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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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가족의 8번째 자식인 마이클은 [[1964년]] 형제인 [[재키 잭슨]], [[티토 잭슨]], [[저메인 잭슨]], 그리고 [[말론 잭슨]]과 함께 팀의 막내로 [[잭슨 파이브]]로 데뷔했다. [[1971년]] [[모타운 레코드]]에서 솔로 활동을 시작한 잭슨은 1980년대 초 대중음악에서 주목받은 인물이 되었다. 그의 [[1982년]] 앨범 《[[Thriller (마이클 잭슨의 음반)|Thriller]]》의 수록곡 〈[[Beat It]]〉, 〈[[Billie Jean]]〉, 〈Thriller〉등의 뮤직 비디오는 인종적 장벽을 깨고, 매체의 예술 형식과 홍보 수단에 혁명을 가져온 것으로 여겨진다. 이 비디오의 인기는 TV 채널 [[MTV]]를 유명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눈과 귀를 모두 만족시키는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또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을 융한한 마이클의 앨범 사운드는 흑인=소울/알앤비, 백인=록/팝이라는 공식을 완전히 허물었다는 점에서도 찬사를 받는다. 잭슨의 1987년 음반 《[[Bad (음반)|Bad]]》는 수록곡인 〈[[I Just Can't Stop Loving You]]〉, 〈[[Bad]]〉, 〈[[The Way You Make Me Feel]]〉, 〈[[Man in the Mirror]]〉, 〈[[Dirty Diana|Dirty Diana〉]]를 모두 미국 [[빌보드 핫 100]] 싱글의 정상에 올려, 최다 1위곡을 배출시킨 음반이라는 기록을 세운다. 그는 1990년대 동안,〈[[Black or White]]〉와 〈[[Scream]]〉과 같은 영상으로 혁신을 계속했고, 1993년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은 역사적인 무대로 자리매김 하였다. 투어를 도는 솔로 가수로서 명성을 쌓았으며 무대와 영상 퍼포먼스를 통해 잭슨은 [[로봇 (춤)|로봇]]과 [[문워크]]와 같은 수많은 복잡한 춤 기술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다. 그의 독특한 사운드와 스타일은 다양한 음악 장르의 수많은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미쳤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연예인이라는 [[기네스북]] 기록과 함께 잭슨의 정규 앨범 《[[Thriller (마이클 잭슨의 음반)|Thriller]]》는 66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ref>[http://www.guinnessworldrecords.com/world-records/70133-best-selling-album Best selling album]</ref> 총 39개의 기네스북 기록을 남겼으며<ref name="ASAHI">[http://www.asahi.com/showbiz/music/TKY200907020203.html マイケル記録ずくめ 「最も成功」ギネスが認定], 2009년 7월 2일 작성.</ref><ref name = "Guinness Records 2002 p145–147">Guinness World Records 2002, pp. 145–147</ref><ref name = "Guinness Records 2005 p193">Guinness World Records 2005, p. 193</ref><ref name="uknewsyahoo">[https://web.archive.org/web/20110527045635/http://uk.news.launch.yahoo.com/dyna/article.html?a=%2F14112006%2F344%2Fjackson-receives-world-records.html&e=l_news_dm Jackson receives his World Records], 2015년 확인.</ref>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50년대 동안 꾸준히 빌보드 TOP 10 안에 든 유일한 가수로 그의 솔로 경력으로는 총 13개의 빌보드 1위곡을 남겼으며 밴드 시절까지 합치면 17개의 빌보드 1위곡을 남겼다.<ref name="MTV">[http://www.mtvjapan.com/news/music/24075 マイケル・ジャクソンが新記録、5つの年代で全米トップ10入り], 2014년 5월 작성.</ref> 또한 잭슨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두 번 헌액된 몇 안되는 음악가 중 한 명이며,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13개의 상과 35세의 나이로 살아있는 전설 상을 수상했다.<ref name="Deseret News">[http://news.google.co.uk/newspapers?id=Z04pAAAAIBAJ&sjid=y4QDAAAAIBAJ&pg=3702,4129430&dq=michael-jackson+legend-award&hl=en Grammy moments], 1993년 2월 작성.</ref> 작사/작곡 능력을 인정받아 2002년 작사/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ref name="songwritershalloffame.">[http://www.songwritershalloffame.org/exhibits/year Through 2010, 401 individuals have been inducted into the Songwriters Hall of Fame] {{웨이백|url=http://www.songwritershalloffame.org/exhibits/year |date=20150924120108 }}, 2010년 작성.</ref> 춤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팝과 록을 겸비하는 뮤지션으로는 유일하게 미국 국립 무용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ref name="dancemuseum.">[http://www.dancemuseum.org/exhibits/hof.html HALL OF FAME INDUCTEES] {{웨이백|url=http://www.dancemuseum.org/exhibits/hof.html |date=20150402122720 }}, 2014년 작성.</ref> 또한 인종차별을 부숴 유색인들의 인권신장을 이뤘다는 공로로 상을 받았다.<ref name="web.archive.org">{{웹 인용 |url=http://www.cnn.com/2003/SHOWBIZ/TV/03/08/image.awards.ap/ |제목=Image Awards rekindle 'Barbershop' controversy |확인날짜=2006년 6월 29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60629060508/http://www.cnn.com/2003/SHOWBIZ/TV/03/08/image.awards.ap/ |보존날짜=2006년 6월 29일 |깨진링크url-status=아니오live }}</ref> 잭슨의 음악은 시대를 앞서간 사운드로 구성되어 엔지니어들은 이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ref name="문워크에서 털기춤까지…보는 음악 새 지평 열어">[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612463 문워크에서 털기춤까지…보는 음악 새 지평 열어]</ref>
 
잭슨의 외적 변화, 개인적 인간 관계, 행동 등 사적인 부분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1993년 아동 성추행 혐의로 민사소송을 당했고 법정 외 합의로 민사소송은 종결됐다. 형사 수사는 증거 부족으로 불기소 처분됐으며 잭슨에게 민사소송을 건 이반 챈들러는 2009년 11월 5일 자택에서 자살했다. 2005년에도 아동 성추행 혐의에 연루돼 재판을 받았지만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This Is It (마이클 잭슨)|This Is It]]이라는 콘서트 시리즈를 통해 컴백을 준비하고 있던 중 2009년 6월 25일 [[프로포폴]]과 [[벤조디아제핀]] 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인해 사망했다. LA 경찰은 잭슨의 주치의 콘래드 머레이를 살인 용의자로 지목했고, 머레이는 2급 살인죄로 2011년 9월 유죄 판결을 받는다. 잭슨의 죽음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추도식은 각국 방송국을 통해 생중계 되었다.<ref>{{뉴스 인용 | url=http://news.in.msn.com/national/article.aspx?cp-documentid=5592621 | publisher=MSN | title=Hazarika's funeral creates world record | date=2009년 7월 8일 | 확인날짜=2015년 6월 11일 |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807110046/http://news.in.msn.com/national/article.aspx?cp-documentid=5592621 | 보존날짜=2014년 8월 7일 |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사망 직후 잭슨을 기리기 위해 미국 의회에서는 정치인 출신이자 목사인 재시 잭슨의 주도하에 국회의원들의 묵념이 있었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HW2PEr8wEm4&feature=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HW2PEr8wEm4&feature=youtu.be]</ref> 'Global Language Monitor'가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마이클 잭슨의 죽음은 지난 수십년간 유명인들의 죽음 중 가장 큰 반응을 불러온 것으로 나타났고<ref>{{웹 인용 |url=http://www.languagemonitor.com/about/news/michael-jackson-funeral-tops-pope-john-paul-ii-as-no-1-media/ |제목=Michael Jackson funeral tops Pope John Paul II as No. 1 media |확인날짜=2012년 5월 9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509070758/http://www.languagemonitor.com/about/news/michael-jackson-funeral-tops-pope-john-paul-ii-as-no-1-media/ |보존날짜=2012년 5월 9일 |깨진링크url-status=아니오live }}</ref> 2010년에는 VH1 선정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순간에 잭슨의 사망이 1위에 올랐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kx86O0jA7kc&feature=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kx86O0jA7kc&feature=youtu.be]</ref>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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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마이클 잭슨은 정규앨범 《[[Thriller (마이클 잭슨의 음반)|Thriller]]》를 발매한다. 흑인은 흑인 음악을, 백인은 백인 음악을 할 당시에 인종이나 음악적 장르 구분을 완전히 무시하고 만들어진 이 앨범은 6500만장 이상이 팔린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다. [[기네스북]]에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등재됐다.<ref>[http://www.guinnessworldrecords.com/world-records/70133-best-selling-album Best selling album]</ref> [[대한민국]]의 경우 《[[Thriller (마이클 잭슨의 음반)|Thriller]]》의 구체적 판매량은 조사된 적 없지만 [[1984년]] 3월 21일자 [[동아일보]] [[신문]]을 보면 음반시장이 좁아 라이선스 음반은 5천장만 팔려도 잘 나간다고 보는 우리나라에서도 스릴러는 5만장이 팔렸다고 보도됐다.<ref name="naverdonganews">[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3210020921201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3-21&officeId=00020&pageNo=12&printNo=19220&publishType=00020 팝계 마이클 잭슨 빼곤 얘깃거리가 없다], 1984-03-21</ref> 앨범은 [[빌보드 200]]에서 37주 동안 1위를 차지했고, 발매된 7개의 싱글 'Billie Jean', 'Beat It', 'Thiller', 'The Girl Is Mine', 'Wanna Be Startin' 'Somethin', 'Human Nature', 'P.Y.T.(Pretty Young Thing)' 이 모두 [[빌보드 핫 100]]의 10위 안에 올랐으며 그가 작사/작곡한 'Billie Jean'이 7주 동안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한 뒤, 'Beat it'이 정상을 차지했다. 한 가수의 곡이 1주일도 못돼 연속으로 차트 정상에 오른 경우는 [[비틀즈]] 이후 19년만에 처음 있었던 일이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051100329212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05-11&officeId=00032&pageNo=12&printNo=11573&publishType=00020 팝차트 휩쓴 마이클 잭슨]</ref> 역시나 평론가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며《National Association of Recording Merchandisers》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3위를 차지했다. 《[[Thriller (마이클 잭슨의 음반)|Thriller]]》앨범은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국립 음반 기록소에 등재됐다. [[2008년]]에는 [[그래미 어워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ref name="500greats">{{웹 인용|url=http://web.archive.org/web/20120712012543/http://www.rollingstone.com/music/lists/500-greatest-albums-of-all-time-20120531/michael-jackson-thriller-19691231
