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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정보
| 이름 = 서지원
| 본명 = 박병철 (朴秉哲)
| 출생일 = {{출생일|1976|2|19}}
|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한강로 1가]]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96|1|1|1976|2|19}}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서울)|대방동]]
| 국적 = {{국기나라|대한민국}}
| 가족 =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박병훈
| 장르 = 가요, 발라드,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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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 [[개신교]]
| 악기 = 피아노, 첼로
| 활동시기 = [[1994년]] ~ [[1995년]]<ref>1996년 1월 1일에 사망했으므로요절했으므로 실질적인 활동 기간은 1995년까지이다.</ref>
| 레이블 =
| 소속사 = 옴니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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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사이트 =
}}
'''서지원'''(<small>본명:</small> '''박병철''' (朴秉哲), [[1976년]] [[2월 19일]] ~ [[1996년]] [[1월 1일]])은 [[대한민국]]의 [[발라드 (대중음악)|발라드]] [[가수]]이다. [[서울용산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다가, [[1994년]] [[10월]]에 가수의 꿈을 안고 대한민국에 돌아와 데뷔하게 된다. 1집 앨범 'Seo Ji Won'을 발표하자마자 수많은 소녀팬들을 확보하고 단숨에 인기 스타로 떠올랐다.
 
== 생애 ==
[[서울특별시]] [[용산구]]에서 2남 중 첫째로 태어났다. 그 후 [[서울]]의 [[서울용산초등학교|용산초등학교]]를 다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건너가 코헹가 초등학교(Cahuenga Elementary School), 존버로즈 중학교(John Burroughs Middle School), 다우니 고등학교(Downey High School)를 졸업하였고 19세에 [[대한민국]]으로 귀국해 1집 앨범 'Seo Ji Won'으로 정식 데뷔했다.
 
== 사망요절 ==
어린 나이부터 받은 뜨거운 관심과 인기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됐으나, 정작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힘든 역경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이혼을 겪는 등 외로운 성장기를 보냈던 서지원은 소속사와 부모님의 기대감을 이기지 못하고 [[1996년]] [[1월 1일]]에 2집 앨범 발표를 앞두고 자살로 세상을 등지게 된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인기가수 徐지원서지원 자살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044574
|출판사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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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996-01-02
|확인날짜 = }}</ref>
향년 20세
 
훗날 가수 겸 싱어송라이터 [[정재형]]은 서지원에 대해 약간의 트라우마가 있고, 또 그를 잘 몰라줘서 지금까지도 너무 후회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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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날짜 = }}</ref>
 
=== 사망요절 전과 후의 과정들 ===
 
* '''[[1995년]] [[12월 30일]]'''
 
소속 프로덕션 송년회 자리에서 서지원은 매니저이병희 이병희씨가매니저가 "나는 너를 제일로 친다" 는 얘기를 하자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 날 서지원은 2집과 팬들의 반응에 대한 걱정, 연말의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혼자 있는것에 대한 불안감, 별거중인 부모님에 대한 아픈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 '''[[1995년]] [[12월 31일]] ~ [[1996년]] [[1월 1일]]'''
 
친한 선, 후배 및 스태프와 송년회를 마친 후 새벽에 후배 3명과 술에 취해 아파트로 돌아온 서지원은 매니저에게 울면서 "나 없어도 잘 살 수 있죠? 나 없어도 PR 잘 하실수 있죠?"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매니저는 "너 없으면 못 산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들어가서 자라"며 방으로 들여 보냈는데 다음날인후다음날 8시30분께오후 서울8시 30분쯤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대방주공2단지아파트(서울)|대방동]] 205동 203호자택 안방 침대 위에서 인기가수 朴병철군(예명 서지원)이서지원이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후배 尹모군윤 모(18.무직당시 19세) 발견, 용산 중대병원[[중앙대학교병원]] 응급실로응급실<ref>[[2011년]]에 폐원하였다.</ref>로 후송됐으나 동공확인 및 심전도 검사 후 사망[[죽음|요절]] 판정이 내려졌다. 尹군에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이날 술에서 깨어나 밖에서 담배를 사가지고 들어와 담배를 피우고 있던중 침대 위에 누워있던 朴군이서지원이 갑자기 입술과 온몸이 파랗게 변한 채 경련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朴군이그가 잠을 자던 침대 위에는 노란색 알약 1알이 떨어져 있었으며 방안에는 평소 朴군이그가 복용하던 빈 약병과 유서를 써놓은 일기장이 놓여져 있었다. 1월 1일 오후8시오후 8시 30분경에 뒤늦게 발견되었지만 정확한 자살시점은 1995년 12월 31일 밤으로 확인되었다.
 
* '''[[1996년]] [[1월 4일]]'''
 
아버지 박시웅씨를박시웅을 비롯해 어머니, 남동생이 빈소를 지키고있는 가운데 매니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립과학수사연구소]]<ref>연구원으로 승격된 시기는 [[2010년]] [[8월]]이다.</ref>에서 부검을 한 결과 신경안정제로신경 안정제로 보이는 300여개의300여 개의 알약이 검출되었으며 유언장은 부모의 필적확인 결과 서지원의 자필임이 확인되었다고 발표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가수 徐지원의서지원의 죽음은 자살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045840
|출판사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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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1월 5일]]'''
 
아침 9시9시에 기독교식으로 장례절차를장례 절차를 마치고 중앙대병원중앙대학교 용산병원 영안실을 출발한 운구차는 10시 30분30분에 [[등촌동]]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공개홀]] 앞에 도착해 노제를 치렀다. 100여명의100여 명의 소녀팬들이 국화송이를[[국화]]를 영전에 바치며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동료가수 강태석이 조사를 읽었고 [[잉크 (음악 그룹)|잉크]], [[김태후]], [[박지원 (음악가)|박지원]], [[박선주 (가수)|박선주]], [[김준희 (1976년)|김준희]], [[DJ DOC]], [[쿨 (음악 그룹)|쿨]], 개그맨 [[이홍렬]] 등 생전에 가까이 지냈던 동료 연예인들이 오열하며 서지원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서지원의 유해는 벽제로[[벽제동|벽제]]로 옮겨져 화장을 했고 [[1999년|3년 뒤]]에 고인의 뜻에 따라 [[지리산]] 정상에[[천왕봉|정상]]에 뿌려졌다.
 
