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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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합기》에 따르면 히데요시는 [[무쓰노쿠니|무쓰]], [[데와노쿠니|데와]]의 여러 다이묘에게 오다와라 공격에 동참할 것을 명하지만, [[다테 마사무네]]는 뒤늦게 동참한다. 히데요시는 마사무네를 '꿈틀데는 벌레'로 평했고, 마사무네는 히데요시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히데요시는 대기, 천위, 모든 사람에 미치지 않고 평했고, 격이 다름을 보였다. 마사무네가 보기 좋게 귀향하자, 여러 무장들은 호랑이를 풀어주면 위험하다고 진언했지만, “반항하면 토벌하면 그만”이라고 말했고, 여러 무장들은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오다와라 성은 [[우에스기 겐신]]과 [[다케다 신겐]]도 함락하지 못한 견성이였지만, 계절적 이유로 철병해야하는 여타 군과 달리 도요토미군은 히데요시에 의해 군사와 농민을 분리하는 정책인 병농 분리 정책으로 인해서 언제든지 출병과 철병이 가능했고, 당시 호조 가문의 당주였던 호조 우지나오와 당주 자리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던 호조 우지마사의 의견 대립 등으로 인해서 내부의 단결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호조 가문의 오다와라 성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3개월의 농성 후, 개성하였다. [[호조 우지마사]], [[호조 우지테루]](北条氏照)는 할복을 명 받았고, [[호조 우지나오]](北条氏直)는 [[고야 산]](高野山)으로 추방되었다([[오다와라 정벌]]).
 
=== 일본 통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