|title=Michael Jackson, 'Thriller' - Rolling Stone |publisher=Rolling Stone |date=May 31, 2012|accessdate=January 14, 2013}}{{깨진 링크|date=April 2013}}</ref><ref name="D200">{{웹 인용 | title = Definitive 200 | publisher = The Rock and Roll Hall of Fame and Museum | url = http://www.rockhall.com/pressroom/definitive-200 | year = 2007 | accessdate = April 8, 2008 | archiveurl = https://web.archive.org/web/20080406020211/http://www.rockhall.com/pressroom/definitive-200 | archivedate = 2008년 4월 6일 | deadurlurl-status = dead }}</ref><ref>{{웹 인용|url=http://www.grammy.org/recording-academy/awards/hall-of-fame#t |title=GRAMMY Hall of Fame |work=GRAMMY.org |publisher=The Recording Academy |year=2008 |accessdate=January 14, 2013}}</ref><ref name="Thriller is a cultural treasure">{{뉴스 인용|url=http://www.cbc.ca/arts/media/story/2008/05/14/08us-recregistry.html |title=Thriller, Joni Mitchell album make the cut for US recording registry |publisher=CBC News |date=May 14, 2008|accessdate=May 14, 2008}}</ref>
 
《[[Thriller (마이클 잭슨의 음반)|Thriller]]》는 MTV의 장벽을 무너뜨린 라는 데서 큰 의미를 갖는다.<ref>Taraborrelli, p. 282</ref> MTV는 [[1981년]] 8월 개국하였는데 MTV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밥 피트먼은 방송의 구성을 로큰롤에만 제한했고, 당시만 해도 로큰롤은 [[백인]]들의 음악으로 결국 대부분의 [[흑인]] 가수들이 배제되는 상황이 초래됐다. 또 MTV는 로큰롤을 핑계로 흑인 가수들의 방송 출연을 거의 불허했으며 MTV 개국 직후 뮤직비디오 750개 중 흑인 가수들의 노래는 40개가 채 되지 않았다. 흑인들은 이러한 MTV에 대해 인종차별주의라고 비난했다. 잭슨의 뮤직비디오가 제작되고 [[CBS]]는 [[Billie Jean]] 뮤직비디오를 MTV에게 제공하였는데 MTV는 거절했다. 그러자 CBS는 'Beat it' 뮤직비디오 영상을 제공하며 방영하지 않을 경우 다른 가수들의 모든 뮤직비디오를 빼버리겠으며 흑인가수라는 이유로 방송을 불허한다는 MTV의 입장을 언론에 폭로하겠다고 통지했다. MTV에서 방영되는 가수들의 대다수는 CBS 소속이었고 CBS가 빼버리면 MTV의 앞날이 위험해진다. MTV는 결국 CBS의 뜻을 받아들여 잭슨의 뮤직비디오를 방영했다. 이 사건 이후 흑인 가수들의 돌파구가 생겨났다.<ref name="ReferenceB">Taraborelli, J.Randy, Michael Jackson – The Magic, the Madness, the Whole Story</ref><ref>"Michael Jackson, "Billie Jean," directed by Steve Barron, produced by Simon Fields & Paul Flattery,". Blender. October 2005</ref><ref>[http://usatoday30.usatoday.com/life/television/news/2005-08-25-mtv_x.htm Music videos changing places]</ref><ref>{{웹 인용 |url=http://www.highbeam.com/doc/1G1-152869241.html |제목=Why it took MTV so long to play black music videos |확인날짜=2015-04-03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703183102/http://www.highbeam.com/doc/1G1-152869241.html |보존날짜=2014-07-03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ref>{{웹 인용 |url=http://www.ytn.co.kr/program/program_view_0401.php?key=200907031022140858# |제목=마이클 잭슨이 미국 팝음악계에 남긴 것 |확인날짜=2016-03-1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28001457/http://www.ytn.co.kr/program/program_view_0401.php?key=200907031022140858# |보존날짜=2016-03-28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바브 슬레이드 Kiss FM 뉴스 국장은 "그 이후 나온 흑인 가수들은 마이클 잭슨 덕분에 MTV에 자연스럽게 비디오가 나갈 수 있었습니다. 마이클의 후광 효과를 본 거죠."라고 말했다.<ref>{{웹 인용 |url=http://www.ytn.co.kr/program/program_view_0401.php?key=200907031022140858# |제목=마이클 잭슨이 미국 팝음악계에 남긴 것 |확인날짜=2016-03-1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28001457/http://www.ytn.co.kr/program/program_view_0401.php?key=200907031022140858# |보존날짜=2016-03-28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잭슨의 영향력은 MTV에서만 통한 것이 아니다. MTV 말고도 많은 [[라디오]]들과 방송국들의 인종차별적 프로그램 정책을 돌파해냈다. 《Thriller》는 젊은 백인 청취자들의 취향에 맞추는 록 비디오 방송국들과 흑인 청취자들에게 어필하는 어반 댄스 음악 방송국에서도 틀어졌는데 《Thriller》전에는 매우 소수의 뮤지션들만이 이 미묘한 인종간의 경계를 넘을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일은 케이블 텔레비전에도 일어났다. 흑인 가수들이 거의 나오지 않는 데서도 잭슨의 영상들은 방영되었다. 흑인 가수들의 음악을 거의 안 튼다고 봐도 될 정도였던 Album Oriented Rock 계열의 라디오 방송국들에서도 잭슨의 노래와 영상은 방영됐다. 인종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ref name="ny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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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1993 : ''Dangerous'', 슈퍼볼, 전설상 수상 ===
[[1991년]] 3월 잭슨은 [[소니]]와 6500만 달러의 재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기존 [[닐 다이아몬드]]의 기록을 갱신한 것이다.<ref name="MTV News">[http://www.mtv.com/news/1615214/michael-jacksons-life-legacy-the-eccentric-king-of-pop-1986-1999/ Michael Jackson's Life & Legacy: The Eccentric King Of Pop (1986–1999). MTV News. July 6, 2009. Retrieved August 22], 2015년 확인.</ref><ref name="independent">[http://www.independent.co.uk/arts-entertainment/music/news/robbie-swings--historic-record-deal-with-emi-138739.html Robbie swings historic record deal with EMI], 2015년 확인.</ref> 11월 마이클 잭슨은 퀸시 존스와 헤어지고 테디 라일리라는 새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해 정규앨범 《[[Dangerous (마이클 잭슨의 음반)|Dangerous]]》를 발매했다. 3000만장 이상이 팔린 것으로 추정되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16위라는 기록을 세웠다.<ref name="mediatraffic"/> 1991년 기준으로 영국 역사상 가장 빨리 많이 팔린 앨범이기도 하다.<ref>[Taraborelli, J.Randy, Michael Jackson – The Magic, the Madness, the Whole Story. pp. 582]</ref> [[빌보드 200]]에서 4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인종 화합 메시지를 담은 첫 싱글인 'Black Or White'는 7주동안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했다. 대다수 평론가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Robert Christgau는 "'Off the wall' 이후 가장 일관성 있는 앨범이며 'Bad'이후로 가장 선명하다."라고 썼다.<ref>http://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3Ahttp%3A%2F%2Fwww.allmusic.com%2Falbum%2Fdangerous-r10095&oq=cache%3Ahttp%3A%2F%2Fwww.allmusic.com%2Falbum%2Fdangerous-r10095&aqs=chrome..69i57j69i58.1449j0j7&sourceid=chrome&es_sm=93&ie=UTF-8{{깨진 링크|url=http://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3Ahttp%3A%2F%2Fwww.allmusic.com%2Falbum%2Fdangerous-r10095&oq=cache%3Ahttp%3A%2F%2Fwww.allmusic.com%2Falbum%2Fdangerous-r10095&aqs=chrome..69i57j69i58.1449j0j7&sourceid=chrome&es_sm=93&ie=UTF-8 }}</ref><ref>http://www.rocksbackpages.com/Library/Article/michael-jackson-idangerousi/</ref><ref>http://www.rollingstone.com/music/albumreviews/dangerous-19920101</ref><ref name="acclaimedmusic.net">{{웹 인용 |url=http://www.acclaimedmusic.net/Current/A3375.htm |제목=보관 된 사본 |확인날짜=2016년 3월 4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03192616/http://www.acclaimedmusic.net/Current/A3375.htm |보존날짜=2016년 3월 3일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ref name="acclaimedmusic.net"/><ref>http://www.robertchristgau.com/xg/cg/cgv192-92.php</ref> 《[[Dangerous (마이클 잭슨의 음반)|Dangerous]]》는 다시 잭슨 붐을 일으켰다. [[1993년]] [[대한민국]]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인으로 1위에 뽑히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721037#cite_ref-1]</ref>
 
[[1992년]] 《[[Dangerous (마이클 잭슨의 음반)|Dangerous]]》는 전 세계에서 연간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조사됐다. 싱글 'Black Or White'는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세계적인 올해의 싱글 베스트 셀러를 수상했다.<ref>https://news.google.com/newspapers?id=w7QiAAAAIBAJ&sjid=DbUFAAAAIBAJ&pg=3124,2012493&dq=best+selling+album+1992+worldwide&hl=en</ref> 싱글 'Heal the World'는 [[영국]]과 [[유럽]]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영국에선 40만장의 싱글이 팔렸으며 차트에서 2주동안 2위를 차지했다.<ref>[http://www.officialcharts.com/charts/singles-chart/19921206/7501/ Official Singles Chart Top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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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언론에 보도가 되지 않았으며, 이반 측과 잭슨 측만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상태였다. 잭슨은 이반 측의 합의 제안을 거절했다. 1993년 7월 2일 조단의 의붓 아버지인 데이비 슈워츠는 이반이 왜 이러는지 이해 할 수 없어 전화를 했고 전화의 녹음본이 공개됐는데 이반은 데이비 슈워츠에게 "일이 잘 되면 나는 대박일거야.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얻을 것이고 마이클 잭슨은 영원히 파괴될 것" 이라고 말했다.<ref>Taraborrelli, p. 477–478</ref>
 
