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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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군정청에 파견되었던 미군 육군 대위[[제임스 하우스만]]은 이중 한사람인 김종갑의 임용을 반대하는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 춘천 8연대의 수석장교인 김종갑 중위가 대위로 진급할 때였다. 그는 6.25 전쟁 기간 동안 사단장까지 지냈고 나중에 육군 중장으로 예편돼 국방차관까지 올라간 사람이다.하우스만은 김종갑을 적임자로 보았다, 그런데 그의 진급 명령이 나오지 않았다. 통위부장 유동열 장군이 브레이크를 걸고 있었다.<ref>짐 하우스만, <한국 대통령을 움직인 미군 대위> (한국문원, 1995) p127</ref>
 
그는 김종갑의 승진임용 반대 이유에 대해 조선경비대의 장교는 반드시 양반 출신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ref>짐 하우스만, <한국 대통령을 움직인 미군 대위> (한국문원, 1995) p127</ref> 미군정은 당황해했다. 하우스만은 '나는 유능한 김종갑의 가문을 잘 알지는 못하나 어쨌든 유동열 장군이 보기에는 조선의 고급 장교가 될 만한 양반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런 케이스로 진급이 유보돼 있는 사람이 많았다. 도대체 어쩌겠단 말인가.<ref>짐 하우스만, <한국 대통령을 움직인 미군 대위> (한국문원, 1995) p127</ref>'라고라며 했다한탄했다.
 
하우스만은 '단 1명의 장교도 아쉬운 판인데 능력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양반 논쟁으로 인사의 차질을 빚고 있으니 어처구니없는 입장이었다. 나는 부족한 장교를 양성하기 위해 현지 임관을 통해 장교 숫자를 늘리는 한편 육군사관학교 개설을 돕고 있었다. 유장군은 계속 장교의 조건으로 “양반”을 들고 나왔다.<ref>짐 하우스만, <한국 대통령을 움직인 미군 대위> (한국문원, 1995) p128</ref> 그러나 그런 말이 새 경비대를 조직하는 마당에 통할 리가 없었다. 어느 미군 조직법에도 양반만이 장교가 돼야 한다는 근거가 없었다<ref>짐 하우스만, <한국 대통령을 움직인 미군 대위> (한국문원, 1995) p128</ref>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