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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aster Heon Kim.jpg|thumb|각궁으로 과녁을 겨눈 모습]]
{{출처 필요|날짜=2012-04-12}}
'''궁도'''(弓道)는 [[각궁]]으로 대나무 살을 쏘아 과녁을 맞추어 승부를 겨루는 한국의 전통 [[궁술]] 스포츠이다.<ref name="경기규칙">[http://kungdo.sports.or.kr/servlets/org/front/app20/action/app20_30 경기규칙], 대한궁도협회</ref> [[양궁]]에 대비하여 '''국궁'''(國弓)이라고도 부른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98666 '50보 100보', 국궁 활쏘기에 견주어보니], 오마이뉴스, 2012년 11월 6일</ref> 본래 궁도는 [[무과]] 시험의 과목으로 정해져 있는 [[무예]]였으며 [[무예도보통지]]의 무예이십사반 가운데 하나였다.<ref name="이중화">이중화, 김이수 역, 《21세기에서 바라본 조선의 궁술 한국의 몸짓 우리의 대표 신체문화 국궁 - 21세기에서 바라본 조선의 궁술》, 한국학술정보, 2010년, {{isbn|978-89-2680-658-6}}</ref>{{참고 쪽|100-102}} 조선 시대에는 여러 종류의 [[활]]이 만들어졌으나 현재까지 제작 기법이 이어져 오는 것은 각궁 뿐이다.<ref name="궁도협회_유래">[http://kungdo.sports.or.kr/servlets/org/front/app20/action/app20_10 유래], 대한궁도협회</ref> [[전국체육대회]]의 한 종목이다.<ref>[https://national.sports.or.kr/scheduleall.do?kind=indexScheduleAll&gubun=06 경기일정], 제100회 전국체육대회</ref>
'''국궁(國弓)'''은 전통 활을 쏘아 과녁을 맞추어 승부를 겨루는 한국의 전통 무술이다. [[활쏘기]] 또는 [[궁술]]이라고도 부른다. 본래 국궁은 무예였지만 현재에는 개량되고 규격화되어 스포츠화 되었다. 국궁은 사정(射亭)에서 즐길 수 있다. 국궁은 대한민국의 가장 대중화된 무예였다.
 
 
==역사==
[[궁시|활과 화살]]의 유물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최소 2만년 전 이전인 [[중석기]] 시기에 사용된 것이 발견되었다.<ref>[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305440307002142?via%3Dihub Middle Stone Age bone tools from the Howiesons Poort layers, Sibudu Cave, South Africa]</ref> 활은 사냥과 전쟁을 위해 전세계에 걸쳐 사용되었다. 한국의 경우도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돌화살촉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화살촉이 금속으로 대체된 것은 [[철기시대]] 이후이다.<ref>민승기,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기획, 2004년 {{isbn|978-89-8435-207-0}}, 61쪽</ref>
 
활은 오랫 동안 전쟁 무기로 사용되었다. 상고 시대를 기록한 중국의 역사서에는 [[예맥|예]]의 단궁(檀弓)이나 [[고구려]]의 맥궁(貊弓)과 같은 활의 이름을 남기고 있다.<ref name="이중화" />{{참고 쪽|47}} 활은 크기를 기준으로 장궁과 단궁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말을 타고 사용하는 활은 기동의 편의를 위해 길이가 짧은 단궁으로 길어도 1 미터를 넘지 않는다. 고구려의 벽화에 나온 수렵도를 보면 말을 타고 각궁을 사용하여 사냥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ref>[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m/view.do?levelId=km_014_0030_0010_0040 동아시아 최고의 활과 기사술], 우리역사넷</ref>
 
고려에서 조선까지 시행된 무과 과거시험에서 활쏘기는 기본적인 평가 항목이었다. 조선의 무과에서 초시와 복시에는 [[목전]]이 사용되었다. 과녁은 240보 거리에 놓였으며 기본으로 3발을 쏘아 관중하는 활 마다 7점을 주었다. 그 보다 먼 과녁에 대해서는 5보 마다 1점을 더하였고 50보를 넘기면 과녁을 맞추지 못하였어도 1점을 주었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8685 목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f> 조선시기 사용하던 화살촉은 목전 이외에도 철전(鐵箭)·유엽전(柳葉箭)과 같은 것이 있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9&cp_code=cp0208&index_id=cp02081185&content_id=cp020811850001&print=Y 화살], 문화콘텐츠닷컴</ref>
 