이반은 잭슨에게 민사소송을 걸었고, 아동복지국은 자체적으로 형사 수사에 착수한다. 네버랜드가 압수수색 되자 언론에서는 이러한 사건을 처음 알게됐고 잭슨을 향해 끊임없는 비난을 쏟았다. 준은 형사 조사에서 잭슨은 성추행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말했다. 12월 마이클 잭슨은 검찰에게 몸 수색을 당한다. 검찰은 마이클 잭슨의 성기 사진을 찍어, 조단 챈들러가 증언하는 잭슨의 성기 모양과 일치하는 지 확인하려 했는데 일치하지 않았다고 로이터 통신과 USA투데이가 보도했다.<ref name="chandler contra">Vigoda, Arlene. "Photos May Contradict Michael Jackson's Accuser." USA Today. 28 Jan. 1994: Pg. 2.</ref><ref name="campbell 173">Campbell, p.173</ref><ref name="photos usatoday">[http://pqasb.pqarchiver.com/USAToday/access/55226686.html?did=55226686&FMT=ABS&FMTS=FT&desc=Photos+may+contradict+Michael%27s+accuser1 "Photos May Contradict Michael's Accuser (abstract, full text available for pay)"]. ''[[USA Today]]''. McLean, Va. 1994-01-28.</ref><ref name="photostxt usatoday">[http://site2.mjeol.com/important-article/jackson-grand-jury-disbanded-1994.html "Photos May Contradict Michael's Accuser (full text)"] {{웨이백|url=http://site2.mjeol.com/important-article/jackson-grand-jury-disbanded-1994.html |date=20150428133350 }}''[[USA Today]]''. McLean, Va. 1994-01-28.</ref><ref>{{웹 인용|url=http://www.nbcnews.com/id/3080078/ns/dateline_nbc-newsmakers/t/new-look-dark-accusations/#.UyIYrvRDt8E |title=New look at dark accusations |publisher=[[NBC]]|accessdate=March 13, 2014}}</ref> 잭슨은 자신은 결코 죄가 없다며 결백을 호소했고 무죄 추정의 원칙을 주장했다. 그러나 극심한 스트레스와 진통제 중독 그리고 변호사들이 잭슨이 결백 하더라도 백인 중상류층 보수 지역인 산타바바라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며 합의를 권유하여 1500만 달러에 민사소송 사건을 합의한다. 일부는 합의를 혐의를 인정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합의안 내용을 보면 잭슨은 성추행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ref>[http://edition.cnn.com/2004/LAW/06/16/michael.jackson/index.html?_s=PM:LAW Jackson settlement from 1993 allegations topped $20 million]</ref><ref>[http://www.thesmokinggun.com/file/michael-jacksons-15-million-payoff?page=4 Michael Jackson's $15 Million Payoff]</ref> 민사 소송 문제는 해결됐다. 검찰청 검사 'Gil Garcetti'는 민사소송 합의가 형사 수사 건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ref>[Michael Jackson Settles Suit For Sum Said to Be in Millions Michael Jackson Settles Suit For Sum Said to Be in Millions]</ref> 증거의 부족으로 1994년 9월 22일 조사를 중단했으며<ref>Taraborrelli, p. 540–545</ref><ref>[http://www.nytimes.com/1994/09/22/us/no-charges-for-now-against-michael-jackson.html?pagewanted=print&src=pm No Charges for Now Against Michael Jackson]</ref> 경찰이 제시하는 증거들은 잭슨을 기소하기에는 충분한 설득력이 없었고<ref>[http://law.jrank.org/pages/7199/Grand-Jury.html Grand Jury - Hearsay Evidence: Admissible Before A Grand Jury?, Should The Grand Jury Be Abolished?, Further Readings]</ref><ref>{{웹 인용 |url=http://www.justice.gov/atr/public/guidelines/206826.htm#IVD2 |제목=Chapter Four: Grand Jury Manual – Department of Justice |확인날짜=2015-03-2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21201902/http://www.justice.gov/atr/public/guidelines/206826.htm#IVD2#IVD2 |보존날짜=2014-02-21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이로 인해 형사 수사는 불기소 처분으로 종결됐다.
 
2005년 이반 챈들러는 아들 조단 챈들러의 눈에 스프레이와 후추를 뿌리며 실명을 시도했다. 또한 질식 행위로 죽이려고 한 충격적인 사실이 확인됐다. 조단은 법정에다 이반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신청을 했고 법원은 받아들였다.<ref>[http://www.nydailynews.com/entertainment/gossip/evan-chandler-dad-boy-accused-michael-jackson-molestation-commits-suicide-new-jersey-article-1.417751 Evan Chandler, dad of boy who accused Michael Jackson of molestation, commits suicide in New Jersey]</ref> 이반 챈들러는 잭슨이 죽은 지 5개월 후인 2009년 11월 5일 권총으로 자살을 하며 생을 끝마쳤다. 또한, LA DCFS(로스엔젤레스 아동복지국)가 당시 잭슨의 사건을 조사한 결과 잭슨의 혐의를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ref>[http://celebritynewsandstyle.com/authorities-investigate-michael-jackson%E2%80%99s-children-no-evidence-of-pedophilia-112/ Authorities Investigate Michael Jackson’s Children: No Evidence of Pedophilia - See more at: http://celebritynewsandstyle.com/authorities-investigate-michael-jackson%E2%80%99s-children-no-evidence-of-pedophilia-112/#sthash.42HON3NU.dpuf]</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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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2000 : ''HIStory'', 2번째 결혼과 자녀 ===
[[1995년]] 마이클 잭슨은 가지고 있는 ATV 뮤직 카탈로그의 지분 절반을 소니에게 9500만 달러를 받고 넘겼으며 그로 인해 소니/ATV 뮤직 출판사가 탄생했다. 이 해 6월 잭슨은 정규앨범《[[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I]]》를 발매했다.[[파일:Michael Jackson sculpture.jpg|섬네일|위오른쪽|유럽에 있는 마이클 잭슨의 동상.]] Disc 1에는 그의 히트 곡들이 수록돼 있고, Disc 2에는 그의 신곡이 수록된 더블 앨범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주간 1위를 차지하고 미국에서 700만장 판매량의 인증을 받았다. 싱글 'You are not alone'은 빌보드 데뷔 첫주 만에 1위라는 '핫샷'으로 불리는 신기록을 세웠다.<ref>{{웹 인용 |url=http://uk.news.launch.yahoo.com/dyna/article.html?a=%2F14112006%2F344%2Fjackson-receives-world-records.html&e=l_news_dm |제목=보관 된 사본 |확인날짜=2011년 5월 27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527045635/http://uk.news.launch.yahoo.com/dyna/article.html?a=%2F14112006%2F344%2Fjackson-receives-world-records.html&e=l_news_dm |보존날짜=2011년 5월 27일 |깨진링크url-status=아니오live }}</ref> 앨범은 2000만장 이상이 판매됐으며<ref name="mediatraffic"/> 평론가들에게는 대체로 평균적인 수준이라는 반응을 얻었다.<ref name="acclaimedmusic.net"/><ref>{{웹 인용 |url=http://www.rollingstone.com/artists/michaeljackson/albums/album/312830/review/5943497/history_past_present_and_future_book_1 |제목=보관 된 사본 |확인날짜=2008년 8월 4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804062514/http://www.rollingstone.com/artists/michaeljackson/albums/album/312830/review/5943497/history_past_present_and_future_book_1 |보존날짜=2008년 8월 4일 |깨진링크url-status=아니오live }}</ref><ref>http://www.robertchristgau.com/get_artist.php?id=932</ref><ref>{{웹 인용 |url=http://www.collegian.psu.edu/archive/1995/06/06-23-95tdc/06-23-95darts-1.asp |제목=보관 된 사본 |확인날짜=2010년 4월 8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10226160643/http://www.collegian.psu.edu/archive/1995/06/06-23-95tdc/06-23-95darts-1.asp |보존날짜=2001년 2월 26일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ref>{{웹 인용 |url=http://www.highbeam.com/doc/1P1-2346777.html |제목=보관 된 사본 |확인날짜=2015-03-22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1022051414/http://www.highbeam.com/doc/1P1-2346777.html |보존날짜=2012-10-22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올해의 앨범 상 후보로도 지명됐으며 수록곡 'Scream'은 발매와 동시에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 5위로 올랐고 올해의 뮤직비디오로 그래미에서 수상했다.<ref>George, p. 48–50</ref> 미국에서는 발매되지 않았지만 유럽에서는 발매된 싱글 'Earth Song'은 많은 인기를 얻었다. [[영국]]에서는 6주간 1위를 기록했고 1,160,000장의 싱글이 팔렸으며 [[독일]]에서는 100만장의 싱글이 팔려 2x 플래티넘을 기록했다.<ref>[http://www.musikindustrie.de/gold_platin_datenbank/?action=suche&strTitel=Earth+Song&strInterpret=&strTtArt=alle&strAwards=checked 독일 차트]</ref>
 
한편 'HIStory' 앨범은 [[유태인]] 비하 논란을 겪었다. 싱글 'They Don't Care About Us'의 가사 중 'Jew'는 유태인을 비하하는 용어로 [[미국]] 내에서는 사용이 금기시 된 용어다.<ref>{{웹 인용 |url=http://www.kamerican.com/GNC/new/secondary_contents.php?article_no=7&no=1234 |제목=미국문화 속 Jewish Subculture |확인날짜=2015-04-03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407052550/http://www.kamerican.com/GNC/new/secondary_contents.php?article_no=7&no=1234 |보존날짜=2015-04-07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6월 17일 잭슨은 그 말을 선택한 것에 대해 공개적인 사과를 했다. 잭슨은 "이 노래는 편견과 증오에 대한 사회 정치적 문제를 끌기 위한 한 방법이다. Jew라는 용어는 잘못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선택한 용어였다" 라고 해명했다.<ref>[http://www.nytimes.com/1995/06/17/arts/michael-jackson-apologizes-for-hurt-caused-by-lyrics.html Michael Jackson Apologizes For Hurt Caused by Lyrics]</ref> 그 뒤 논란이 된 가사 부분을 수정한 뒤 앨범을 재발매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연습도중 [[공황발작]]으로 인하여 병원에 입원했다.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으며 15분만 늦었어도 잭슨이 죽을 수 있었다고 [[의사]]들은 말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121700329119040&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5-12-17&officeId=00032&pageNo=19&printNo=15627&publishType=00010 연습도중 실신 마이클잭슨 15분만 입원 늦었어도 사망]</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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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
