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에 소요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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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포츠담선언|포츠담선언]]의 일본천황의 승낙에 따른 [[일본제국|일본제국]]의 항복이 일본의 제 124대 천황 [[쇼와 천황|쇼와천황]] 히로히토의 [[종전조서|라디오방송]](옥음 방송)을 통해 일본 전 국민에게 발표되고, 이틀 후 [[8월 17일]] [[도쿄도]]에서는 항복에 반대하는 존양동지회 회원들이 [[미나토구 (도쿄도)|미나토구]]의 아타고산({{llang|ja|愛宕山|아타고야마}})에서 농성하며 전국에 봉기를 주장하는 소요사건이 발생하였다. 마쓰에 소요사건은 이 아타고산 농성에 호응하는 형태로 발생했다.<ref name="kokushi"/> 존양동지회의 회원인 오카자키 이사오를 중심으로 20세 전후의 남녀 수십명이 "황국의용군"이라 자칭하며 [[8월 24일]] 새벽에 봉기하였고, 흩어져서 시마네현내의 주요시설을 모두 습격하였다. 시마네현청은 불에 소실되고, 신문사, 발전소도 그 기능이 일부 마비<s>무력화</s>되었다. 사전 계획에서는 현지사와 지방검찰의 검사정(현:검사장)의 암살도 도모되었지만, 계획에 차질이생겨 실패하였다. '황국의용군' 일당은 시내 각지를 습격한 후, 전국에 봉기를 주창하기 위하여 방송국에 모였으나, 방송국장은 이를 완강히 거부하였다. 봉기대와 방송국장 사이의 말다툼이 계속되는 사이 도착한 경찰관과 일본군대가 방송국을 포위, 봉기대 전원이 모두 체포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 사건의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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