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가톨릭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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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에는 주교라고 잘못 표시했는데 이제는 아예 주교라고 표시하지도 않네요. 환속하지도 않은 사람의 성직 직제를 생략하는 것은 사실 이상으로 폄하의 의도가 있지 않나 생각되네요. 환속하거나 도덕상 범죄를 저질러 환속에 처해지지 않는 이상 성직 직제는 무효화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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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엔트 공의회]]가 폐막한 지 4세기 만인 1963년에 소집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교회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교황 요한 23세]]의 요청으로 소집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미사를 라틴어 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언어로 봉헌하는 것을 허용하고, 평신도들도 적극적으로, 의식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현대화하였다.<ref>{{웹 인용|url=http://info.catholic.or.kr/concil/view.asp?kid=1 |title=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 |publisher=Vatican.va |date=1963년 12월 4일 |accessdate=2012년 1월 12일}}</ref>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와 현대 세계와의 대화([[아조르나멘토]])를 목표로 한 획기적인 공의회로서,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창문이 활짝 열렸다’고 표현하였다.<ref name="Duffy272">Duffy, pp. 270–276</ref>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는 전례의 개정 뿐만 아니라 다른 기독교 교파들과의 [[교회 일치 운동]]에 착수하였으며,<ref>Duffy, ''Saints and Sinners'' (1997), p. 272, p. 274</ref> 다른 종교들, 특히 [[유대교]]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게 되었다.<ref name="NOSTRA AETATE">교황 바오로 6세, [http://info.catholic.or.kr/concil/view.asp?kid=15&seq=4584&level1=16&level2=0&level3=0&level4=4&level5=0&level6=0&level7=&lang=ko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 《우리 시대》(Nostra Aetate)]. 1965년 10월 28일. 2011년 6월 16일 확인. 4. 유다교 : “비록 유다인 지도자들과 그 추종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강요하였지만, 당시에 살고 있던 모든 유다인에게 그리스도 수난의 책임을 차별 없이 지우거나 오늘날의 유다인들에게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교회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임에는 틀림없으나, 마치 성경의 귀결이듯이, 유다인들을 하느님께 버림받고 저주받은 백성인 것처럼 표현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교리를 가르치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 복음의 진리와 그리스도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을 가르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ref>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쇄신을 시행하면서 커다란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다. [[한스 큉]]과 같은 진보주의자 내지는 해방 신학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데 충분하지 못했다고 주장하였다.<ref>Bauckham, p. 373</ref> 이와는 반대로 [[마르셀 르페브르|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와 같은 일부 전통주의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강하게 비판하였으며, 특히 전례 개혁이 미사와 성사들의 거룩함을 파괴하도록 이끌었다고 성토하였다.<ref>O'Neel, Brian. [http://www.catholic.com/thisrock/2003/0304fea2.asp "Holier Than Thou: How Rejection of Vatican II Led Lefebvre into Schism"] {{웨이백|url=http://www.catholic.com/thisrock/2003/0304fea2.asp |date=20100510014807 }}, ''This Rock'', Volume 14, Number 4. San Diego: Catholic Answers, 2003년 4월.</ref>
 
1978년 당시 공산주의 국가였던 폴란드의 크라쿠프 대교구장이었던 카롤 보이티와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455년 만에 처음으로 비이탈리아인 교황이 선출되었다. 그의 재위기간은 27년으로 오래 재위한 교황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록되었다.<ref>{{웹 인용|url=http://www.history.co.uk/this-day-in-history/April-02.html;jsessionid=08931E713115A304B13BB1A6FA315A63.public1 |title=2&nbsp;April – This Day in History |publisher=History.co.uk |accessdate=2010년 10월 28일}}</ref> 이 폴란드인 교황은 소비에트 연방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더불어 유럽 공산주의의 몰락을 재촉한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ref>{{뉴스 인용|author=Peter and Margaret Hebblethwaite and Peter Stanford |url=http://www.guardian.co.uk/world/2005/apr/02/guardianobituaries.catholicism |title=Obituary: Pope John Paul II |work=가디언 |date= 2005년 4월 2일|accessdate=2010년 10월 28일 |location=런던}}</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