경제정책]]"을 실시하였다. 경제가 안정된 후 소련은 다시 [[계획 경제]]로 경제를 운용하였으며, [[1930년대]] 스탈린이 추진한 5개년 계획이 성공하면서 거대한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1930년대]]에 [[대공황]]으로 자본주의 국가들은 심각한 불황에 시달렸지만 소련은 대공황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아주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여 1980년대 중반에 가서는1938년에는 세계 3위의2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1925년]] 부터 지속된 [[계획 경제]]는 소련의 농민들을 수탈하여 인명을 대거 희생시켰고, 노동자들에게는 과도한 중노동 부담를 안겼다. 이러한 중노동으로 인해 중앙 계획경제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생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65년]]에는 [[독립채산제]]를 시행하여 [[혼합 경제]] 체제를 받아들였다.<ref>《마르크스주의의 역사》 참조</ref>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도 소련의 경제는 크게 발전했다. 소련은 [[1950년대]]에도 아주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고 [[1960년대]]까지 소련은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1970년대]]부터 소련의 경제는 침체되기 시작했다.
354번째 줄:
New York: William Farquhar Payson. 1933. p. 665.</ref>
 
이에 따라 1926년까지 교육 수준은 퇴보했으며 당시 문자해독율은 56.6%였다. 1923년에 초등학교 4학년까지 의무교육이 시작되었고, 소련의 교육 위원회 초대 위원장인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는 [[문맹]] 퇴치를 위하여 글을 아는 사람들을 채용하여 글을 가르쳤다. 1937년 센서스에 따르면 문자해독율은 75%로 상승했다.<ref>Fitzpatrick, S. (1994). ''Stalin's peasants: resistance and survival in the Russian village after collectiviza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pp. 225-6 & fn. 78 p. 363. {{OCLC|28293091}}.</ref> [[1950년]]대에는 문맹률이 1% 미만으로 낮아졌다.
 
소련이 멸망하기 직전,1970년대 소련의 의무교육은 11년제(초등학교 4년, 중학교 7년)를 채택하고 있었으며, 종합대학은 5년제, [[단과대학]]은 4 ~ 6년제였다. 1981년부터 10학년(발트 국가들은 11학년)까지 의무 교육이 실시되었고, 모든 학교는 정부가 관리하였다.
 
냉전기에 소련이 서방 세계에 비해 가장 뒤쳐진 부분은 대학 교육이었다. 1986년 소련 인구 1만 명 당 고등교육을 받는 학생의 비율은 181명에 그쳐, 미국(517명)의 1/3에 불과했다.<ref>Pejovich, Svetozar (1990). The Economics of Property Rights: Towards a Theory of Comparative Systems. Springer Science+Business Media. p. 130. ISBN 978-0-7923-0878-2.</ref>
 
=== 의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