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5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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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부친 어니스트 오거스터스가 [[하노버의 군주|하노버 국왕]]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로 즉위하였고 게오르크 왕자는 [[시각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왕위 계승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부왕은 게오르크의 왕위 계승을 허락했다. [[1843년]] [[2월 18일]]에는 [[요제프 폰 작센알텐부르크 공작]]의 딸 [[마리 폰 작센알텐부르크 공녀 (1818년)|마리]]와 결혼했다.
 
[[1866년]] [[하노버프로이센 왕국|하노버]]과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왕국전쟁|프로이센전쟁]]과의 전쟁에서에서 패하면서 게오르크는 영국으로 망명하였고 하노버 분리 독립 운동을 추진하였다. 영국왕 [[조지 3세]]의 후손이었던 그는 [[컴벌랜드와 테비오트데일 공작]]이라는 직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에 체류할 수 있었다.
 
한편 그의 후손들은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에 대한 상속권도 주장했다. [[빌헬름 2세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후사없이 사망하자, 게오르크 5세의 후손들은 빌헬름의 친할머니 [[영국 왕녀 아우구스타|아우구스타]]가 [[조지 2세]]의 손녀이자 [[조지 3세]]의 누이였고, [[웨일스 공 프레더릭]]의 딸임을 근거로 가까운 친척임을 들어 상속권을 주장했던 것이다. 빌헬름 2세는 게오르크 5세의 손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른스트 아우구스트]]를 후계자로 지명했으나 프로이센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은 30여년간의 섭정기(1차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손자 알브레히트, 2차는 [[프리드리히 프란츠 2세 폰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의 아들 요한 알브레히트)를 거쳐 결국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상속하였으나 [[독일 11월 혁명]]으로 작위를 박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