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쓰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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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쓰기'''는 [[한국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닿소리]]와 [[홀소리]]를 음절 단위로 한 덩어리씩 모아 적는 [[모아쓰기]]와 달리, [[낱소리]]를 모두 풀어 헤쳐서 따로 나열해 쓰는 방식을 통틀어 일컫는다. 예컨대 ‘한글’을 ㅎㅏㄴㄱㅡㄹ’처럼처럼 적는다.
 
==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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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개혁]]에 즈음해 개화가 이루어지면서, 한글 또한 한자의 보조 수단으로 쓰이기 위한 초·중·종성 체계에 얽매여 있을 것이 아니라, 한글의 제 모습을 찾아 다른 [[음소 문자]]처럼 가로 풀어쓰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났다. 가로 풀어쓰기는 [[유길준]]의 《서유견문(西遊見聞)》이나 [[천주교]]·[[개신교]] 선교사 등에 자극받아 더 많은 관심을 얻었다.
 
가로 풀어쓰기를 주장한 첫 문헌은 주시경이 붓으로 쓴 《말의 소리》([[1914년]] [[4월 13일]])로, 책 말미에 ‘우리글의 가로 쓰는 익힘’이라는 제목으로 가로 풀어쓰기의 보기를 보였다. 이후 주시경의 제자들이 주축이 되어 [[한글 학회]]의 전신인 조선어 연구회를 창립하고 가로 풀어쓰기의 보급에 힘썼다. 가로 풀어쓰기는 오랫동안 학회의 숙원이었고 학회지 《한글》의 표지에는 제호 《한글》 위에 풀어쓰기로 쓴 ㅎㅏㄴㄱㅡㄹ’이 있었다. 학회지에서는 이런 광고를 내 풀어쓰기 시안을 모집하기도 했다.
 
: 한글 가로쓰기(橫綴)는 필요한가?
: 만일 필요하다면, 그 자체(字體)는 어떻게 하며,
: 서법(書法)은 어떻게 할 것인가?
: 이에 대하여 연구하신 것이 계시거든 본사로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기에 대해 [[최현배]]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제안을 보내왔고, 지금 풀어쓰기라고 말하면 주로 최현배의 안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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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수백 년에 걸쳐서 쓰여 온 모아쓰기를 풀어쓰기로 대체하려는 데에는 저항도 있었고 시간도 모자랐다. [[일제 시대]]가 끝난 뒤에는 이미 한국인의 언어 생활에 일본어가 깊숙히 침투해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1954년]] 문교부의 새 [[한글 간소화 파동|한글간소화한글 간소화 방안]]이 모아쓰기의 편을 들어주면서 모아쓰기-풀어쓰기 논란이 일단락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주시경의 제자이자 [[조선어 신철자법]] 제정의 주축이었던 [[김두봉]]이 풀어쓰기를 지지했으나, 그의 정치적인 몰락과 함께 풀어쓰기 논쟁이 사라졌다. [[김일성]]은 풀어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분단 상황에서 남북이 서로 다른 문자 체계를 가지는 것은 반대했기 때문에 풀어쓰기를 쓰더라도 통일 이후에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ref>고길섶, 《스물한 통의 역사 진정서》. 도서출판 앨피. 2005.</ref>
 
===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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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계화 ===
풀어쓰기가 지지를 얻은 직접적인 배경은 당시 모아쓰기 한글을 인쇄 매체에서 활용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주시경은 《[[독립신문]]》의 교정을 맡은 경험이 있는데, 원고가 완성되면 바로 [[조판]]할 수 있는 [[영어로마자]]와 달리 한글은 조판하기 전에 원고대로 활자를 뽑는 이른바 ‘문선 (文選) 식자 과정’을 거쳐야 했고, 주시경은 이 때문에 한글이 뛰어난 과학성에도 불구하고 로마자에 뒤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기계식 타자기로 모아쓰기 한글을 칠 방법은 한동안 나오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풀어쓰기의 필요성이 시급한 것으로 여겨졌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한글 기계화를 위한 풀어쓰기의 필요성은 희박해졌으나, [[글꼴]] 만들기나 전산 처리에서 여전히 풀어쓰기가 더 편리한 것으로 여겨진다.
 
=== 맞춤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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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율 ===
모아쓰기에서는 초성이 없는 음절의 초성 자리에 음가 없는 [[ㅇ]](이응)을 넣는다. 이것은 쓸모없는 ㅇ인데, 한국어에서 홀소리로 시작하는(즉, 초성이 ㅇ인) 낱말이 10 퍼센트를 훨씬 넘는다. 토씨는 사용 빈도가 다른 품사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데 토씨 가운데 ‘~이, ~에게, ~으로, ~을’ 따위처럼 홀소리로 시작하는 것이 많고, 용언의 활용에서 어미에 ‘으’가 자주 사용된다. 이 불필요한 ’의 삽입으로 필기할 때나 타자할 때 더 많은 수고를 들이게 되고, 따라서 기록의 효율이 떨어진다.
 
또한 풀어쓰기에서는 홀소리 ’를 생략할 수 있을 때가 많다. 풀어쓰기로 ‘그러므로’를 써서 ‘ㄱㅡㄹㅓㅁㅡㄹㅗ’가 될 때, 첫 ‘ㅡ’는 생략되어도 혼동이 없다. 한국어에는 낱말의 첫머리에 두 닿소리가 잇달아 등장하는 일이 없어서, 첫머리에 닿소리 두 개 이상이 연속적으로 등장하면 첫 자음 뒤에 ’를 붙여 읽도록 규칙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풀어쓰기 방안에 따라서 다른데, 겹닿소리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한글 기본 24자만으로 풀어쓰기를 하도록 하는 안에서는 쓰지 않는다.
 
=== 문자 생활 ===
[[영어]]를 비롯해 [[로마 문자]]나로마자나 [[키릴 문자]] 등을 쓰는 서양 언어에서는 여러 낱말의 첫 글자만 따서 만든 머릿글자 약어가 자주 사용되지만, 한국어에서는 이것이 음절 단위로 고정되어 있다. 예컨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전경련’으로 쓰기는 하지만 ‘ㅈㄱㄹ’ 등으로 줄이지는 않는다. 모아쓰기는 언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합성어의 중간 몇몇 낱자가 생략되는 등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겪지 못하고 음절 단위로만 변화하도록 만드는 족쇄가 될 수 있다.
 
또 모아쓰기에서는 ‘아’, ‘가’, ‘각’ 등이 모두 같은 길이의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적은 공간 안에 많은 뜻을 넣어 지면의 효율을 높여야 하는 [[신문]] 같은 매체에서는 받침이 많고 그것으로 뜻을 구별하곤 하는 [[한자어]]를 선호하게 된다. 반면 풀어쓰기에서는 ‘아’, ‘가’, ‘각’ 등이 차지하는 공간의 폭이 모두 다르고, 받침이 많은 한자어에 비해 받침이 적은 고유어가 표기 길이의 경쟁에서 약점을 만회할 수 있다. <ref>천영수, “모아쓰기와 풀어쓰기에 대하여”, 한글새소식 366, 한글학회.</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