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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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일본]]에서 [[유치진]]을 중심으로 유학생들이 신극 운동을 할 때 참가하여 문예 운동에 뛰어들었다.
 
[[1934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계열 연극인들이 창단한 극단 신건설을 빌미로 [[신건설사 사건]]이 발생하였다. '''최정희'''도 이때 체포되어 [[전주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카프계 영화인 [[김유영 (1907년)|김유영]]의 부인이었던 '''최정희'''는 이 사건에서 여성 작가로는 유일하게 옥고를 치렀다.<ref>{{웹 인용|url=http://digest.mk.co.kr/sub/guidebook/guidebook.Asp?Book_Sno=4030007|출판사=매일경제|제목=인간사|확인날짜=2008-08-24}}{{깨진 링크|url=http://digest.mk.co.kr/sub/guidebook/guidebook.Asp?Book_Sno=4030007 }}</ref>
 
두 번째 남편인 김동환과는 [[1931년]]에 김동환이 발행하는 잡지 《[[삼천리 (일제 강점기의 잡지)|삼천리]]》의 기자로 입사하면서 만나게 되었다. 당시 김동환은 첫 부인과 결혼하여 자녀들을 두고 있었으나, 최정희와 사랑에 빠져 집을 나간 뒤 새살림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