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라: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현재의 편집분쟁이 있기 이전 판>인 211.104.165.55 님의 2019년 8월 1일 (목) 22:59 판으로 임시 복구 |
|||
26번째 줄:
{{중국의 역사}}
'''수'''(隋, [[581년]] [[3월 4일]] ~ [[619년]] [[5월 23일]])는 [[중국]] [[남북조 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서진]]이 멸망한 후 분열했던 중국을 약 300년 만에 재통일한 국가다.
그러나 제2대 황제인 [[수 양제|양제]] 때 폭정으로 말미암아 약간의 혼란기를 거치고서 멸망하였고, 그 후 [[당나라]]가 중국을 재통일하였다. == 역사 ==
=== 출신 ===
양씨(楊氏)는 [[북위 (북조)|북위]] 초기 선비족 무사들이 주둔하고 있던 무천진(武川鎭)으로 이주하였고, [[수 문제|양견]]의 아버지 [[양충 (북주)|양충]]에 이르게 되었다. 무천진은 북위의 수도 평성(平城)을 북쪽의 [[유연 (나라)|유연]]으로부터 방어하는 역할을 맡았던 군사기지들 중 하나였다. 북위 황실인 [[탁발씨]](拓跋氏)를 원씨(元氏)로 바꾸는 등 선비풍(鮮卑風)의 이름을 중국풍으로 고치는 정책이 진행되었으나, 북주시대에 이르러 이에 반발하여 이것을 다시 선비풍으로 고쳤다. 본디 양씨는 선비족이었으며, 선비족 이름은 보육여(普六茹)였다. 보육여는 선비어로 버들을 뜻한다. 양씨 친인척은 독고씨 등 선비족으로 형성되었다.
==수나라 건국==
줄 37 ⟶ 39:
무제의 뒤를 계승한 [[선제]]는 기괴한 인물로 5명의 황후를 가졌다. 그중 한명이 양견의 장녀였던 천원대황후 양씨 여화(麗華)였고, [[선제]]의 또 다른 황후인 천대황후 주씨가 [[우문천]]을 낳았다. 이 우문천이 바로 뒤의 정제였다.
선제의 기행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어 재위 8개월 만에 퇴위하며 정제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스스로 천원황제(天元皇帝)를 칭하며 정무를 내팽개쳤기에 정제의 뒤를 보살피던 양견에 대한 성망(聲望)을 높여주는 결과를 낳았다. 580년 선제가 죽자 양견은 [[섭정]]으로써 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에 반발한 무천진 군벌 내 실력자들은 양견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규모로 일어난 것이 울지형(尉遲迥)에 의한 것으로 한때 양견이 장악한 관중지역 이외 모든곳에서 반란이 일어날 정도였으나, 양견은 교묘하게 이것을 각개격파하여 북주내에서 패권을 확고히 다졌다
그 해 말에 수국공에서 수왕(隋王)의 자리에 오른 뒤, 이윽고 다음해 정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수나라를 건국하였다. 양견은 사후 [[수 문제|문제]]라는 시호를 받았다.
==중국
[[파일:China Sui with around county.png|240px|섬네일|왼쪽|수나라와 그 외 국가 형세]]
이미
== 개황의 치(開皇之治)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