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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역사는 13세기에 [[중국]] 남부에서 살던 민족의 하나인 [[라오족]]이 지금의 라오스 영토로 이주해 온 것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메콩 강]] 유역에서 살았으며, 특히 [[비엔티안]], [[루앙프라방]], [[참빠삭]]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1353년에 [[파움 왕]]의 주도로 [[메콩 강]] 유역에 [[란쌍 왕국]]이 등장하였다. 란쌍 왕국의 지도자였던 파움 왕은 크메르 왕국이 약해지자 독립을 선언하였고, [[불교]]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17세기 중반 술리나봉사 왕 때 크게 번영했지만 후계자를 남기지 못했다. [[18세기]]초에 급격히 몰락하여 란쌍 왕국은 3개로 분열되고 친 [[태국]] 세력과 친 [[베트남]] 세력의 대립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이때 비엔티안 왕국의 차오아누 왕은 영국이 태국을 공격한다는 소문을 듣고 태국 정벌에 나셨다. 하지만 1828년에 [[태국]]이 [[비엔티안 왕국]]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심지어 국왕도 [[태국]]에 끌려가 감옥에서 살았다. 비엔티안 왕국의 왕 차오아누는 1829년 감옥에서 죽었다. 결국 분열된 라오스는 [[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1860년대부터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침략이 시작되어 프랑스는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당시에 라오스 영토의 대부분이 태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프랑스는 무력을 사용하여 태국 정부로부터 메콩강 동쪽의 영토 지배권을 인정받았는데 이 영토가 현재의 라오스가 된다. [[프랑스]]는 라오스의 3개 지방을 합쳐서 [[루앙프라방 왕국]]을 만들어 보호령으로 선포했다. 그 후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자 프랑스는 [[미얀마]]로 가는 길을 개방하였다. 파테트 라오가 참여하는 정부 수립을 골자로 하여 평화 조약이 맺어졌지만 중립은 실패하였고 다시 내전이 시작되었다.
 
=== 독립과 내전 ===
[[파일:Vientianne1973.jpg|섬네일|left|[[비엔티안]]의 [[파테트 라오]]군]]
{{본문|라오스 내전}}
그러나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라오스는 급격히 혼란해졌다. 라오스의 독립파는 라오읻싸라, 즉 공산정당을 만들어 라오스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라오읻싸라]]는 베트남 공산정권인 베트남민주공화국과 긴밀하게 유대했다. 프랑스와 라오스 독립파의 전쟁은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1949년]] [[7월 19일]] [[프랑스]]는 라오스를 독립시켰지만 국방, 외교, 재정권을 [[프랑스]]가 가졌다는 점에서 형식적인 독립이었다. 하지만 곧 우익과 좌익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우익의 지도자는 라오스 왕국의 총리가 된 [[수바나 푸마]]였고 좌익의 지도자는 [[수파누봉]]이었다. [[1950년]] 라오스의 공산세력이 뭉쳐서 [[파테트 라오]]가 탄생했다. [[1953년]] [[10월 22일]], [[프랑스 라오스 조약]]에 의해 완전 독립을 달성했다. 독립 후 내전은 계속 심해졌고 결국 [[1954년]]에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라오스의 왕실 유지, 파테트 라오가 참여하는 정부 수립을 골자로 하여 평화 조약이 맺어졌지만 중립은 실패하였고 다시 내전이 시작되었다.
 
이후 라오스에서 우파, 중립파, 좌파(파테트 라오)가 갈라져 [[라오스 내전]]이 장기간 지속되었다. [[1973년]]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하였고, [[1974년]] 세 파 연합에 의한 라오스 민족 연합 정부가 성립되었지만, [[1975년]] 남베트남의 [[사이공]]이 함락되고 라오스 국왕과 수바나 푸마가 물러나면서, 12월 연합 정부가 왕정의 폐지를 선언하면서,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 이것으로 30년에 걸친 라오스 내전은 완전히 종식되었고 라오스는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
 
