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주: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8번째 줄:
617년(대업 13년) 태수 [[왕인공]](王仁恭)의 시녀와 사통하였다가 죄를 받을까 두려워하여 고을의 호걸 [[장만세]](張万歲),[[양복염]](楊伏念),[[원군장]](苑君璋),[[울지공]](尉迟恭)과 함께 왕인공을 살해하였으며 군사를 일으켜 고을을 장악한뒤 스스로 태수를 칭하고 창고를 열어 고을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그 뒤 유무주는 돌궐(突厥)과 손잡고 [[안문]](雁門),[[누번군|누번]](樓煩),[[정양군 (행정 구역)|정양]](定襄) 등 여러 군을 공격하자 이에 조정에서는 [[호분장군]](虎賁將軍) [[왕지변]](王智辯)과 안문군의 군승 [[진효의]](陳孝意)에게 연합하여 유무주를 토벌하게 하였다.
 
궁지에 몰린 유무주는 [[돌궐]]에 지원을 요청하였고 이로인해 왕지변은 싸움에서 패하여 죽고 진효의는 안문으로 퇴각하였다.유무주는 승세를 타고 누번군을 함락시킨뒤 나아가 [[수 양제|양제]](煬帝)의 별궁인 분양궁(汾陽宮)을 점령하고 사로잡은 여인들은 돌궐군이 돌아갈때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