10월 28일 영화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이 2주동안 개봉되었다. 영화는 빠른 속도로 매진됐으며 특히, [[영국]]에선 티켓 판매 역사상 가장 빨리 많이 팔린 기록을 세웠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1100&g_serial=446125 마이클 잭슨 영화, 전세계 예매 기록 경신]</ref> 동명의 앨범인 [[This Is It (마이클 잭슨의 음반)|This Is It]]이 같은 해 10월 26일에 발매됐다. 또, 이 앨범에 실린 싱글인 'This is it'이 발매됐으며, [[빌보드]]차트에서 앨범은 1위, 싱글은 43위에 머물렀다. 2009년 12월 24일 미국 [[FBI]]는 마이클 잭슨에 대한 수사 파일들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살해 협박 편지등을 포함해 마이클 잭슨의 아동 성추행 수사 파일들도 들어있다. 이 정보 공개를 통해 그가 아동 성추행에 혐의가 없음을 다시 확인하게 됐다.<ref>{{웹 인용 |url=http://foia.fbi.gov/foiaindex/jackson_michael.htm |제목=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 Freedom of Information Privacy Act<!-- 봇이 따온 제목 --> |확인날짜=2010년 1월 13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0113160210/http://foia.fbi.gov/foiaindex/jackson_michael.htm |보존날짜=2010년 1월 13일 |깨진링크url-status=아니오live }}</ref>
 
[[2010년]] 2월 52번째 [[그래미 어워드]]에서 '평생 공로상'을 아들과 딸이 대리수상 받는다. 2010년 11월, [[에픽 레코드]]와 마이클 잭슨 재단은 그의 첫 사후앨범인 《[[Michael]]》를 발매한다. 첫 싱글은 지난 2007년과 2008년에 R&B 가수인 [[에이콘]]과 작업했으나, 유출됐던《Hold My Hand》가 첫 싱글이다. [[빌보드 200]] 3위를 기록했다. 수록된 몇몇 곡은 마이클 잭슨의 목소리가 맞는 지에 대한 논란 또한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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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춤 실력으로 [[댄스]]의 [[대중]]화에 공헌을 했다. 전문댄서 안나 키셀코프는 "댄서로서 전문적으로 판단해볼 때, 잭슨은 탑이다. 당신은 댄스의 거장을 볼 수 있다. 잭슨은 동작을 동작 그 자체를 위해 사용하는 무용의 달인, 아방가르드 무용가다. 그의 댄스는 추상적이며, 세계적인 현대 무용가 머스 커닝햄처럼 그는 우리에게 동작이 동작 그 자체의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거의 팝 스타들과는 달리 잭슨은 미리 딱딱 짜여진 대로 춤을 추지 않는다. 특정할 수 없는 즉흥적인 춤으로 대중들과 소통한다. 잭슨은 위대한 일루셔니스트이며 진정한 마임가이다."라고 평가했고<ref>[http://www.nytimes.com/1988/03/06/arts/stage-the-dancing-feet-of-michael-jackson.html http://www.nytimes.com/1988/03/06/arts/stage-the-dancing-feet-of-michael-jackson.html]</ref> 가디언지는 "잭슨의 춤 동작 레퍼토리는 여전히 모든 길거리 댄스와 알앤비 무브가 파생되는 기초 노트로 남아있다."라고 평가했다.<ref>[https://www.theguardian.com/music/2014/jun/25/five-ways-michael-jackson-influence-lives-on https://www.theguardian.com/music/2014/jun/25/five-ways-michael-jackson-influence-lives-on]</ref> 또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댄스가 스킬이 아닌 예술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댄서 잭슨의 성적은 A+ 학점을 주어도 아쉬울 게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에 수많은 댄서들이 살다 갔지만 그 중에 자신만의 시그니쳐 무브를 만들어 낸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누구나 춤은 기억하지만 댄서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지만 잭슨은 우선 저 유명한 '문워킹'이라는 시그니쳐 댄스를 남겼다. 빌 베일리의 탭 댄스에 제임스 브라운의 그루브를 자연스레 접목시킨, 이를테면 재활용 댄스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파워풀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잭슨의 동작은 선배들과는 전혀 새로운 감흥을 안겨주었다. 그는 테크니컬한 관점에서도 훌륭한 댄서였다. 굉장히 안정적인 자세에서 가볍고도 강렬하게 이루어지는 라킹이나 파핑 등 그가 공연에서 즐겨 추는 브레이킹 무브들은 춤에 어느정도 통달한 사람들만이 자연스레 모방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올라 있었다. 한편 그는 최신 댄스 팝을 50년대 이전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타일과 결합시키면서 새로운 경향을 창조해 내기도 했다. 프레드 아스테어나 진 켈리가 보여준 뮤지컬 특유의 낭만적인 몸짓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길거리 흑인 음악의 정수인 그루브함과 역동성을 부여해 그 이전 시대의 팝 아티스트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안무들로 승화시킨 것은 중요한 성과다. 그가 최고의 춤꾼들과 함께 고안해낸 'Thriller', 'Smooth Criminal', 'Dangerous'의 흥미로운 군무와 그 짜여진 동작 하나하나들의 디테일은 결국 팝 음악에서 안무라는 개념을 완전히 뒤바꾸었다."라고 평가했다.<ref>[https://m.cafe.naver.com/musicy/9289 https://m.cafe.naver.com/musicy/9289]</ref> 1974년 'Soul Train'에서 J5의 일원으로 출연해 로봇춤을 유행시켰으며, 뒷골목에서 [[흑인]]들을 중심으로 유행하던 브레이킹 댄스를 [[공중파]]에서 선보여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ref>[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06262000503&sec_id=540101&pt=nv 마이클잭슨은 황제였다!]</ref><ref>[http://eto.freechal.com/news/outview.asp?Code=20090626143854220‘전설이 된 황제’ 마이클잭슨이 남긴 ‘45가지 기록’]{{깨진 링크|url=http://eto.freechal.com/news/outview.asp?Code=20090626143854220%E2%80%98%EC%A0%84%EC%84%A4%EC%9D%B4 }}</ref> 'Thriller'와 'Beat it'의 뮤직비디오에서 최초의 집단군무를 선보였고 이는 뮤직비디오의 고전이자 원형으로 자리 잡았다.<ref name="마이클 잭슨 불타는 숲속의 새끼사슴을 잃다"/> 뛰어난 노래에 몸을 맞춰 추는 그의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으며 잭슨의 춤을 본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기 위해 댄서에 도전했다. 잭슨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린 후 많은 유명 댄서들은 잭슨에게 큰 영향을 받았으며 춤의 아버지를 잃었다고 애도를 표했다.<ref>[http://www.mtv.com/news/1624323/michael-jackson-honored-on-dancing-with-the-stars/ Michael Jackson Honored On ‘Dancing With The Stars’]</ref> 마이클의 이러한 공로들을 기리고자 2010년에는 프레드 아스테어, 세미 데이비스
주니어 같은 전설적인 댄서들만 입성할 수 있었던 '미국 국립 무용 박물관 명예의 전당'에 가수 출신으로서는 최초이자 현재까지도 유일하게 마이클이 이름을 올렸다.<ref>{{웹 인용 |url=http://www.dancemuseum.org/exhibits/hof.html |제목=http://www.dancemuseum.org/exhibits/hof.html |확인날짜=2015-03-13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402122720/http://www.dancemuseum.org/exhibits/hof.html |보존날짜=2015-04-02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흑인은 소울/알앤비, 백인은 록/팝이라는 흑백간 음악적 장르의 벽을 완전히 허물었다. 미국음반산업협회 RIAA는 "스릴러는 음악적 장벽을 무너뜨리고 팝의 판도를 영원히 바꿔 20세기와 21세기 하나의 글로벌 문화 현상으로 남아있다. 스릴러 앨범의 곡들은 너무나도 역동적이고 독특해서 락/팝/소울 같은 장르의 정의도 내릴 수 없다. 'Beat It'은 팝과 락을 새롭게 융합하여 오랜 시간 지속돼 오던 흑백 음악의 장르적 경계를 허물었다. 'Wanna Be Startin’ Somethin' 같이 아프리카 리듬, 'Billie Jean' 같이 알앤비에 기반을 둔 곡들도 있다. 이전 그 누구도 이렇게 광범위한 장르와 소재를 가지고 앨범을 만든 적은 없었다."라고 평가했고<ref>[https://www.riaa.com/michael-jacksons-thriller-first-ever-30x-multi-platinum-riaa-certification/ https://www.riaa.com/michael-jacksons-thriller-first-ever-30x-multi-platinum-riaa-certification/]</ref> 뉴욕타임즈는 "잭슨의 노래는 댄스 음악의 정의를 만들었다. 스릴러 앨범의 편곡은 록인지 펑크인지 아니면 디스코인지 한 가지로 규정짓기 힘든 리듬을 갖고 있으며 실제 사운드와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강력한 조합과 어우러져 그의 하이톤 목소리에 딱 들어맞는다."라고 평가했다.<ref>[http://www.nytimes.com/1984/01/14/arts/michael-jackson-at-25-a-musical-phenomenon.html?pagewanted=all http://www.nytimes.com/1984/01/14/arts/michael-jackson-at-25-a-musical-phenomenon.html?pagewanted=all]</ref> 또 고영탁 평론가는 "소울, 펑크, 재즈 등 대표적인 흑인음악과 록, 팝, 발라드 같은 백인음악이 그의 음악에 하나로 녹아있다. 말하자면 흑백 음악의 통합을 이뤄낸 것"이라 평했고<ref>[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10888753 마이클 잭슨 Michael Jackson - The Ultimate Collection]</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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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중음악계에서 흑인들은 항상 2인자였다. 흑인 노예들의 음악인 블루스에 기반을 두고 탄생한 로큰롤은 물론이고, 스탠더드 팝, 포크 음악, 하드 록 등 거의 모든 장르에서 백인들이 주류를 점했다. 소수의 흑인 가수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다. 마이클 잭슨이 팝의 주류에 전면 등장하면서 흑인들의 정상 등극도 활발해졌다."라고 평가했다.<ref>[http://m.busan.com/m/News/view.jsp?newsId=20100105000203 http://m.busan.com/m/News/view.jsp?newsId=20100105000203]</ref> 롤링스톤즈는 "마이클 잭슨은 미국인들이 흑인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선봉장이었다. 새로운 흑인 그룹들이 라디오에서 대히트를 쳤고, 음반회사들은 MTV 앞에 머리를 숙였다. 흑인 아티스트들의 출연을 거부했던 로큰롤 TV와 라디오 방송국의 굳게 닫힌 문도 현재 음악산업에서 가장 재능있는 한 스타에 의해 무너졌다. 그 뒤로 모든 것은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빌리진의 크로스오버가 가장 중요했는데 디스코 시대 이후 처음으로 흑인음악을 백인 로큰롤 청중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이것은 AOR(당시 백인음악 위주의 라디오 프로그램)도 무너뜨렸고 이로 인해 MTV가 완전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빌리진을 시작으로 수많은 흑인 아티스트들이 큰 히트를 쳤다"라고 평했으며<ref>[http://www.rollingstone.com/music/features/the-year-in-music-19831222 http://www.rollingstone.com/music/features/the-year-in-music-19831222]</ref> 빌보드는 "1980년대 들어 디스코 시대가 저물고 차트에서 흑인음악의 후퇴는 얼마나 드라마틱했던가? 1982년까지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 흑인음악의 비중은 거의 80%나 감소했다. 이것은 당시 흑인음악의 존재감이 거의 바닥이었음을 말해준다. 확실히 흑백 사이에는 깨질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장벽이 존재했는데 특히 아이들은 서로 무슨 음악을 듣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MTV와 라디오 채널은 철저히 백인음악 위주로 편성됐다. 