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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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파시즘'''({{llang|it|fascismo}}, {{llang|en|fascism}}, {{llang|de|Faschismus
초기 파시즘은 국가사회주의적인 사상으로서 반공주의적인 사상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후기에는 반공사상이 추가된 후기 파시즘이 파생되었다. 인종주의가 포함된 파시즘은 [[나치즘|국민사회주의]]이며, 파시즘은 인종주의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이와 같은 예로 [[1934년]] 저널리스트 에밀 루트비그가 주최한 인터뷰에서 [[베니토 무솔리니]]는 "어딜가나 순수한 인종은 없으며, 순수한 인종이 없는 상태에서 인종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나치]]의 과격 인종주의를 비판했다.<ref>이 항목은 Stanley G. Payne 의 《A history of fascism》를 참조하라.</ref> 그러나, [[무솔리니]]의 입장은 매번 바뀐 적이 많았으므로, 아직 국가사회주의 파시즘이 '[[인종주의]]'를 포함하지 않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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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가장 좁은 의미는 이탈리아 [[베니토 무솔리니]]의 국가를 말한다. 또한 이 표현은 [[아돌프 히틀러]] 치하의 [[나치 독일]] 외에도 넓은 의미에서는 기타 권위주의적 체제, 예를 들어 [[엥겔베르트 돌푸스]] 치하의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왕국]]의 총리 [[이온 안토네스쿠]]도 파시즘으로 분류된다.
파시즘은 각국에 영향력을 미쳤는데
=== 중립국 ===
중립국으로는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에스파냐]],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의 [[이스타두 노부 (포르투갈)|이스타두 노부]] [[포르투갈]]
== 각국에서의 파시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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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산세폴크로 광장에서 발표한 강령은 (피우메와 달마티아 해변에 대한 이탈리아의 권리를 주장하기는 했지만) '각 나라의 영토를 보전하는 것이 최우선의 원리'라는 국제연맹의 원칙을 받아들였다.<ref name="fact155"/> 이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의 기성 우파, 반왕당파 및 공화정 세력은 귀족과 재벌들의 이권을 수호하고 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유지하였으며, 이들을 좌파로 규정, 위험성을 경고하는 수준에서 머물렀다.
[[1919년]] [[6월]]의 강령에서는 직업적 군대를 방어적 의미의 민병대로 대체하고 무기 및 군수품 공장을 국유화한다는 파시스트들의 주장은 그대로였지만, 국제연맹 이야기는 사라졌다. [[1921년]] 발표한 강령에서 달라진 파시스트당은 국제연맹을 편파적이라고
=== 독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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