=== 비밀 전쟁 ===
이웃 나라 베트남에서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 라오스도 전쟁의 영향을 받았다. 북베트남군은 전쟁 물자를 라오스를 통과하는 이른바 '[[호찌민 트레일]]'를 통해 전선에 수송하였다. 미군은 라오스의 일부 소수민족을 용병으로 고용하여<ref>[http://www.stevenh.co.kr/609 스티븐의 전쟁영화보고評 :: 미 CIA , 비밀 전쟁(Secret War)의 희생자들 '몽족(Hmong People)'<!-- 봇이 붙인 제목 -->]</ref> [[호찌민 트레일]]를 차단하기 위해 비밀리에 라오스 전 국토를 폭격하였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58만 회의 폭격이 이뤄졌고, 2백만t 이상의 폭탄이 투하되어 전 국토가 황폐해졌다. 미국은 베트남전 종전시까지 폭격과 라오스 내전 개입을 부인해서 '비밀전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ref>[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3945.html [제739호&#93; 끝나지 않은 전장 라오스의 ‘집속탄’ : 세계 : 뉴스 : 한겨레21<!-- 봇이 붙인 제목 -->]</ref> 현재까지도 폭격으로 인한 불발탄에 끊임없이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ref>[http://www.voanews.com/Korean/archive/2009-02/2009-02-09-voa3.cfm?moddate=2009-02-09 라오스, 베트남 전 불발탄으로 매년 수 백명 사망<!-- 봇이 붙인 제목 -->]{{깨진 링크|url=http://www.voanews.com/Korean/archive/2009-02/2009-02-09-voa3.cfm?moddate=2009-02-09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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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 ===
주민의 대부분은 [[라오족]]이며 이외 48개 소수민족(공식적인 발표로 실제는 이보다 더 많다고 한다)이 거주한다(2005년 인구조사).
비록 인구는 적지만, 라오스 사람들은 아주 다양한 소수민족들로 구성되어 있다.<ref name="스티븐"/> {{Rp|58}} 라오스 특유의 고립성과 병존하는 이러한 다양성은 라오스가 문화·정치적으로 통합되는 데 심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ref name="스티븐"/> {{Rp|58}} 역사적으로 이 나라는 지배족인 [[라오족]]에 의해 항상 통치되어 왔다.<ref name="스티븐"/> {{Rp|58}} 그들의 통치는 최근까지도 소수민족의 생각이나 활동보다는 라오족 엘리트 집단의 생각이나 열망을 반영해 왔다.<ref name="스티븐"/> {{Rp|58}} 그러나 라오스 정부는 라오스 국적을 가지는 [[라오스인]]을 국민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공식으로는 소수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비록 인구는 적지만, 라오스 사람들은 아주 다양한 소수민족들로 구성되{{위키공용과 분류|Laos}}
 
라오스인은 사는 지역의 고도에 따라 저지 라오족(라오룸), 구릉 라오족(라오텅), 고지 라오족(라오쑹)으로 나눌 수 있다.
 
=== 언어 ===
[[라오어]]. 그 외에도 [[영어]],[[태국어]] 등이 사용되고 있다.
 
소수 민족어도 있다.
 
[[인도차이나]]에서는 유일하게 프랑스어가 우위를 점하는 라오스는 프랑스어 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 소속에 있다. 다만, 영어로 된 의사소통은 제한적이다. 또, 베트남어는 일부 베트남에서 건너온 베트남인 자손들만 사용하지만, 태국어는 라오어와 매우 흡사하고 라오스 내 텔레비전 방송 채널이 대부분이 태국방송이라 라오스에서 태국어를 사용해도 별 문제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라오스는 그리스어로 '백성'이라는 뜻이다.
 
