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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ngbeolno gate.jpg|right|섬네일|잉벌노 문: 시흥군의 [[고구려]] 때 이름 "잉벌노"에서 따온 명칭이다. 서울 금천구 소재.]]
오늘날의 [[영등포구]], [[구로구]] 동부, [[관악구]], [[동작구]] 일부, [[금천구]], [[광명시]] 및 [[안양시]] 일부 지역은 [[고구려]] 때 '''잉벌노현'''(仍伐奴縣)이었던 것<ref>오늘날의 시흥시 북부 지역은 당시에 매소홀현(買召忽縣, 현 [[인천광역시]])에 속했고, 오늘날의 시흥시 남부 지역은 당시에 장항구현(獐項口縣, 현 [[안산시]])에 속했다.</ref>을 [[신라]] [[신라 경덕왕|경덕왕]] 때 '''곡양'''(穀壤)<ref>곡양이라는 지명으로 이 지역이 일찍부터 수전 농업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서적 인용 |저자=최완기 |제목= 한양: 그곳에서 살고 싶다? |
한편 오늘날의 [[시흥시]] 남부 지역은 현재의 [[안산시]] 지역과 마찬가지로 삼국시대에는 처음 장항구현(獐項口縣)현으로 명명되었다가 통일신라 시기인 757년에 장구군(獐口郡)으로 개칭되었고, 940년에 [[안산군]](安山郡)이 되었다. 지금의 [[시흥시]] 북부 지역은 현재의 [[인천광역시]] 남부 지역('원인천')과 마찬가지로 삼국시대에는 처음 미추홀(彌鄒忽)로 명명되었다가 매소홀현(買召忽縣)이 되었고 통일신라 시기인 757년에 소성현(邵城縣)으로 개칭된 후 율진군(栗津郡; 지금의 [[과천시]])의 영현(領縣)이 되었다가 [[1018년]]에 수주(樹州; 지금의 [[부평구]])의 속현이 되었다. [[1105년]] 숙종의 어머니인 [[인예왕후]] 이 씨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경원부(慶源府)로 승격되어 수주(樹州)에서 분리되었다. [[고려 인종]]때에 인종 왕해의 어머니인 [[순덕왕후]] 이 씨의 내향이라 하여 인주(仁州)가 되었다가 경원부와 인주군으로 차례대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141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주군이 [[인천군]](仁川郡)으로 개명되었고, 1460년에 인천군이 인천도호부(仁川都護府)로 승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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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 ==
취락의 형성이 극히 미미했던 영등포 지역이 번잡해지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부터였다. 조선 피혁 주식회사, 경성 방직 회사 등이 이 지역에 설립되면서 곧이어 많은 공장들이 가동했다. 당시 영등포 지역에 공장이 집중적으로 설립된 것은 본래 이 지역이 [[한강]]과 [[안양천]]으로 둘러싸인 [[범람원]]으로서 염가로 토지를 매입할 수 있었고, 경인선과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철도교통이 편리했기 때문이다.<ref>{{서적 인용 |저자=최완기 |제목= 한양: 그곳에서 살고 싶다? |
== 함께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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