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튀르크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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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 하미드 2세]]가 [[러시아-투르크 전쟁]](1877~1878)을 이유로 [[헌법]]을 정지시키고 [[전제 정치]]를 부활하자, 1889년 이에 대항하여 비밀 결사로 출발하였다. 이 단체가 바로 '''청년 투르크 당투르크당'''이다. [[육군사관학교]]와 기술학교 [[장교]]들, [[교사]], [[지식인]], 기타 회사원이 많이 가담했는데, 20세기에 들어와 청년 장교층이 혁명의 중심이 되면서 세력이 커졌다. 1908년에 이르면 당원들과 군대를 모두 동원하여 황제 [[압둘 하미드 2세]]에게 압력을 가해 [[미드하트 헌법]] 부활을 서명하게 한 동시에 퇴위를 명령하였다. 이 때 더욱 확실해진 근대화가 시작되었으며 [[기관총]], [[전투기]], [[수류탄]] 등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극단적인 투르크 민족주의는 오히려 [[아랍인]]과 다른 이민족의 반발을 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 제국]] 편에 가담하여 [[패전국]] 취급을 받았으며, 가혹한 [[세브르 조약]]에 승인한다. 이 단체는 [[1922년]] 11월, 제국이 해체될 때 같이 해체되었다.
 
{{토막글|유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