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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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인천광역시|인천]] 송림초등학교 5학년 때 [[농구]]에 입문, [[인성여자중학교]], [[인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0년]] 실업 여자 농구 팀 [[SKC 여자농구단|SKC]](이후 SK증권으로 팀명이 변경된다.)에 당시로서는 거액인 계약금 1억 7천만 원을 받고 입단하였다.(당시 SKC 주축 선수: [[이종애]], [[정선민]], 유영주, 김지윤) 이 해 [[인성여자고등학교]] 동기인 [[정은순]]과 공동으로 [[농구대잔치]]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실업 무대에 데뷔했다. 신인상 공동 수상은 농구대잔치, 남녀 프로농구를 통틀어 유래없는 초유의 이벤트였다. 여자 선수로는 보기 드문 힘을 갖추어 파워포워드 포지션에서 역대 최고라는 평을 들으면서 (아시아 무대에서도 당할 자가 없었다) SKC의 간판 선수로 활동했다. [[1994년]] 농구대잔치에서 [[정은순]], [[왕수진]], [[박정은]] 등이 버틴 최강 전력의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삼성생명]]을 제치고 우승을 하게 된다.
 
[[국제통화기금]] 지원 사태로 여자 농구 팀이 줄줄이 해체되면서 [[SK증권]] 농구 팀도 해체되었다. 유영주는 드래프트를 거쳐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삼성생명]]으로 팀을 옮겨 뛰었고, [[2001년]] 9월 현역에서 은퇴했다. SKC 및 SK증권 시절 라이벌로서 항상 우승을 다투던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삼성생명]]에 몸담고 있었던 것이 부담스러웠던 점, 그리고 고질적인 무릎 등의 부상으로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하기에 이른다. 남자 농구에 [[현주엽]]이 힘과 지능적인 플레이를 겸비한 선수였다면 그 이전에 여자 농구에는 힘과 저돌적인 승부욕을 소유한 유영주가 있었다. 그의 농구 인생에는 평생의 라이벌이자 동반자인 [[정은순]]이 함께하는데, [[인성여자고등학교]]를 함께 졸업하던 시절 이미 [[정은순]]은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성인 무대에서 바로 통할 정도의 실력과 인지도가 있었던 반면 상대적으로 그늘에 가렸던 유영주는 자신의 롤 모델이 [[정은순]]이었음을 밝혔다. 농구 인생에 있어 항상 비교가 되고 농구대잔치 데뷔시즌 공동 신인상 수상 등으로 성인 무대에서는 어깨를 나란히 했던 점들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