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 모레스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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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Moresnet.png|thumb|250px|모레스네의 위치와 그 주변. 1-네덜란드, 2-벨기에, 3-모레스네, 4-프로이센.]]
 
'''중립 모레스네'''({{llang|fr|Moresnet Neutre}}, {{llang|de|Neutral-Moresnet}}, {{llang|nl|Neutraal Moresnet}})는 [[1816년]]부터 [[1919년]]까지 유럽에 존재한 3.5 ㎢ 크기의 작은 땅으로, 두 이웃나라 사이에서 소유권에 대한 협정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중립 지역으로 따로 떼어 만들어진 것이다. [[아헨]] 남서쪽 7 km에 위치하고 있으며, [[독일]]과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발서르베르흐]]의 바로 남쪽에 있다.
 
==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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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Flag of Moresnet.svg|thumb|모레스네의 비공식 기.(1883)]]
처음에는 이웃 두 개의 나라에서 한 명씩 온 의원들에의원들이 의해서 다스려졌던다스렸던 모레스네는 의원이 지명한 시장과 10명 정원의 의회가 생기면서 독립적인 성격을 띠게띄게 되었다.
 
대부분의 모레스네 사람들은 아연 광산에서 일했다. 이웃나라에서도 일하기 위해 이주해 온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레스네의 총 인구는 3000명을 넘지 못했다. 중립 지구는 많은 장점이 있었는데, 세금이 낮고 수입품에 대한 관세가 없어서 물건의 가격이 주변 나라들보다 쌌다. 우편과 같은 공공 서비스는 벨기에·프로이센과 공유했는데, 이는 지금의 [[안도라]]와 비슷한 방식이다. 초기의 ‘중립’ 주민들은 어느 나라의 법률과 병역을 따를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는 한편으로 모레스네가 자체적인 군대를 가질 수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 쇠락 ==
[[1885년]] 광산이 고갈되고 나서 모레스네의 존속에 관한 의문이 제기됐다. 모레스네를 더 독립적으로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가 제기되었는데, 그 중에는 [[카지노]]와 독자적인 우편 서비스가 있었다. [[빌헬름 몰리]]는 모레스네를 세계 최초로 [[에스페란토]]를 공식 언어로 쓰는 곳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이름을 아미케요({{lang|eo|Amikejo}}, ‘친구의 땅’)라고 제안했고, 에스페란토로 된역시 같은 제목의 에스페란토 행진곡을 국가로 제안했다. 하지만 모두어떤 제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벨기에와 프로이센은 70여년 전처럼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1900년 프로이센은 더 공격적인 자세를 보였고 모레스네의 행정을 방해하기도 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은 벨기에를 침범했고 [[1915년]]에 모레스네를 합병했다. 모레스네는 더이상 중립이 아니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1919년]] 맺어진 [[베르사유 조약]]에서 한 세기동안 이루어졌던 ‘한시적인 중립’이 모레스네를 벨기에로 편입시키면서 매듭지어졌다.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그 지역을 다시 합병했지만, 1944년에 다시 벨기에에게 돌려주게 되었다. 지금은 동부 벨기에 켈미스의 일부이다.
 
==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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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Neu-Moresnet museum.JPG|노이모레스네에 있는, 중립 모레스네에 관한 박물관.
그림:Drilandenpunt.jpg|[[발서르베르흐]]에 있는, 네덜란드 · 독일 · 벨기에 국경이 맞닿은 지점. 이 곳이 모레스네의 최북단 꼭지점이었다.
</gallery>
 
[[분류:벨기에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