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문성: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두산리 아니에요 PDF 울산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참고하시고 척과리로 되어있습니다.
32번째 줄: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10월에 축조될 당시, 수도의 남쪽 관문 역할을 감당하는 성으로 축조되었다. 원래 이름은 모벌군성·모벌관문이었는데, 조선시대에 관문성으로 부르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f>[http://www.cha.go.kr/unisearch/popup/Com_Db_View_Search.jsp?VdkVgwKey=13,00480000,37 문화재청]{{깨진 링크|url=http://www.cha.go.kr/unisearch/popup/Com_Db_View_Search.jsp?VdkVgwKey=13,00480000,37 }}</ref>
 
본래는 현재의 [[울산광역시]]와 [[경상북도]] [[경주시]] 경계를 따라서 12km 가량 길게 이어진 장성(長城)이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퇴락하여 남아있는 것은 일부뿐이다. 성의 흔적은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에서 출발하여, 울산광역시 [[북구 (울산광역시)|북구]] 중산동을 거쳐,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두산리까지척과리까지 이어져있다.
 
== 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