근대적인 궁도는 [[일제강점기]]에 정립되었다. 1922년 7월 11일 서울 황학정에서 발기인 35인이 모여 조선궁술연구회가 창립되었으며 해방 이후 조선궁도회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48년 다시 대한궁도협회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83년 대한양궁협회가 분리되어 현재는 양궁이 아닌 전통 궁도 대회만을 개최한다.<ref name="궁도협회_유래" />
국궁은 대한민국에서 선사시대부터 행해졌다. 대한민국은 고대부터 활과 화살로 유명했으며 중국의 여러 서적을 보면 동이족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한국이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는 것을 한자로 표기했는데 내용과 발음이 변형되어 결국 동이족으로 자리잡았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국궁은 전쟁이 기존의 활, 칼을 이용한 전쟁에서 총, 대포등 근대화된 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으로 바뀜에 따라 점점 그 목적이 무예에서 스포츠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에 국궁은 탄압당했고 해방 이후 '''대한체육회'''의 발족과 함께 '''대한궁도협회'''가 가입함에 따라 다시금 부흥하고 있다.
 
==경기시설 및 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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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ukgung field.jpg|섬네일|대전 무덕정 활터]]
[[파일:Gukgung field from a archery house.jpg|섬네일|무덕정 안에서 내다본 활터]]
활을 쏘는 장소인 활터로 전국에 걸쳐 분포하며 조선 후기에 국궁이 번성했던 것을 보여주듯 다수의 사정이 그 명맥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황학정]]은 고종이 활을 쏘던 사정이고<ref>[http://www.hwanghakjeong.org/ 황학정]</ref>, 인천 [[무덕정]]과 전주 [[천양정 (전북)|천양정]]도 전통이 있는 대표적인 사정이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50300230001 민간의 활터], 문화콘텐츠닷컴</ref>
 
====정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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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량궁====
국궁의 보급을 위하여 만들어진 활로 처음에는 글레스화이바로 만들어지다가 화학소재와 화피, 고자와 도고지를 갖춘 것이 만들어졌다.<ref>[http://www.sj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8 개량국궁 '송무궁'을 아십니까], 세종의 소리, 2012년 11월 8일</ref>[[각궁]]보다 얹었을 때 10cm가량 길고 활을 쏘았을 때 충격흡수가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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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대===
궁대는 활을 보관하는 천으로 된 긴 형태의 자루이다. 활을 쏠 때는 허리에 둘러 화살을 꽂을 수 있다. 궁대는 매는 방법은 외매듭으로 삼등분하여 좌궁은 좌측 뒷주머니에 우궁은 우측 뒷주머니에 매듭이 가도록 하면 된다.
 
=== 복장 ===
정규 대회의 복장은 상하의 모두 흰색이어야 하고 흰색 운동화를 착용한다. 경기복 상의에 소속 시도나 사정의 이름을 표기한다.<ref name="경기규칙" /> 복장규정은 1970년대에 만들어졌지만 공식 대회에 모두 적용된 것은 1980년대 이후이다. 흰색이라고 하더라도 운동복 차림이어야 하고 한복은 금지되고 있다.<ref>[http://www.archerynews.net/news/view.asp?idx=1545&msection=1&ssection=35 전통성 담은 다양한 복장 필요], 국궁신문, 2016년 12월 18일 </ref>
 
==사법==
국궁에서 사법은 가장 대표적으로 '''사법팔절'''이 있는데 이는 활을 쏠 때의 자세와 동작을 8단계로 구분해서 가르치는 사법이다. 사법팔절의 8단계는 단절된 동작이 아닌 물이 흐르듯 이어지는 일렬의 동작이다동작으로 발디딤, 화살점검, 살먹이기, 들어올리기, 밀며당기기, 만작, 이시, 잔신으로 이루어진다.<ref>[http://www.koreabow.or.kr/introduction_posture.html 활쏘는 기본 자세], 대한궁술협회</ref>
 
==커뮤니티와 예절==
사정은 그 지역의 궁도 모임인 사계(射契)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사계는 회원을 사원(射圓)으로 칭하며 자체적인 조직을 갖추고 예절을 중요시 한다. 사계의 구성원에는 우두머리인 사두와 부사두, 활쏘기를 가르치는 선생,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사무 등이 있다. 이 외에 활쏘기를 하면서 떨어진 화살을 줍는 사람을 연전꾼, 과녁을 맞추었는 지를 알려주는 고전, 편을 나누어 활을 쏠 때 자기 편의 관중 여부를 알려주는 거기한량과 같은 사람이 있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13&cp_code=cp0210&index_id=cp02100281&content_id=cp021002810001&print=Y 활터의 구성원], 문화콘텐츠닷컴</ref>
 
===예절===
[[파일:Gungdo of 100th National sports games Seoul 2019 004.jpg|thumb|제100회 전국체전 궁도 대회가 열린 인천 청룡정. 가운데 습사무언 비석이 보인다.]]
 