하지만 MTV가 마이클과 함께 성공하면서 다른 흑인 아티스트들의 비디오도 빠르게 방영되기 시작했고 팝 라디오에서 자취를 감췄던 흑인음악도 다시 들리기 시작했으며 대중들은 이제 흑인 음악가와 백인 음악가의 비디오를 같은 채널에서 보고, 그들의 음악을 같은 라디오에서 듣는 데 익숙해지게 됐다. 스릴러 시대에 흑인 음악은 차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프린스의 싱글 '1999'조차도 1982년 처음 발표됐을 땐 라디오에서 아웃됐다가 1983년 중반에 재발표된 후 MTV에 모습을 보여 팝 라디오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마이클과 MTV의 조합은 실로 거대한 파워 그 자체였으며 레이건 시대 초기 쪼개져 있던 대중문화를 재통합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흑인음악은 주류로 부상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라고 평가했다.<ref>[http://www.billboard.com/articles/columns/pop-shop/473949/michael-jacksons-thriller-at-30-how-one-album-changed-the-world http://www.billboard.com/articles/columns/pop-shop/473949/michael-jacksons-thriller-at-30-how-one-album-changed-the-world]</ref> 또 배철수 DJ는 "마이클은 음악 시장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입니다. 마이클과 함께 소울팝, R&B팝이 궤도에 올랐고 프린스, 라이오넬 리치, 휘트니 휘스턴은 마이클의 등장으로 인해 인기를 얻었습니다. 마이클이 등장하기 바로 직전에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악 장르는 컨트리 팝이었지만, 마이클이 우뚝 솟으면서 완전히 음악의 양태가 바뀌었습니다. 마이클의 등장으로 인해 세련된 흑인음악, 재즈나 가스펠의 영향을 받은 음악마저도 등장을 한 것이라고 봅니다."라고 평가했다.<ref>[http://m.blog.daum.net/sungim2009/735 http://m.blog.daum.net/sungim2009/735]</ref> 잭슨의 성과는 흑인을 포함한 유색 인종들에게 자신감과 긍지를 부여했다. 잭슨은 'Thriller' 로 대성공을 거두고 당당히 타임지의 표지 모델을 장식했다. 타임은 잭슨이 흑인을 음악의 주류로 올려놨다고 평가했다.<ref name="경향신문."/> 잭슨은 20세기 미국의 영웅이라는 소리도 들었으며<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21700209201011&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92-02-17&officeId=00020&pageNo=1&printNo=21739&publishType=00020]</ref> 유색인들의 인권신장에 기여했다는 공로로 유색인 지위향상협회(NACCP Image Award)에서 상을 받는다.<ref name="web.archive.org"/> 유명 농구 선수 [[매직 존슨]]은 흑인을 위해 수많은 문을 열어줘서 감사하다고 애도를 표했으며 [[마틴 루터 킹 2세]]의 아들 마틴 루터 킹 3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훌륭히 해낸 최고의 엔터테이너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09/07/08/0200000000AKR20090708053800009.HTML <"잭슨 넌 최고였어"..지인들 마지막 인사>]</ref> 미국의 인권운동가 알 샤프턴 목사는 "잭슨은 타이거 우즈,오바마,오프라 윈프리에 앞서 유색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를 만들었다"라고 회고했다.<ref name="DB조선">[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Y=2009&M=06&D=27&ID=2009062700003 전세계 울린 '팝의 황제'], 2009년 작성.</ref>
 
팝 레코딩의 교과서,팝 사운드의 새 기준을 제시했다고 평가를 받는다. 정일영 음향엔지니어는 잭슨의 음반 사운드는 현대음악의 기준으로 불려도 될 만큼 충실하며 스테레오 효과를 극한까지 올린 팝 레코딩의 교과서이며 엄청난 완성도를 보여주는 그의 음악 세계는 그냥 팝이라고 흘리기에는 음향 엔지니어로서 배울 점이 너무나 많다고 평가했고<ref>[http://icej10.blog.me/60104771571 마이클 잭슨의 사운드와 음악]</ref> 배철수 DJ는 "음반을 들으면 이건 소리가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마이클의 음반은 스튜디오에서 들으면 사운드가 다른 음반과는 다릅니다. 정말 보통 소리가 아닌거죠. 사운드 엔지니어링 측면에서도 시대를 앞서갔다, 유행을 선도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평가했다.<ref>[http://m.blog.daum.net/sungim2009/738 http://m.blog.daum.net/sungim2009/738]</ref> 또 한지훈 음향엔지니어는 "저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하고 지금도 음악과 오디오에 관련된 글을 쓰면서 먹고 사는 사람이지만 마이클 잭슨의 앨범을 들을 때면 아직도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그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마이클 잭슨의 감성과 메시지가 완성도 높은 사운드 품질 덕에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마이클 잭슨의 앨범은 다른 가수들의 그것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의 음악은 후배들에게 교본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평가했고<ref>[http://m.app.melon.com/musicstory/detail.htm?mstorySeq=5555 http://m.app.melon.com/musicstory/detail.htm?mstorySeq=5555]</ref> 배순탁 음악평론가는 "각각의 악기가 명료하게 분리되어 있는 동시에 한 덩어리로 작동하는가를 알고 싶다면 마이클의 빌리진을 강력 추천한다. 마이클은 이 곡의 믹싱을 무려 90번 넘게 했다. 빌리진이 발표된 게 1983년이다. 그런데 이 곡의 사운드는 2016년에 발표된 그 어떤 곡과 비교해도 꿀리기는커녕 우위를 점하고도 남을 수준이다."라고 평했으며<ref>[http://m.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7166 http://m.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7166]</ref> [Bad] 앨범에 대해서도 "[Thriller]에 이어 ‘백인은 록, 흑인은 소울’이라는 기존 등식을 다시금 전복했다는 업적으로도 찬사를 받는다.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함께 일궈낸 사운드 퀄리티의 경이로움 역시 [Thriller]에 이어 듣는 이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확실히 그것은, 마이클 잭슨 외에 그 누구도 실현하지 못했던 고감도 사운드 메이킹이었다. 30년이 지났음에도 이렇듯 '현대적'으로 들리는 작품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라고 평가했다.<ref>[https://magazine.kakao.com/greattak/20170907 https://magazine.kakao.com/greattak/20170907]</ref> 한상철 음악평론가도 [Bad] 앨범에 대해 "[Thriller]에 전혀 꿀리지 않는, 오히려 이에 상응하는 결과물을 기어코 만들어 냈다. 아니, 오히려 [Thriller]에서는 불가능했던 것들을 구현한 요소들마저 있었다. [Bad]가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붐을 일으켰던 뉴 잭 스윙과 90년대 만들어졌던 메인스트림 댄스 뮤직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앨범 중 하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라고 평했고<ref>[http://m.yes24.com/Goods/Detail/3068040 http://m.yes24.com/Goods/Detail/3068040]</ref> 박준우 음악평론가는 "[Bad]는 하드 락, 어덜트 컨템포러리 등 좀 더 무거운 장르의 문법을 차용했는데, 'Dirty Diana'에서 록 음악의 문법을 차용한 것은 후대 얼터너티브 알앤비에 이르기까지 팝 음악에 있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라고 평가했다.<ref>[https://music.bugs.co.kr/recomreview/series/view/570?page=3 https://music.bugs.co.kr/recomreview/series/view/570?page=3]</ref> 유명 음악 평론가인 임진모는 잭슨의 앨범은 사운드가 뛰어나 옛날 스튜디오 엔지니어 책상에는 항상 잭슨의 앨범이 꽂혀있었다고 한다.<ref name="문워크에서 털기춤까지…보는 음악 새 지평 열어"/> 또한 "비트 감각이 없으면 댄스음악을 소화하기 어렵다. 타고난 비트감각을 소유하고 있었고 소리에 대한 민감성이 사상 최고라고 할 정도로 사운드에 완벽성을 추구한 가수였다" 라고 평가했고<ref>{{웹 인용 |url=http://foto.sportschosun.com/news/ntype2_o.htm?ut=1&name=%2Fnews%2Fentertainment%2F200906%2F20090627%2F96775106.htm# |제목=사망한 마이클 잭슨은 누구? |확인날짜=2018-11-1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402103509/http://foto.sportschosun.com/news/ntype2_o.htm?ut=1&name=%2Fnews%2Fentertainment%2F200906%2F20090627%2F96775106.htm# |보존날짜=2015-04-02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저서 '젊음의 코드, 록'에서는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들으면 녹음과 음향 수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마이클은 대단히 민감한 귀를 가진 듯합니다. 앉아서 만족할 수 있는 사운드가 나올 때까지 계속 '다시'를 외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될 만큼 사운드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가 막힙니다. 특히 엔지니어들이라면 마이클의 음악은 '반드시' 들어봐야 합니다. 마이클은 그토록 훌륭하고 경이로운 음악으로 세계를 지배했습니다."라고 서술했다.<ref>[https://books.google.co.kr/books/about/%EC%A0%8A%EC%9D%8C%EC%9D%98_%EC%BD%94%EB%93%9C_%EB%A1%9D.html?id=RJmKMwAACAAJ&source=kp_cover&redir_esc=y 젊음의 코드, 록]</ref> 장호연 평론가는 "당시 최고 인물들을 앨범 작업에 참여시킨다는 원칙은 지금까지도 여전한데, 그래서 마이클 잭슨의 앨범은 당대에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간 사운드로 여겨진다."라고 평했고<ref>[http://www.weiv.co.kr/archives/13112 블록버스터 팝의 탄생, 미국식 쇼 비즈니스의 정점]</ref> 고영탁 평론가는 "마이클 잭슨은 자신이 원하는 악기 음색과 음원을 찾을 때까지 스튜디오 작업에 매달렸으며, 코러스만해도 음색을 바꿔가며 다채롭고 풍부하게 꾸며 일반 제작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녹음기술만으로 볼 때는 모든 ‘프로듀서와 엔지니어의 드림’이었다."라고
평가했다.<ref>[http://www.izm.co.kr/artistRead.asp?artistidx=1541&bigcateidx=5 http://www.izm.co.kr/artistRead.asp?artistidx=1541&bigcateidx=5]</ref> 그리고 박정용 평론가는 "[Off The Wall] 앨범에서 들려주었던 전통적인 소울의 현대적/혁신적 해석이나, [Thriller]에서 보여준 간결한 완벽성, 흑인음악이 어떻게 팝/록과 함께 섞일 것인가의 최대치를 보여준 [Bad] 앨범. 어쩌면 마이클이 갖고 있던 '혁신'적인 팝 음악 마스터의 이미지란 이렇게 최신 트렌드에 대한 재능 있는 대처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남겨두고 간 제법 많은 곡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팝의 입문서이자 교과서임은 부정 못할 사실이다."라고 평했고<ref>[http://www.weiv.co.kr/archives/13119/amp http://www.weiv.co.kr/archives/13119/amp]</ref> 가수 데프콘은 Dangerous 앨범에 대해 "사운드 퀄리티에 가장 많이 놀랐어요. 거의 신기에 가까운 믹싱 실력이라고 할까요. 퀸시 존스와 결별한 잭슨이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와 만나 최고의 앨범을 탄생시킨 셈이죠. 전곡이 모두 타이틀곡 같은 느낌에다 한발 앞선 음악 기술을 통해 1990년대 팝계에 도장을 찍어버린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이로써 90년대 팝 시장이 정립된 게 아닐까라는 추측도 해보죠. '음악은 가장 긴 생명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 명반이에요."라고 평했다.<ref>[http://music.naver.com/today.nhn?startdate=20090824 http://music.naver.com/today.nhn?startdate=20090824]</ref> 또 김영대 평론가는 "MJ의 강렬한 레코딩 사운드는 그 모든 음악적 업적 중에서도 가장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다. 