=== 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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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
:내가 지금 이 모든 일을 한글로 적는 것은 아무래도 유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 누군가 이 글을 봤을 때 나를 이해하길 바래서이다바라서이다. 내가 오랫동안 각오해 왔던 바이지만 드디어 용기를 내어 실행에 옮기게실행하게 되었다.<br/><br/>나는 그 동안 약을 복용해왔다. 그 이유는 안정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 세상은 내가 존재하기에 너무도 험한 곳이고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 것 같다. 2집 활동을 앞둔 나는 더 이상 자신도 없고, 활동 중 군대도 가야하고 내 가족들을 또 사무실 가족들을 책임지기엔 너무도 벅차다. 새해를 맞이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br/><br/>난 이제껏 진실하지 못했다. 하지만 몇 사람들에겐 정말 죄송하다. 하나님, 부모님, 전무님, 실장님, 정현, 승만, 세진(이 셋은 동등하다.) 태석이 등등 너무 미안하다. 그들은 남은 인생을 나처럼 살지 않길 바란다. 내가 못 이룬 꿈을 내 동생들이 이루었으면 좋겠다. 난 항상 생각해 왔다. 무엇이 날 이렇게 초라하게 만드는지, 그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못 이긴 것 같다. 연예인으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난 더 이상 힘이 없다. 차라리 미국에서 평범하게 공부나 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br/><br/>세상에게 할 말은 뚜렷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냥 진실한 세상이었으면 한다. 내 마음을 모두 표현 못 하겠지만 나를 정말 지켜오고 나를 아는 사람은 날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픔도 알 것이다. 나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은 정말 없길 바란다. 전무님은 내가 죽은 뒤에라도 PR을 잘해 2집이 많이 성공적이길성공하길 빈다.<br/><br/>내가 이런 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건 아무도 모르겠지. 난 항상 밝게 살아왔으니까... 죄송하다... 정말 죄송하다... 정말, 사랑하고 싶었는데... 그러고 싶었는데... 전무님께 정말 죄송하구요죄송하고요, 실장님께도 죄송하구요죄송하고요, 다른 바램은바람은 아무것도 없구요없고요.... 우리 어머니 좀 잘 돌봐주세요.<br/>그리고 정현이, 승만이, 세진이는 정말 끝까지 책임져 주세요. 그리고 저 용서해주세요. 그게 저의 마지막 바램이에요바람이에요.}}
 
=== 마지막 음성 ===
죽기 직전, 서지원은 자신의 호출기에 흐느껴 울며 자신의 팬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목이 메인 듯한 울음소리로 "여러분, 사랑합니다...부디 그것만은 꼭 기억해주세요." 라고 간신히 힘겹게 이어가던 그의 마지막 음성은 후에 그의 3집 앨범 [Made In Heaven]에 삽입되어, 많은 팬들을 눈물 흘리게 했다.
 
=== 사후 ===
서지원의 사후 그의 유작 앨범 [Tears] (2집), [Made In Heaven] (3집)과 [BEST ALBUM]이 잇따라 발매되었다발표되었다. 2집 [Tears]의 타이틀곡인 '내 눈물 모아'는 각종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다.
 
== 앨범 ==
* Seo Ji Won (1994.10[[1994년]] [[10월]] 발표)
# 또 다른 시작 - 작사/글: [[오태호]], 작곡: 오태호, 편곡: [[김형석 (음악가)|김형석]]
# 잊을 수 있겠니 - 작사/글: 박선영, 작곡: 안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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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시작 (Inst.) - 작곡: 오태호, 편곡:김형석
 
* Tears (1996.01.22[[1996년]] [[1월 22일]] 발표)
# 내 눈물 모아 - 작사/글: 김혜선, 작곡: [[정재형]]
# I Miss You - 작사/글: 오태호, 작곡: 오태호 (원곡 : [[강수지]] - I mi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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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가 - 작사/글: 안익태, 작곡: 안익태, 편곡: 윤일상
 
* Made In Heaven (1996.12.261996년 [[12월 26일]] 발표)
 
== 수상 ==
줄 115 ⟶ 114:
|
* '''내 눈물 모아 (총 7회)
** [[3월 30일]] [[MBC TV|MBC]] 《[[인기가요 BEST 50|인기가요베스트50인기가요 베스트 50]]》 1위
** [[4월 6일]] [[MBC]][[인기가요 BEST베스트 50|인기가요베스트50]]》 1위
** [[4월 7일]] [[SBS TV|SBS]] 《[[TV 가요 20|TV가요20]]》 1위
** [[4월 13일]] [[MBC]][[인기가요 BEST베스트 50|인기가요베스트50]]》 1위 (3주 연속)
** [[4월 14일]] [[SBS]][[TV 가요 20|TV가요20]]》 1위
** [[4월 21일]] [[SBS]][[TV 가요 20|TV가요20]]》 1위 (3주 연속)
** [[5월 8일]] [[KBS 2TV|KBS]] 《[[가요톱10|가요톱텐가요 톱 텐]]》 1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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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아이돌 가수]]
[[분류:1990년대 가수]]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음악가]]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가수]]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