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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민치록의 전 부인 오씨에게서는 자녀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한산 이씨에게는 1남 3녀의 형제가 있었으나 모두 죽고 그녀만이 남았다.<ref name="한20"/> [[민유중]]의 아들 [[민진후]]의 5대손으로 할아버지 [[민기현]]은 [[예조]][[참판]]과 개성부유수를 지냈으나 아버지 [[민치록]]은 정3품 [[사도사]][[첨정]]에 이르렀고 만년에 낙향하여 [[여주]]에서 선영을 돌보며 소일하고 있었다. 뒤에 대를 잇기 위해 위해 11촌 아저씨인 [[민치구]]의 아들 [[민승호]]를 아버지 민치록의 양자로 들였다.<ref name="한20"/> 민승호는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친동생인데, 1874년 권력을 쟁취하려는 흥선대원군에 의해 폭탄으로 살해당했다는 설이 있다.
 
[[조선 숙종|숙종]]의 계비 [[인현왕후]]는 그녀의 5대 대고모뻘로모뻘로, 5대조 [[민진후]]의 누이였다. 생가 [[감고당]]은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묘지를 지키기 위해 지은 묘막집으로 이후 [[민유중]]의 종손들에 의해 관리되었다. 그녀의 아버지 민치록은 문음으로 나가기에 앞서 [[감고당]]에 거주하며 민유중의 묘를 지키는 일을 했다.
 
[[조선 숙종|숙종]]비 [[인현왕후]]의 친정이라 했으나 그녀의 집안은 빈곤하였고, 경기도 여주의 산골 [[민유중]]의 묘지 근처에서 지냈다. 그녀의 생가 근처 200m 즈음에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임원준 (1423년)|임원준]]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