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명: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평가: 내용정정
→‎초기 활동: 내용추가
35번째 줄:
그는 젊어서 해서, 황해도에 갔다가 한 기생을 데려오려 했으나 끝내 데려오지 못했다. 그는 기생의 치마폭에 시를 남겨주고 떠났는데 "강머리에 말을 세워 이별 슬퍼 지체하니, 높은 버들가지만큼 미운 마음 이는구나, 미인은 정이 엷어 새 사람에 마음 두나, 사나이는 정이 깊어 뒷날 기약 다짐하네. 복사꽃 떨어지는 이 좋은 한식철에, 자고새 황혼시에 날아갔다 날아오네. 남포의 풀 우거지고 봄 물결은 출렁이니, 마름꽃에 정을 담아 꺾어가서 두리로다."라고 하였다. 뒤에 새로 온 황해도 관찰사가 기생의 치마에 쓰인 시를 읽고 시재를 감탄하고, 그 사연을 물어보았다. 나중에 감사가 고맹영을 만나자 당신 아들 고경명은 재주와 얼굴이 뛰어났지만, 행동에는 좋지 않은 면이 있다며 비꼬았다. 그러자 고맹영은 자기 아들의 모습은 제 어미를 닮았지만 행동은 나를 꼭 닮았다며 웃자 관찰사도 함께 웃었다 한다. 현호쇄담에 실린 내용으로 여기에 그가 지었다는 시 1수가 전언 수록되어 있다.
 
[[1552년]](명종 7년) 진사시와 생원시에생원시 2등(二等) 18위(23/100)에 동시 입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진사시에는 1등으로1등 4위(4/100)으로 합격했다. [[1558년]](명종 13년) [[명종]]이 [[성균관]]에 유생들을 시험할 때 수석을 차지하여 바로 직부전시에 명을 받았다.
 
=== 과거 급제 이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