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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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 치세 후기인 [[1712년]](강희 51년), 강희제는 준가르 부족을 견제하기 위해 남러시아에서 살던 [[투르쿠트]] 족에 사절을 보냈다. 이러한 강희제의 강한 견제에도 준가르 부족은 여전히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며, [[1717년]](강희 56년)에 준가르 부족의 신임 칸이자 가르단의 조카 [[체왕 아랍단]]은 6천 명의 적은 군사를 이끌고 과거 동맹이었던 티베트를 점령하였다. 준가르군은 수장 달라이 라마라 칭하던 티베트의 왕 [[랍장]]을 폐위시킨 뒤 살해하였고 [[1718년]](강희 57년)에 청군을 격파하였다.<ref name="중국사학회33"/>
 
준가르군은 여전히 그 세력이 막강하였으나 [[1720년]](강희 59년)에 강희제가 보낸 팔기군의 대대적인 원정에 준가르군은 결국 패퇴하였고 티베트에 원정 온 체왕 아랍단은 몽골로 돌아가 은둔하였다. 그 이듬해인 [[1721년]](강희 60년)에 청군은 [[켈장 갸초]]를 모시고 와서 제7대 달라이 라마로 만들고 티베트를 청나라의 영토에 정식 편입시켜 티베트는 안정되었다.<ref>웨난, 심규호/유소영 역, 《열하의 피서산장 1》, 일빛, 2005년, {{ISBN|89-5645-079-X}}, 156쪽</ref> 하지만, 준가르 세력은 청군의 티베트 원정 이후 결정타를 맞았으나 완전히 멸하지는 않았다. 강희제의 손자인 건륭제 때에야 [[위구르족|위구르]]와 함께 청군에게 항복하여 그 세력이 완전히 와해되었다.<ref>조영록 외, 국학자료원, 동양의 역사와 문화, 1998년, {{ISBN|89-8206-273-4}}, 150쪽 - 건륭제는 세로새로 편입된 이 지역을 신강(新疆)으로 명명했다.</ref>
 
=== 팔기군 개편과 군사 정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