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62번째 줄:
== 생애 ==
=== 생애 초반 ===
중종은 [[조선 성종|성종]]과 [[정현왕후]]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성은 [[이씨|이(李)]], 본명은 이역(李懌),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全州)]]이다. 이복 형인 [[조선 연산군|연산군]]은 [[폐비 윤씨]]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정현왕후]]를 친어머니로 여기면서 자라다가, 우연한 기회에 [[폐비 윤씨]]의 일을 알게 되었다. 이후 [[정현왕후]]와의 관계는 소원해졌지만 , [[조선 연산군|연산군]]은 어린 이복동생에게는 친절하였다. 그 뒤 진성대군은 [[신수근]]의 딸과 가례를 올린다. [[신수근]]의 아버지는 [[영의정]] [[신승선]]으로 [[조선 연산군|연산군]]의 정비 [[거창군부인]]신씨의 친정아버지이기도 했다. 친가로는 이복 형제였지만, 처가로는 처고모부와 조카사위의 관계가 되었다.
 
1494년에 진성대군(晉城大君)으로 봉해졌다가 1506년에 [[음력 9월 2일]] [[조선 연산군|연산군]]의 폭정에 반발한 [[성희안]](成希顔) · [[박원종]](朴元宗) · [[유순정]](柳順汀) 등이 일으킨 [[중종반정]]이 성공함에 따라 조선의 새 임금으로 추대되었다. 당시 진성대군은 자신을 국왕으로 세우기 위해서 온 반정군을 적으로 여겼을 정도로 정치에 큰 관심이 없었다.
122번째 줄:
 
=== 정치투쟁의 희생양이 되다 ===
 
중종은 재위 전반기의 전체적인 사회 개혁과 사림 정권을 견제할 목적으로 조광조를 기용하였으나 이후 조광조가 현량과 실시, [[소격서]] 폐지 등을 주장하면서 점차 그를 멀리하게 되다가 그를 제거할 마음을 가지게 되고 대신들이 조광조 제거를 위해 일으킨 [[주초위왕]] 사건 이후 조광조를 사사시킨다. 외에도 척신들의 권력다툼을 제어하지 못하였고 그저 왕으로서의 자리만 지켰으며 외척세력이 정국을 주도하는 척신정치를 열어주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