한때 잭슨의 'Dangerous'는 거의 모든 마스터링 스튜디오에서 레퍼런스 소스로 쓰였으며 'Bad'의 경우에도 스피커나 플레이어의 개발시에 단골 레퍼런스 디스크로 이름을 떨쳤다는 것은 레코딩 업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잭슨의 음반을 믹싱, 마스터링 했던 전문 스튜디오 엔지니어들이 이후 수많은 팝 아티스트들의 집중적인 주문 공세에 시달렸던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녹음실과 장비는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마스터링 엔지니어는 수많은 다른 가수들의 음반도 동시에 작업한다. 그런데 왜 유독 MJ의 음반은 자주 최고의 레코딩으로 거론되곤 하는가? 그의 음반에는 유독 다른 가수들이 쓰지 않는 새로운 테크닉과 장비들이 동원되기라도 하는걸까? 여기서 우리는 현대 대중음악에서 좋은 '사운드'란 단지 마스터링 엔지니어들의 개인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좋은 사운드를 가진 최종 결과물이란 좋은 소리를 구분해 조합하는 최전방 전선의 뮤지션과 프로듀서의 안목이 선행 되어 만들어지는 작업일 때만이 가능해 진다는 것. 음에 관한한 오디오 마니아 수준의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잭슨의 '좋은 귀'가 이런 소소한 설정을 가능케 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한 악기, 한 효과음의 선택에도 직접 관여했고 특히 그의 스승이자 동료였던 퀸시 존스가 떠난 이후 만들어진 'Dangerous', 'HiStory', 'Invincible'에서 그의 역할과 영향력은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음반의 메인 프로듀서 위치로까지 격상되었다. 필 콜린스, 핑크 플로이드, 토토, 피터 가브리엘, 마돈나, 스틸리 댄.. 팝 음악을 소리의 예술로 승화시키곤 했던 80년대의 거장들의 이름 몇몇을 더 기억해 낼 수도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마이클 잭슨은 유독 언제나 그 흐름과 경향을 리드하는 몇 안 되는 프론티어였다. 그는 멜로디와 가사로 전달되는 대중음악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이 최상의 결과물로서 빛나게 할 수 있도록 편곡, 프로듀싱, 녹음, 마스터링 등 일련의 후반 작업과 부가 작업에는 누구보다도 많은 돈과 시간을 소비했다."라고 평가했다.<ref>[https://m.cafe.naver.com/musicy/9289 https://m.cafe.naver.com/musicy/9289]</ref> 마이클은 프로듀서이기도 했는데 1979년 Off The Wall 앨범과 1982년 Thriller 앨범은 본인이 작곡한 곡들에 한해, 1987년 Bad 앨범은 작곡 여부와 상관없이 전곡을 퀸시와 공동으로 프로듀싱했다. 1991년 Dangerous 앨범부터는 퀸시와 결별하고 테디 라일리, 빌 보트렐, 로드니 저킨스 등의 프로듀서들과 함께 작업했는데, 이때부터는 본인이 직접 기존 퀸시의 자리를 대신해 메인 프로듀서가 되어 앨범 제작을 총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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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93 walk of fame michael jackson.jpg|섬네일|왼쪽|1984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오른 잭슨]]
잭슨은 활동하던 동안 뮤직비디오 예술 형태의 변형, 현대 팝 음악의 길을 닦아 놓는 등의 성과로 미디어에서 흔히 팝의 황제(King Of Pop)로 불린다.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작가 톰 유틀리는 2003년 잭슨을 "극도로 중요한 인물", "천재"라고 묘사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telegraph.co.uk/opinion/main.jhtml?xml=/opinion/2003/02/08/do0801.xml&sSheet=/opinion/2003/02/08/ixopinion.html |author=Utley, Tom |title=Of course Jackson's odd—but his genius is what matters |work=The Daily Telegraph |date= 2003년 3월 8일 |accessdate= 2008년 7월 23일 | location=London |authorlink=Tom Utley}}</ref> 잭슨의 음악과 인도주의적인 공헌은 신세대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쳐 그 누구와도 비할 데 없는 수준이다.<ref name="ADL">{{웹 인용|url=http://www.adl.org/PresRele/ASUS_12/2471_12.asp |title=ADL happy with Michael Jackson decision |publisher=[[Anti-Defamation League]] |date= 1995년 6월 22일 |accessdate= 2008년 7월 1일}}</ref> 《Thriller》와 같은 음악과 뮤직비디오는 당시 비교적 새로운 채널이었던 MTV의 대중적 인식을 높이는데 기여했고, 채널의 중심을 록에서 팝 음악과 알앤비로 이동시키며 형태를 마련했다. 잭슨의 작품은 수 많은 [[힙합]], 록, 팝, 알앤비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BET에서는 "간단하게 말해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예인" 또한 "뮤직비디오의 대변혁을 일으켰고 세계에 문워크 같은 춤을 가져다줬다. 잭슨의 사운드, 스타일, 움직임, 유산은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ref>{{웹 인용 |url=http://search.bet.com/topics/m/michael-jackson.html |title=Michael Jackson |publisher=Search.bet.com |accessdate=2012년 6월 11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704173546/http://search.bet.com/topics/m/michael-jackson.html |보존날짜=2012년 7월 4일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올뮤직》의 스티브 휴이는 잭슨을 "바로 알 수 있는 목소리, 깜짝 놀랄만한 댄스, 굉장한 음악적 다재다능, 순전한 스타로서의 무게감 등 차트를 지배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가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힘이다"라고 묘사했다.<ref name="allmusic_2">{{웹 인용|last=Huey|first=Steve|title=Michael Jackson—Biography|url={{올뮤직|class=artist|id=p4576|pure_url=yes}} |work=AllMusic|accessdate=November 11, 2006}}</ref> 1990년 《[[배너티 페어]]》에서는 연예 공연업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음악가로 잭슨을 꼽았다.<ref name = "Nelson George overview 43-44">George, pp. 43–44</ref> 2007년 잭슨은 "음악은 나의 발산 수단이며, 세계의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나의 선물이다. 내 음악은 영원히 남을 것이란걸 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first=Bryan |last=Monroe |title=Michael Jackson in His Own Words |work=[[Ebony (magazine)|Ebony]] |date=December 2007}}</ref>
 
2002년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81명의 음악전문가와 1,556명의 청취자들을 상대로 한 '20세기 최고의 팝 아티스트' 투표에서 전문가와 청취자 모두 3위를 차지했다.<ref name="배철수의음악캠프">[http://mnews.joins.com/article/479905#home 20C 최고 팝 아티스트는 비틀즈]</ref> 2003년 《Cove 매거진》에서는 순수 보컬 능력만을 평가하여 편집자 선정 역대 탑 보컬리스트 100인의 순위에서 마이클을 3위에 랭크했다.<ref>{{웹 인용 |url=http://www.covemagazine.com/100vocalists.html |제목=코브 매거진 2003년 |확인날짜=2005년 11월 25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51125144637/http://www.covemagazine.com/100vocalists.html |보존날짜=2005년 11월 25일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VH1]]》에서는 2010년 200명의 음악전문가와 현역 가수들을 상대로 한 투표에서 잭슨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로 2위에 뽑았다.<ref name="stereogum">[http://www.stereogum.com/495331/vh1-100-greatest-artists-of-all-time/photo/attachment/05551901jack_20010626_26095-jpg/ VH1 100 Greatest Artists Of All Time], 2010년 9월 3일 작성.</ref>《NME》에서는 2013년 독자 1,000만명 대상 조사 결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 1위로 선정되었다.<ref name="NME">[http://www.nme.com/news/michael-jackson/57469 Michael Jackson tops NME's Greatest Singers poll Read more at http://www.nme.com/news/michael-jackson/57469#ZIXGdDWTkbq4Ke5q.99], 2011년 6월 21일 작성.</ref> 《[[롤링스톤]]》에서는 Rock And Roll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로 35위에 선정했으며<ref>[http://www.rollingstone.com/music/lists/100-greatest-artists-of-all-time-19691231 100 greatest artist]</ref> "마이클 잭슨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예인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목격한 공연 중 최고는 마이클 잭슨이 문워크로 무대를 가로질렀을 때였습니다. 잭슨 이전에는 프랭크 시나트라,엘비스 그리고 비틀즈가 있었습니다. 잭슨은 그들과 위대함을 함께 합니다." 라고 썼다.<ref>[http://www.rollingstone.com/music/lists/100-greatest-artists-of-all-time-19691231/michael-jackson-20110420 Michael Jackson]</ref> 2015년 《빌보드》 에서는 편집자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알앤비 아티스트 1위에 선정되었고<ref>[http://www.billboard.com/photos/6737387/best-r-and-b-singers-of-all-time The 35 Greatest R&B Artists Of All Time]</ref> 보컬 전문지 《Voicecouncil》에서 같은 해 전문 보컬리스트들을 상대로 한 투표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남성 보컬리스트 2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 |url=http://www.voicecouncil.com/who-is-the-singers-singer-top-5-male-vocalists/ |제목=Who is the Singer’s Singer? Top 5 Male Vocalists |확인날짜=2017-08-2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70829081941/http://www.voicecouncil.com/who-is-the-singers-singer-top-5-male-vocalists/ |보존날짜=2017-08-29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2016년 미국 음악 매체 《Consequence of Sound》에서는 편집자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1위에 선정되었고<ref>[https://consequenceofsound.net/2016/11/the-100-greatest-singers-of-all-time/ The 100 Greatest Singers of All Time]</ref> 같은 해 미국 음악 매체 《뮤직타임즈》에서도 편집자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남성 솔로 아티스트 1위를 차지했다.<ref>[http://www.musictimes.com/articles/60105/20160102/michael-jackson-john-lennon-best-male-singers-time.htm Michael Jackson and John Lennon Among the Best Male Singers of All Time]</ref> 2017년 《ThoughtCo》매거진에서는 편집자 선정 가장 위대한 알앤비 & 소울 아티스트 20인의 순위에서 마이클을 1위에 랭크했다.<ref>[https://www.thoughtco.com/greatest-randb-singers-of-all-time-2851645 2017년 ThoughtCo 매거진 선정 가장 위대한 알앤비 & 소울 아티스트]</ref>
 
