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 박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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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박지윤(朴智胤)은 고려 태조의 장인으로 삼중대광시중을 역임했다.
그가 평산에 대대로 살았기 때문에 후손들이 평산을 본관으로 하였다.
아버지는 대모달읍장(大毛達邑長)박직윤(朴直胤)이다.
 
박지윤은 2남1녀를 낳았다 박수문과(장남) 박수경(차남)이고 딸은 성무부인이다 태조왕건의 비이다.
 
성무부인(聖戊夫人)은 효제태자(孝悌太子)·효명태자(孝明太子)·법등군(法登君)·자리군(資利君)의 네 아들과 1명의 공주를 출산하였는데 4명의 아들은 모두 일찍 죽어 후손이 없다.
 
박수문[朴守文]요약 고려 초기의 공신이다. 943년 태조가 임종할 때 염상·왕규와 함께 유지를 받들었다. 947년 대광에 오르고, 덕창진을 비롯한 여러 성을 수축하였다. 왕건의 제27비 월경원부인의 아버지로, 벼슬이 태위삼중대광에 이르렀다.
출생-사망? ~ ?
 
본관은 평주(平州)이다. 황해도 평주(平州:지금의 평산)의 대호족으로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박지윤(朴遲胤)의 아들이자, 태조의 제27비 월경원부인(月鏡院夫人)의 아버지이다. 925년(태조 7) 아우 박수경(朴守卿)이 조물군(曹物郡:지금의 안동)의 싸움에서 공을 세워 원보(元甫)로 특진되었다. 그때 박수경이 형보다 높은 벼슬에 있을 수 없다고 사양하자, 태조가 그도 함께 원윤(元尹)에서 원보(元甫)로 승진시켰다.
 
943년 태조가 임종할 때 염상(廉相)·왕규(王規)와 함께 유지를 받들었다. 947년(정종 2) 대광(大匡)에 오르고, 덕창진(德昌鎭)을 비롯한 서경왕성(西京王城) 및 박릉(博陵:지금의 박천)·삼척(三陟) 등에 성을 수축하였다. 벼슬이 태위삼중대광(太尉三重大匡)에 이르렀다.
 
[네이버 지식백과] 박수문 [朴守文] (두산백과)
 
 
 
박수경[朴守卿]?∼964(광종 15). 고려 전기의 공신.
 
개설
본관은 평산(平山). 대광위(大匡尉)박지윤(朴遲胤)의 아들이며, 태조의 비 몽량원부인(夢良院夫人)의 아버지이다. 용맹하고 지혜가 많았으며, 태조를 섬겨 원윤(元尹)이 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용맹하고 지혜가 많았으며, 태조를 섬겨 원윤(元尹)이 되었다. 후백제가 자주 신라를 공격하자 태조의 명으로 장군이 되어 이에 대비하다가 기계(奇計)로 견훤의 군대를 무찔렀다. 925년(태조 8)경상북도 안동의 조물성전투(曹物城戰鬪) 때 태조는 상군·중군·하군의 3군으로 나누어 싸웠는데 상군과 중군은 패하였으나 박수경은 하군을 지휘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 공으로 원보(元甫)로 승진하였다.
 
발성(勃城) 싸움에서는 태조가 포위당했으나 박수경의 역전(力戰)으로 무사하였다. 936년 후백제 신검(神劒) 군대와의 최후 결전인 일리천전투 때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940년 태조가 역분전(役分田)을 정할 때 특별히 전(田) 200결(結)이 하사되었다.
 
945년에는 정종을 도와 큰 공을 세우고 대광에 올랐다. 964년(광종 15)에 아들 박승위(朴承位)·박승경(朴承景)·박승례(朴承禮) 등이 참소로 옥에 갇히자 화병으로 사망하였다. 뒤에 여러 차례 추증되어 사도 삼중대광(司徒三重)에 이르렀다.
[네이버 지식백과] 박수경 [朴守卿]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인량은 고려조 문종 1년 문과에 급제, 예부시랑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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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수는 청절로 이름을 떨쳤으며,
박종현은 정중부의 난을 토평하는 데 공을 세웠다.
박수문(원윤), 박승위(좌승), 박세좌(상장군),
박효선(시중), 박조열(전객사사), 박 설(좌찬성),
박광민(승지), 박승례(우승), 박세찬(좌복야),
박경백(상서), 박경산(대경), 박 열(홍문관대제학, 좌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