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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가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신라를 이용하여 삼국의 영토 전체를 장악하려는 야심 때문이었다. 당나라는 백제를 멸망시킨 뒤에 그 지역에 [[웅진도독부|5도독부]](五都督部)를 두는 한편, [[663년]]([[문무왕]] 3년)에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鷄林大都督府)로 삼고 [[문무왕]](文武王)을 계림주대도독으로 임명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 뒤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에는 그 지역에 9도독부(九都督府)를 둠과 동시에 평양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두어 한반도 전체를 총괄케 했다.
 
이에 맞서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과 연합하여 당나라와 정면으로 대결하였다. 신라는 고구려 검모잠의 부흥군을 원조하여 한반도 북부에서 당나라의 축출을 꾀하고, 백제의 옛 땅에 군대를 출동시켜 당군을 각처에서 격파하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신라는 [[671년]](문무왕 11년) 사비성을 다시 함락시킴으로써 백제의 옛 땅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674년]], 당나라는 [[문무왕]]의 동생인 [[김인문]](金仁問)을 신라 왕에 임명하고 신라에 대한 전면적 무력침공에 나섰다.
 
그러나이에 맞서 신라군은 [[671년]] 1월 가림성의 당군을 격파하였고, 7월에는 평양 근교에서 [[이근행]]의 말갈군에게 대승하는 등 당나라에 맹렬히 맞서 싸웠다. 그리고 [[675년]] 설인귀가 이끄는 당나라의 20만 대군을 [[매소성]]에서 격파하여 [[나당 전쟁]]의 주도권을 잡았고, [[676년]] [[11월]]에 [[금강]] 하구의 [[기벌포]]에서 당나라의 수군을 섬멸하여 당나라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었다. 이로써 신라는 삼국을 통합하고, [[대동강]]부터 [[원산|원산만]](元山灣)까지를 경계로 그 이남의 한반도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성공적으로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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