1984년《타임》지의 음악 평론가 제이 콕스는 "잭슨은 [[비틀즈]] 이후로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엘비스 프레슬리]] 이후로 가장 인기 있는 단일 현상이다. 정확히 가장 인기가 많은 흑인 가수이다"라고 썼다.<ref>{{뉴스 인용|url=http://www.time.com/time/magazine/article/0,9171,950053-1,00.html|last=Cocks |first=Jay |title=Why He's a Thriller |work=[[타임 (잡지)|Time]] |date= 1984년 3월 19일 |accessdate= 2010년 4월 25일}}</ref>[[뉴욕타임즈]]는 "[[팝]] 음악의 [[세계]]에는 마이클 잭슨과 그외 모두가 있다.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킨 마이클 잭슨은 [[대중문화]] 그 자체이지. 단순한 팝 뮤직이 아니다. 이런 가수는 한 시대에 한명 나올까 하는 가수이다. 그는 방송국들의 인종 차별 [[정책]]을 돌파하여 인종 간의 경계를 무너뜨렸으며 흑인 음악을 백인 관객들에게 가져왔다. 그리고 빈민가에서 탈출할 수 있으며, 에너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라고 보도했다.<ref name="nytimes.com">[http://www.nytimes.com/1984/01/14/arts/michael-jackson-at-25-a-musical-phenomenon.html?smid=fb-share&pagewanted=1 MICHAEL JACKSON AT 25: A MUSICAL PHENOMENON]</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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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hriller platinum record, Hard Rock Cafe Hollywood.JPG|200px|섬네일|오른쪽|[[유니버설시티 (캘리포니아주)|유니버설시티]] [[하드 록 카페]]에 전시되어 있는 《Thriller》 플래티넘 레코드]]
잭슨이 죽고나서 얼마 후 2009년 6월 25일 MTV는 작품에 경의를 표하고 기념하기 위해 원래 뮤직비디오 형식을 간략하게 돌아봤다.<ref>{{뉴스 인용|last=Barnes|first=Brokes|title=A Star Idolized and Haunted, Michael Jackson Dies at 50 |url=http://www.nytimes.com/2009/06/26/arts/music/26jackson.html?ref=obituaries|work=The New York Times|date= 2009년 6월 25일|accessdate= 2009년 7월 12일}}</ref> 또한 MTV 유명인과 기타 유명 인사들의 반응을 포함한 실시간 뉴스 특별 방송과 함께 대부분의 시간에 잭슨의 뮤직비디오를 방영했다. MTV 프로그램 방송 시간도 임시적으로 변경되었고, 잭슨의 추도식 생중계가 끝난 다음 주에 원래대로 돌아왔다.<ref>{{웹 인용|title=More adds, loose ends, and lament|url=http://tylerc.com/2009/08/more-adds-loose-ends-lament/|work=The 120 Minutes Archive|date= 2009년 7월 25일|accessdate= 2014년 2월 15일}}</ref> 2009년 7월 7일 열린 추도식에서 [[모타운 레코드]] 설립자 베리 고디는 "지금까지 없었던 가장 위대한 엔터테이너"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title=Farewell to a King|work=People |date= 2009년 7월 20일}}</ref><ref>{{웹 인용|title=Berry Gordy-Brings Mourners To Their Feet With Jackson Tribute |url=http://www.contactmusic.com/news.nsf/story/gordy-brings-mourners-to-their-feet-with-jackson-tribute_1108973|work=Contact Music |date= 2009년 7월 7일 |accessdate=November 26, 2009}}</ref><ref>{{뉴스 인용|title=Michael Jackson hailed as greatest entertainer, best dad|url=http://uk.reuters.com/article/idUKTRE5615KN20090708|agency=Reuters UK |date= 2009년 7월 8일 |accessdate=November 26, 2009}}</ref> 2009년 12월 29일 AFI는 "6월 50세이던 마이클 잭슨의 갑작스런 죽음은 세계적 관심을 받았고 사후 콘서트 리허설 영화 《This Is It》는 전례없는 국제적 찬사를 받았다"라고 말하며 잭슨의 죽음을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했다.<ref>{{뉴스 인용|title=Michael Jackson's Death Among 2009's Major Moments |first=Jill |last=Serjeant |publisher=ABC News |date= 2009년 12월 29일}}</ref> 마이클 잭슨은 미국흑인대학펀드로부터 인문학박사와<ref>{{웹 인용|title=Michael Jackson Achievements|publisher=Michael Jackson|url=http://www.michaeljackson.com/us/node/985184|accessdate=2011년 1월 4일|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1010025538/http://www.michaeljackson.com/us/node/985184|보존날짜=2012년 10월 10일|깨진링크url-status=dead}}</ref> 피스크대학교로부터 명예 인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ref>{{웹 인용|title=Pop Star Michael Jackson Influenced Academics, Received PhD|publisher=Discovery.com|date= 2010년 6월 23일 |url=http://news.discovery.com/human/pop-star-michael-jackson-influenced-academics-received-phd.html|accessdate= 2011년 1월 4일}}</ref>
 
=== 수상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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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은 1980년 [[더 잭슨스]]의 멤버로서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올랐고, 1984년에는 솔로 경력으로 올랐다. 1990년에는 백악관에서 대통령 표창 'Artist of the Decade'상을 수상했다.<ref>[https://love4mj.wordpress.com/2009/11/04/michael-jackson-artist-of-the-decade/amp/ https://love4mj.wordpress.com/2009/11/04/michael-jackson-artist-of-the-decade/amp/]</ref>잭슨은 경력 동안 [[월드 뮤직 어워드]]의 평생공로상과 레전드상 그리고 베스트 셀링 팝 남자 아티스트 오브 더 밀레니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의 아티스트 오브 더 센트리 어워드, 밤비상의 팝 아티스트 오브 더 밀레니엄 어워드, MTV 밀레니엄 아티스트상과 평생공로상를 포함해 수많은 영예와 상을 받았다.<ref name = "Nelson George overview 50-53">George, pp. 50–53</ref><ref>{{웹 인용|url=http://www.hellomagazine.com/celebrities/2002/11/22/michaeljackson/ |title=Michael Jackson and Halle Berry Pick Up Bambi Awards in Berlin |accessdate= 2008년 7월 23일 |work=Hello! |date=November 22, 2002}}</ref> 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두 번 입성했는데, 1997년에는 잭슨 파이브의 멤버로서 2001년에는 솔로 경력으로 올랐다. 이 외에 1999년 보컬 그룹 명예의 전당(잭슨 파이브의 멤버로), 2002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ref name = "Nelson George overview 50-53"/> 2004년에는 영국음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ref>[http://www.michaeljackson.com/legacy/uk-music-hall-fame/ http://www.michaeljackson.com/legacy/uk-music-hall-fame/]</ref> 2014년에는 R&B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했다.<ref>[http://www.michaeljacksonsmuseum.com/events/rb-music-hall-fame-inducting-michael-jackson/ http://www.michaeljacksonsmuseum.com/events/rb-music-hall-fame-inducting-michael-jackson/]</ref> 잭슨은 13번의 [[그래미상]](뿐만 아니라 그래미 살아있는 전설상과 평생공로상도 수상)을 수상했으며 26번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세기의 아티스트상"과 "특별공로상" 포함) 수상하였는데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는 최다 수상 기록이다.<ref>{{웹 인용|url=http://www.billboard.com/articles/news/1044523/hot-100-anniversary-most-no-1s-by-artist |title=Hot 100 Anniversary: Most No. 1s By Artist |work=Billboard |accessdate= 2013년 3월 16일}}</ref> Thriller 앨범은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미국 의회
도서관에 영구보존작으로 선정되었고<ref>[http://www.rollingstone.com/music/news/thriller-added-to-library-of-congress-registry-20080515 http://www.rollingstone.com/music/news/thriller-added-to-library-of-congress-registry-20080515]</ref> Off The Wall 앨범과 함께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도 등재되었다.<ref>[https://www.grammy.com/grammys/awards/hall-of-fame https://www.grammy.com/grammys/awards/hall-of-fame]</ref> 또한 세계적으로 3억 2000만장~5000만장 정도의 음반 판매량을<ref name="ImpreMedia one">{{뉴스 인용|url=http://www.impre.com/la-gente-dice/viewArticle.action?articleId=281474978979962|title=Michael Jackson's 'Bad' Gets a Revamp and More Inflated Sales!|date= 2012년 5월 12일|first=David|last=Lara|work=Impre|publisher=[[ImpreMedia]]|accessdate= 2013년 1월 17일}}</ref><ref name="MJ AFP">{{뉴스 인용|url=http://www.n24.de/news/newsitem_4876713.html|title=Michael Jackson verklagt Auktionshaus|date= 2009년 3월 5일|work=[[N24 (Germany)|N24]]|accessdate= 2013년 1월 10일|language=독일어}}</ref><ref name="MJ Kleinezeitung">{{뉴스 인용|url=http://www.kleinezeitung.at/nachrichten/leute/1644954/index.do|title=Ansturm auf Tickets für Michael Jackson-Konzerte|date= 2009년 3월 8일|work=[[Kleine Zeitung]]|location=Austria|accessdate= 2013년 1월 10일|language=독일어}}</ref> 기록하면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 음악가 목록|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 음악가]] 중 한명이 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reuters.com/article/idUSTRE52A44W20090311 |title=Michael Jackson to add concerts after sellout |agency=Reuters |date= 2009년 3월 11일 |accessdate=November 10, 2010 |first=Mike |last=Collett-White}}</ref><ref>{{웹 인용 |url=http://www.grammy.org/recording-academy/awards/legends |title=GRAMMY Legend Award |publisher=[[National Academy of Recording Arts and Sciences]] |accessdate=2011년 9월 5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122042621/http://www.grammy.org/recording-academy/awards/legends |보존날짜=2011년 1월 22일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ref name="Lifetime Achievement">{{웹 인용|url=http://www.grammy.org/recording-academy/awards/lifetime-awards |title=Lifetime Achievement Award |publisher=[[National Academy of Recording Arts and Sciences]] |accessdate= 2011년 9월 5일}}</ref><ref>{{웹 인용|url=http://news.google.co.uk/newspapers?id=ZMwgAAAAIBAJ&sjid=tmoFAAAAIBAJ&pg=3529,2860414&dq=american+music+awards&hl=en |title=List of American Music Awards winners |work=Sun Journal |date= 2000년 1월 18일 |accessdate= 2010년 6월 16일}}</ref><ref>{{웹 인용|url=http://news.google.co.uk/newspapers?id=essyAAAAIBAJ&sjid=bskEAAAAIBAJ&pg=3817,2301247&dq=american+music+awards&hl=en |title=Santana wins top album honors at American Music Awards |work=Times Daily |date= 2000년 1월 18일 |accessdate= 2010년 6월 16일}}</ref> 세계음반판매량 정보 사이트 'Mediatraffic'에 의하면 잭슨은 비틀즈와 엘비스 프레슬리에 이어 전체 앨범 누적 판매량 3위를 기록하고 있으며<ref>[http://www.mediatraffic.de/top-album-achievements.htm http://www.mediatraffic.de/top-album-achievements.htm]</ref> 단일 앨범으로는 Thriller 앨범이 6,600만장으로 1위(미국 내에서도 3,300만장의 판매고로 가장 많이 팔린 앨범<ref>[https://www.riaa.com/gold-platinum/?tab_active=top_tallies&ttt=T1A#search_section https://www.riaa.com/gold-platinum/?tab_active=top_tallies&ttt=T1A#search_section]</ref>), Bad 앨범이 3,200만장으로 10위, Dangerous 앨범이 3,000만장으로 16위. Off The Wall 앨범이 2,000만장으로 69위, HIStory 앨범도 2,000만장으로 70위를 마크하고 있다. 즉 성인 이후 발표한 정규앨범 6장 중 5장이 100위 안에 든 것이다.<ref>[http://www.mediatraffic.de/alltime-album-chart.htm http://www.mediatraffic.de/alltime-album-chart.htm]</ref>
 
