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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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월 11일]] 임시 전당 대회를 통해 [[정동영]] 의원이 첫 당의장에 당선되었으며 [[김근태]] 의원이 첫 [[원내대표]]가 되었다.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민주당]]에 밀려 3위를 기록하던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수직 상승하여 1위가 되었다.
 
한편, 같은 해 [[3월 9일]]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제출되고제출되었다. 열린우리당은열린우리당 이를의원들은 저지하고자국회의사당을 하였으나점거하고 결국표결을 저지하려 하였으나, [[3월 12일]] 한나라당 소속의 박관용 국회의장이 국회경비대를 동원하여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끌어내고 표결을 진행시킴으로써 탄핵소추안은 통과되었다. 이로써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수행이직무수행은 정지되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민주당 (대한민국, 2005)|민주당]] 연합을연합하여 통해통과시킨 진행된탄핵소추안에 탄핵소추안대한 통과였으나국민의 대부분의여론은 국민들은부정적이었고, 탄핵에전국 대해각지에서 반대하였고탄핵소추안을 여러통과시킨 곳에서국회의원들을 수많은비판하고 사람들이헌법재판소에 촛불시위를탄핵소추안 했고,기각을 결국요구하는 탄핵은촛불 부결되었다집회가 열리기까지 하였다. 이런 이후사회적 치뤄진분위기에 힘입어 같은 해 4월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과반수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또한 그 해 5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명 중 3명만이 인용 의견을 내고, 5명이 기각, 1명이 각하 의견을 냄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기각한다고 판결하였다.
 
=== 2004년 총선거~2005년 ===
한때 정동영 의장의 "60대 이상의 노인들은 투표 하면 안된다"는 노인 폄하발언 논란으로 제1당 달성이 한때 어렵게 보이기도 하였던하였으나, 열린우리당은 [[정동영]] 의장이의장의 비례대표 의원 후보 사퇴 등 최선의 대응을 통해 [[대한민국 17대 총선|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52석을 차지, 의회 과반수 정당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어 [[헌법재판소]]는 5월 14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가결안을 기각하였다. 이 판결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권한을 회복하게 됨으로써 국정운영이 정상화되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의 수석 당원 자격으로 입당하였고, [[한나라당]]의 ‘도덕성’ 문제와 탄핵 역풍에 힘입어 우리당은 명실상부한 [[집권 여당]]으로 자리잡았다.
 
총선 이후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원내대표의 사퇴로 [[신기남]] 의원, [[이부영]] 전 의원이 차례로 의장직을 승계하였으며 [[천정배]] 의원이 5월에 새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2004년 열린우리당은 [[4대 개혁 입법]]으로서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진상 규명법’, ‘사립학교법’, ‘언론 개혁법’을 제시하고 힘있게 추진하였으나, 당내의 개혁세력과 실용세력과의 분열과 보수세력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했고, 121석의 [[한나라당]]은 4대 개혁 입법에 완강하게 맞섰다. 결국 2004년 말, 천정배 원내대표는 연내에 4대 개혁 입법을 완수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