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범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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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출신지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생년월일 = {{출생일과 나이|19601959|10|1}}
|사망일 =
|신장 =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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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범현'''(曺凡鉉, [[1960년1959년]] [[10월 1일]] ~([[1959년]] [[음력 8월 29일]])<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44&oid=076&aid=0002007648 호적상 [[1960년]] 출생.]</ref>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이자, 전 [[KBO 리그]] [[kt 위즈]]의 감독이다.
 
== 선수 경력 ==
[[1960년1959년]] [[10월 1일]] 출생의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대건고등학교]]의 [[포수]]를 맡던 조범현은 [[대건고등학교]] 야구부의 해체설로 팀내 분위기가 흉흉하자 동기생 몇 명과 함께 [[공주고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하지만 이미 [[공주고등학교]]에는 [[김경문]]이라는 걸출한 동급생 [[포수]]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결국 몇 달 만에 조범현은 다시 [[대건고등학교]]로 돌아왔다. 이때 부터 나이는 2살 많지만 프로 입단 동기이자 평생의 라이벌인 [[김경문]]과의 묘한 인연이 시작된다. [[대건고등학교|대건고]] 야구부가 결국 해체되자 우여곡절 끝에 [[서울특별시|서울]] [[충암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이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는데 전학한 [[충암고등학교]]가 [[1977년]] 제7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봉황대기]] 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본인은 MVP(최우수 선수)를 차지하는 겹경사를 누리게 된다. 이후 [[인하대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이후 인연인지 악연인지 또 다시 만나게 된 같은 팀의 [[김경문]]과 함께 대표적인 수비형 [[포수]]로 주전 경쟁을 벌였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0321 KIA 조범현 감독의 교훈] - 박동희 칼럼</ref> [[1990년]] 시즌 후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로 [[투수]] [[윤석환]]과 함께 현금 트레이드되었고, [[1992년]] 시즌 후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두산 베어스|OB 베어스]] 시절이었던 [[1990년]] [[6월 5일]] [[잠실야구장|잠실]] [[삼성 라이온즈]]와의 연속 경기 1차전 도중 [[두산 베어스|OB]] [[투수]] 김진규가 던진 볼로 인한 [[삼성 라이온즈]] [[내야수]] [[강기웅]]의 빈볼 시비로 일어난 [[KBO 리그]] 사상 최악의 집단 난투극에 먼저 가담하여, 22분 가량 계속된 집단 패싸움 후 [[포수]] [[김태형 (1967년)|김태형]] 등과 함께 경기장에서 즉시 퇴장당했다.<ref>[http://www.sportsseoul.com/news2/baseball/pro/2008/1015/20081015101010100000000_6119456298.html 두산-삼성 '우린 보통 인연이 아니야']{{깨진 링크|url=http://www.sportsseoul.com/news2/baseball/pro/2008/1015/20081015101010100000000_6119456298.html }} - 스포츠서울</ref> 이 사건으로 상벌 위원회에 의해 벌금 30만원의 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일어난 해의 시즌이 끝나고 그가 난투극을 벌였던 고향 팀으로 옮기게 되는 묘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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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분류:1960년1959년 태어남]]
[[분류:살아있는 사람]]
[[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