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단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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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처음에는 그럴듯한 정치적 이유로 숙청이 시작되었지만, 일단 숙청이 가속화되자 사정은 달라졌다. 밥을 흘려도 민생단(어렵게 구한 식량을 허비하니까), 밥을 설구거나 태워도 민생단, 밥을 물에 말아 먹어도 민생단(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은 전투력을 약화시키니까), 배탈이 나거나 두통을 호소해도 민생단, 사람들 앞에서 한숨을 쉬어도 민생단(혁명의 장래에 불안감을 조장하니까), 설사를 해도 민생단, 고향이 그립다고 말해도 민생단(민족주의와 향수를 조장하니까), 일이 어렵다고 불평해도 민생단, 일을 너무 열심히 해도 민생단(정체를 감추려고 일을 열심히 한 것이니까), 일제의 감옥에서 처형되지 않고 살아돌아와도 민생단, 오발을 해도 민생단, 가족 중에 민생단 혐의자가 나와도 민생단, 민생단 혐의자와 사랑에 빠져도 민생단, 옷을 허름하게 입어도 민생단으로 몰리는 등 무고한 사람들을 일제의 간첩으로 모는 꼬투리는 끝이 없었다.<ref>{{뉴스 인용|url=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615.html|제목=[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밥을 흘려도 죽였다|저자=한홍구|이름=한겨레21|날짜=2002-03-06|뉴스=|출판사=|확인날짜=2018년 4월 23일}}</ref>}}
 
동만주특별위원회와 현위의 간부 [[이상묵]](李相默)은 조선인 유격대원 중 70% 이상이 민생단원이라고 주장하며 60여 명의 조선인을 처형하였으나, 본인도 민생단으로 몰려 처형되었다처형하였다.
 
훈춘현 공산주의청년단 서기로 일하던 정필국(鄭弼局)은 어려서 가족을 모두 일제에 잃어 반민생단 투쟁에 앞장서다 점차 회의감을 품고 소극적으로 변했는데, 이것이 꼬투리가 되어 민생단원으로 몰려 사형에 처해졌다. 정필국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보초들에게 살려달라 애원했으나 후환을 걱정한 보초들에게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