궁도는 정신 수양을 강조하고 예절을 중시한다. 예로부터 다음과 같은 궁도구계훈이 전하여 온다.<ref>[http://kccfgg.org/webzine/src/webzine_view.php?idx=9&Focus=103 부천의 궁시문화], 경기문화저널</ref>
{{인용문|
: 정심정기(正心正己) 몸을 바르게 함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고
: 인애덕행(仁愛德行) 어짐과 사랑으로 덕스러운 행실을 하고
: 성실겸손(誠實謙遜) 정성스럽고 참되고 실속 있게 남에게 나를 낮추어 순하게 대하고
: 자중절조(自重節操) 자신의 품의를 소중하게 하고 절개와 지조를 굳게 지키고
: 염직과감(廉直果敢) 곧고 청렴하며 용감하고 결단성을 강하게 가지며
: 예의엄수(禮儀嚴守) 예를 차리는 절차와 몸가짐을 엄하게 지키며
: 습사무언(習射無言) 활 쏠 때는 말하지 말 것이며
: 불원승자(不怨勝者) 나를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말 것이고
: 막만타궁(莫灣他弓) 남의 활을 당기지 말 것이다.
}}
이 가운데 습사무언은 사정의 활마당 마다 비석으로 새겨져 있다.
 
새로 활을 쏘게 된 사람은 신입사를 하고 처음으로 과녁을 맞추면 관중례를 하였다. 사정에 도착하면 먼저 복장을 갖춰 입고 사대에 올라서기 전에 사정의 어른들께 인사를 올려야 한다. 다음으로 정간배례를 하는데 이는 초순을 쏘기 전에 정간을 향하여 절을 하는 예이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9&cp_code=cp0503&index_id=cp05030004&content_id=cp050300040001&search_left_menu=1 활터 문화와 예절], 문화콘텐츠닷컴</ref> 다음으로 활을 준비한 후 다른 사람들이 활을 쏘러 사대에 오를 때 같이 오르도록 한다. 사대에 올라서는 과녁을 향해 인사를 한 후 ‘활 배우러 왔습니다’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 ‘활 배우러 왔습니다’ 라고 하면 ‘많이 맞히세요’등 덕담을 해준다.<ref>[https://brunch.co.kr/@wholmesian/15 무작정 궁도장을 찾아가 봤다], 브런치</ref> 사대에 올라 활을 쏠 때는 가장 연장자 또는 높은 분부터 좌측에서 순서대로 서서 쏜다. 활을 쏠 때는 잡담을 금하며 이는 남이 활을 쏠 때도 마찬가지다. 활을 한 순(5시)을 쏘면 다시 과녁을 향해 인사를 한 후 사대에서 내려온다. 이 때 다른 사람이 모두 다 쏠 때까지 기다려 모두 함께 퇴장할 수 있도록 한다. 일정 시간을 쉬고 다시 입장하며 몇 순을 쏜 후 화살을 주우러 갈 때는 모두가 함께 주우러 가며 함부로 사대 앞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한다.
==예절==
 
정간례에 대해서는 필요없다는 의견도 있고<ref>[http://www.archerynews.net/news/view.asp?idx=410&msection=1&ssection=35 대한궁도협회의 정간론에 대한 비판], 국궁신문, 2010년 6월 19일</ref> 활터의 예절 역시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ref>[http://www.archerynews.net/news/view.asp?idx=1723&msection=1&ssection=35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경직성에서 탈피해야], 국궁신문, 2018년 6월 24일</ref>
===사정에서의 예===
사정에 도착하면 먼저 복장을 갖춰 입고 사대에 올라서기 전에 사정의 어른들께 인사를 올려야 한다. 다음으로 정간배례를 하는데 이는 초순을 쏘기 전에 정간을 향하여 절을 하는 예이다. 다음으로 활을 준비한 후 다른 사람들이 활을 쏘러 사대에 오를 때 같이 오르도록 한다. 사대에 올라서는 과녁을 향해 인사를 한 후 ‘활 배우러 왔습니다’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 ‘활 배우러 왔습니다’ 라고 하면 ‘많이 맞히세요’등 덕담을 해준다. 사대에 올라 활을 쏠 때는 가장 연장자 또는 높은 분부터 좌측에서 순서대로 서서 쏜다. 활을 쏠 때는 잡담을 금하며 이는 남이 활을 쏠 때도 마찬가지다. 활을 한 순(5시)을 쏘면 다시 과녁을 향해 인사를 한 후 사대에서 내려온다. 이 때 다른 사람이 모두 다 쏠 때까지 기다려 모두 함께 퇴장할 수 있도록 한다. 일정 시간을 쉬고 다시 입장하며 몇 순을 쏜 후 화살을 주우러 갈 때는 모두가 함께 주우러 가며 함부로 사대 앞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한다.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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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
{{각주}}
<references/>
 
[[분류:국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