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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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열'''(柳東說, [[1879년]] [[3월 26일]] ~ [[1950년]] [[10월 18일]])은 [[대한제국]]의 군인이며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정치인이다. 만주에서 군사활동을 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 광복군에 참여했다. 광복 이후에는 [[조병옥]], [[이응준]]의 천거로 [[미 군정]] [[대한민국 국방부|통위부 부장]]을 지냈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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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이후 ===
==== 귀국 이후 ====
[[1945년]] 귀국 이후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 [[12월]]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임시정부 환영회 참석하였다. 하오 2시 20분경 조선생명회사 2층에서 [[김구]]를 중심으로 좌우에 [[이승만]], [[이시영 (1868년)|이시영]], [[김규식 (1881년)|김규식]], 류동렬 등이 창을 열고 환영행렬을 맞이하였다.<ref>아 비운의 역사현장 경교장(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1993), 145</ref> [[1946년]] [[조병옥]]의 추천으로 [[미 군정청]] [[통위부장]]에 임명되어, [[이범석 (1900년)|이범석]], [[이청천]], [[원용덕]], [[손원일]] 등과 함께 [[조선국방경비대]] 창설에 관여하였다. 조병옥은 자신의 저서 나의 회고록에 그의 능력을 불신하면서도 자신이 추전했음을 기술하였다. 유동열은 처음 군정 참여에 부정적이었으나 신생 조국의 군대는 광복군의 법통을 계승해야 된다는 [[이응준]] 등의 거듭된 방문과 전화설득으로, 취임을 수락하였다. [[조선국방경비대]]는 후에 [[대한민국 국군]]의 모태가 되었다.
 
그러나 국방경비대와 경찰 간 체포 관련 분쟁이 발생하면서 그는 조병옥과 갈등하게 된다.
 
[[1946년]] [[2월 14일]] [[비상국민회의]] 국방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ref>이연복 《대한민국 임시정부 30년사》(국학자료원, 2006) 91페이지</ref> [[1949년]] [[8월 20일]] 민족진영강화위원회 상무위원에 선출되었다.<ref>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2(역비한국학연구총서 13)(서중석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 2008) 302</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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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을 지낸 [[류미영]]이 류동열의 딸이다. 외무장관을 지내고 월북한 [[최덕신]]이 사위이며 독립운동가 [[최동오]]가 사돈이다.
 
== ==
== 기타 ==
=== 대한제국 [[의친왕|의친왕 이강]] 공과의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