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회담 (1954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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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안건 ===
베트남을 분단하여 통치하는 것을 논의하는 인도차이나 문제의 경우, 이 회의체는 '''제네바 합의'''라 불리는 일련의 문서를 만들어냈다. 이 합의들에 의하여 베트남은 2개로 분단되게 된다. 북부 지역은 [[소련]] 진영인 [[호찌민]]을 주축으로 하는 [[비엣민]]이 통치하고, 남쪽 지역은 [[미국]]의 진영인 전 황제 [[바오 다이]]를 수장으로 하는 [[베트남국]]이 통치하게 된 것이다. 회의체의 영국인 의장에 의하여 선언된 "회의 최종 선언"은 통일된 베트남을 수립하기 위하여 1956년 7월 이내에 보통선거를 진행할 것을 규정하였다. 그러나, 남베트남이나 미국의 대표들은 컨센서스로 제출된 이 문서를 채택하지 않았다.
 
제네바 정치회의에 참가한 미국 등의 유엔 참전국들은 과거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이뤄진 모든 유엔 결의, 예컨대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 실시 원칙 등이 유효하며, 제네바 정치회의의 어떠한 결정도 다른 유엔 결의를 위배해서는 안 된다고 합의했다. 정치회의 개최와 관련해 제일 먼저 겪은 진통은 소련의 참가자격이었다. 공산측은 중립국 자격을 주장했지만, 유엔군측은 정치회의는 ‘참전국 쌍방’의 대표 간 회의이므로 중립국 자격은 있을 수 없다고 응수했다. 소련은 법적으로는 교전국이 아니었지만, 실제로는 전쟁 중 공산 측에 필요한 모든 무기와 탄약을 공급한 바 있고 심지어 공군 전투기까지 파견한 실질적인 교전국이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유엔군 측이 소련을 ‘특별초청’하는 형식으로 해결했다.<ref>{{뉴스 인용 |url=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8/02/12/200802120500004/200802120500004_1.html |제목=6·25 참전국 모두 모여 만든 ‘유일한 국제공인 통일원칙’ |뉴스=신동아 |출판사= 동아일보사 | 날짜 = 2008-02-01 }}</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