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그리스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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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톤 재위 시기(1833년~1863년) ==
{{참고|그리스 왕국|오톤 (그리스)}}
[[파일:Otto of Greece.jpg|썸네일|left|200px|초대 국왕 5톤오톤]]
 
오톤의 치세는 어려운 시대였지만, 국왕 자신과 [[올덴부르크의 아말리아|아말리아 왕비]]가 영국 군함을 타고 다시 돌아갈 때까지 30년간 지속되었다. 치세 초기에 [[바이에른]] 섭정단이 그의 이름으로 나라를 다스렸는데, 가장 중요한 국가 기관을 건드리지는 못했지만 그리스에 독일식의 엄격한 체계를 강요하려 들어 인망을 잃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그리스 행정부, 군대, 사법 체제, 교육 제도의 기틀을 닦았다. 오톤은 그리스에 좋은 정부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그에게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로는 그가 [[그리스 정교회]]를 위해 자신의 [[로마 가톨릭]] 신앙을 부인하려 하지 않았으며, 또 아말리아 왕비는 아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즉 오톤이 정교회 의식에 따라 그리스의 국왕으로 대관할 수 없고, 자신의 왕조를 세울 수도 없다는 뜻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