== 문화 ==
[[파일:3 Nagas Feast.jpg|섬네일|150px|[[라오스 요리]]의 한 예|right|150px]]
[[남방상좌부 불교]]가 60%, [[애니미즘]]이나 그 외의 종교가 40%이지만, 불교와 [[애니미즘]]이 혼합되어서 믿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몽쪽은 다른 민족과 달리 유교이다. 그 외 라오스 남부에서는 [[기독교]]를 소수 믿는다. [[공산주의]] 정권의 집권 이후 종교의 자유를 탄압했지만, [[1991년]]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이후 남방상좌부 불교를 중심으로 종교 활동이 다시 활발해졌다. [[기독교]]에 대한 탄압도 [[2003년]] 미국과의 협정 이후 현지 교회의 예배가 자유로워지는 등,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
 
== 대외 관계 ==
=== 대 한국 관계 ===
1974년 [[대한민국]]과 수교하였으나, 다음 해 1975년 라오스가 공산화되어 단교되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수교하게 되었다.
[[대한민국]]과는 다시 [[1985년]] [[10월 25일]]에 재수교하여,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선수 및 임원단을 파견하였다. 현재 [[비엔티안]]에 대한민국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으며, [[서울]]에는 주한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
총 833명의 한민족들이 라오스에 거주<ref>2010년 12월 기준</ref> 하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으로 오려고 했다고 알려진 [[북한이탈주민|탈북 청소년]] 9명을 라오스 정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강제 추방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2013년 라오스 탈북청소년 북송 사건]])이 일었으며, 이로 인해 라오스 정부와 [[대한민국 외교부]]간에 진실 공방<ref>신보영, [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0&cid=945053&iid=647871&oid=021&aid=0002157223&ptype=011 외교부·라오스 당국 ‘진실 공방’…양국 관계 파탄 오나], 문화일보, 2013년 5월 31일</ref> 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 대 중국 관계 ===
라오스의 역사는 13세기에 [[중국]] 남부에서 살던 타이계 민족의 하나인 [[라오족]]이 지금의 라오스 영토로 이주해 온 것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메콩 강]] 유역에서 살았으며, 특히 [[비엔티안]], [[루앙프라방]], [[참빠삭]]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중국과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다.
 
=== 대 캄보디아 관계 ===
1353년에 [[크메르 왕국]]의 지원을 받고 라오스의 [[메콩 강]] 유역에 [[란쌍 왕국]]이 등장하였다. 란쌍 왕국의 지도자였던 파움 왕은 라오스의 란쌍 왕국(백만마리의 코끼리 영토라는 뜻)을 수립했다.
 
=== 대 태국 관계 ===
태국의 [[딱신 대왕]]은 1768년 방콕 건너편의 대방콕 일부에 속하는 [[톤부리]]를 도읍지로 정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라오스·캄보디아까지 세력을 넓혔다. 라오스는 경제 분야에서는 태국과 가장 많은 경제관계를 맺고 있다.
 
=== 대 베트남 관계 ===
라오스는 통일전쟁과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함께 [[미국]]과 싸운 [[베트남]]을 혈맹으로 여겼다. 양국 공산당의 서기장은 매 해 서로 방문하고 있으며 아세안 내에서의 입지를 위해서도 함께 노력했다. 그러나 최근 베트남이 친미국가로 바뀌면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 대 미국 관계 ===
미국은 라오내전 당시 수바나푸마 수상과 라오이싸라 당원들이 세운 우파 정권을 지지했다. 이에 따라 공산주의 정부 건립 후 거리가 요원해졌다. 그러나 최근 개선되고 있으며 특히 미국경찰이 몽족반군의 미국임시정부 지도자를 체포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라오스 측의 미국에 대한 신뢰가 좀 더 높아졌다.
 
== 각주 ==
{{각주|
refs=
<ref name="스티븐">스티븐 맨스필드 저, 이동진 역, 《라오스》휘슬러 (2005) {{ISBN|89-90457-79-3}}</ref>
}}
 
== 외부 링크 ==
*
{{위키공용과 분류|Laos}}
{{위키여행|en:Laos|라오스{{언어링크|en}}}}
* [http://www.mofa.gov.la 라오스 외무부 홈페이지]
* [http://www.tourismlaos.org 라오스 관광 홈페이지]
* [https://web.archive.org/web/20090216005405/http://lao.mofat.go.kr/kor/as/lao/main/index.jsp 주라오스 대한민국 대사관]
* [https://web.archive.org/web/20151210110522/http://www.laoembassyseoul.com/ 주대한민국 라오스 대사관]
 
{{동남아시아}}
{{아시아}}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공산주의 국가}}
{{프랑코포니}}
{{T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