=== 세계적 인기 ===
[[대한민국]]에서는 [[1984년]] [[신문]] 기사를 보면 "한창 인기가 절정이던 [[조용필]]의 이름은 몰라도 마이클 잭슨의 이름을 모르는 젊은이는 없다던가. [[국민학교]] [[어린이]]까지도 그의 노래에 열광한다"라고 보도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3210020920102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3-21&officeId=00020&pageNo=1&printNo=19220&publishType=00020</ref> 초등학교 5학년-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유일하게 외국인으로 마이클 잭슨이 뽑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5050032921001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5-05&officeId=00032&pageNo=10&printNo=11878&publishType=00020 어린이들의 偶像(우상) 프로야구선수 많다]</ref> 또한, 국민학교 어린이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세계적으로 존경하는 인물 조사에서 [[링컨]],[[레이건]],[[에디슨]]에 이어 4위로 뽑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10400209205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5-01-04&officeId=00020&pageNo=5&printNo=19463&publishType=00020</ref> [[전라남도]] [[다도해]]라는 먼 시골에서도 섬사람들이 [[청바지]] 차림을 하고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불렀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4160032920300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4-16&officeId=00032&pageNo=3&printNo=11861&publishType=00020</ref> 2015년에는 SBS
연예가중계가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남성 팝 아티스트' 부분에서 1위로 선정됐다.<ref>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96556 </ref>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도 [[유학]] 시절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ref>http://imnews.imbc.com//replay/2011/nwdesk/article/2988583_13062.html</ref>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 선전용 동영상에다 잭슨과 라이어넬 리치가 작사/작곡한 'We Are the World'의 음을 무단으로 도용했다.<ref>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0100&num=98673</ref> 잭슨 열풍은 옆 국가인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는 잭슨이 '태풍 마이클' 로 불렸으며, 켄 오타케 소니 뮤직 일본 사장은 "마이클 잭슨은 비틀즈 이후로 일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엔터테이너이며 일본 사람들의 마음에 항상 남아있는 존재" 라고 말했다.<ref>[http://www.billboard.com/articles/news/268216/michael-jackson-remains-a-global-phenomenon?page=0%2C4 Michael Jackson Remains A Global Phenomenon]</ref> [[아프리카]]에 까지도 잭슨의 이름이 알려져 인종차별을 해소하고 있다고 보도됐다.<ref name="경향신문."/> [[1984년]] [[이라크]]와 [[이란]]의 전쟁 당시 이라크에서는 '마이클 잭슨 작전'을 세워, 이란 전선을 향해 밤낮으로 쉴틈없이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트는 심리 작전을 펼쳤다고 한다.<ref>[조선일보 1984년 5월 15일 이라크전 마이클 잭슨 작전. 이란 진영 겨냥 TV로 매일 방영]</ref><ref>{{웹 인용 |url=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302/200302130449.html# |제목=[이규태 코너] 마돈나의 反戰歌 |확인날짜=2015-05-11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923203021/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302/200302130449.html# |보존날짜=2015-09-23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인도]]에서도 잭슨의 인기는 엄청 나다. 가장 유명한 서양 아티스트로 잭슨의 인기는 인도 전 지역에 퍼져있으며 어떤 마을로 가도 사람들이 마이클 잭슨을 안다고 한다. 'Ahir Bhairab Borthakur'씨는 잭슨을 대체할 뮤지션은 없다고 말했다.<ref>[http://www.billboard.com/articles/news/268216/michael-jackson-remains-a-global-phenomenon?page=0%2C4 Michael Jackson Remains A Global Phenomenon]</ref> 잭슨이 공연을 한번도 하지 않은 [[파키스탄]]에서도 마찬가지로, 파키스탄 사람들에게 마이클 잭슨은 [[코카콜라]]와 [[유비쿼터스]] 같은 존재라고 한다.<ref>[http://www.huffingtonpost.com/nosheen-abbas/pakistan-mourns-michael-j_b_224790.html Pakistan Mourns Michael Jackson]</ref> 폐쇄적인 기조를 유지한 [[중국]]에서도 마이클은 많은 인기가 있었다.<ref>[http://www.billboard.com/articles/news/268216/michael-jackson-remains-a-global-phenomenon?page=0%2C4 Michael Jackson Remains A Global Phenomenon]</ref> 45세의 한 중국인은 "80년대 마이클 잭슨의 음악은 개방 시대를 처음 맞은 중국인들에겐 서양 문화를 상징하는 주제곡이었다."라고 말했다.<ref>[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Y=2009&M=06&D=27&ID=2009062700142 팝으로… 스캔들로… 세계 대중문화 들썩인 '아이콘']</ref>
 
잭슨은 [[공산주의]] 국가들에게는 엄청난 골칫거리였다. [[1988년]] [[서독]]의 [[베를린]] [[Bad Tour]]를 앞두고 [[동독]]의 비밀경찰인 [[슈타지]]가 바짝 긴장했었다는 비밀문서가 공개됐다. 당시 독일은 분단국가로 [[베를린 장벽]]을 사이에 두고 자유진영인 서독과 공산진영인 동독으로 나뉘었는데 슈타지는 장벽 인근에서 열릴 잭슨의 공연으로 인한 사회 혼란을 우려했다. 잭슨의 공연을 보기 위해 동독 청년들이 장벽 쪽으로 몰려가면 수습하기 힘든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슈타지는 고민 끝에 대형 스크린으로 잭슨의 공연을 중계하여 동독 청년들이 장벽 쪽으로 몰려가는 것을 막는 계획을 세웠으나 정작 공연이 열리는 날 이 계획은 시행되지 않았다. 결국 청년들은 잭슨의 노래를 듣기 위해 장벽으로 몰려 동독의 [[경찰]]들은 이를 막기 위해 진입하는 등 유혈사태가 일어났다.<ref>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731601003</ref> 한편 러시아에 대항하여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체첸공화국]]의 지도자 'Salman Raduyev' 은 체첸 사람들에게 'Michael Jackson' 으로 불렸다. 체첸인들은 그가 마이클 잭슨의 노래인 'Heal the World'의 독립투사 버전이라고 믿었다.<ref>http://www.haaretz.com/weekend/magazine/paradise-lost-1.225342</ref> [[멕시코]]에서는 마이클 잭슨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하여 멕시코시티 [[광장]]으로 1만 4천명이 집결하여 잭슨의 노래에 맞춰 춤을 선보였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플래쉬몹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ref>http://www.nydailynews.com/entertainment/michael-jackson-fans-mexico-city-set-world-record-largest-thriller-dance-article-1.403320</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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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피부색이 변화한 이유로 흔히 언급되는 [[백반증]]은 1986년 공식적으로 진단을 받았으며, 사후 부검 결과에도 이같은 사실이 공개적으로 확인됐다.<ref name="Alan Duke">[http://edition.cnn.com/2013/05/07/showbiz/jackson-death-trial/index.html Autopsy reveals Michael Jackson's secrets], 2015년 확인.</ref> 백반증의 구체적인 발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체 인구의 1-2%가 걸리는 흔한 질병이다. 마이클 잭슨은 1993년 자신은 탈색제를 바르지도 않았고 병에 의해 이렇게 된 것일 뿐이라며 부정했다. 1993년 잭슨의 주장 이후 피부과 의사들은 백반증에 의해 피부색이 변할 수 있지만 잭슨처럼 완전히 하얘지려면 탈색제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ref>[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ID=9302181704&FV=마이클 14년만에 토크쇼출연 피부표백설 부인]</ref> 실제로 백반증 치료에는 백반증이 심하게 진행될 경우 완전히 하얀 피부로 착색시키는 시술이 존재한다. 마이클 잭슨의 친어머니 캐서린 잭슨은 2011년 다큐멘터리에서 자신의 아들은 병으로 피부가 알록달록 변하는 게 싫어 탈색제를 발랐었다고 말했다. 마이클 잭슨 사망 이후 그의 침실에서 피부 미백크림이 발견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192210 마이클잭슨 방에서 미백크림 발견]</ref> 잭슨의 피부과 주치의 아놀드 클레인은 백반증으로 고생하는 잭슨에게 자신이 탈색제를 추천했었다고 증언했다.
 
1988년 마이클 잭슨은 사진작가 'William Pecchi Jr'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배웠고 항상 그렇게 믿는다. 난 모든 사람들이 피부 색깔로 인해 증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지구상의 모든 인종을 사랑해요."<ref>{{웹 인용 |url=http://www.juliensauctions.com/auctions/2009/music-icons/michael-jackson-16.html |제목=Michael Jackson handwritten letter regarding "Moonwalker |확인날짜=2015-06-21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19052532/http://www.juliensauctions.com/auctions/2009/music-icons/michael-jackson-16.html |보존날짜=2014-02-19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잭슨은 자신의 자서전 'Moonwalk'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젊은 시절 많은 [[여드름]]으로 인해 무척이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사람들의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 했다고 한다. 이를 고치기 위해 식단을 [[채식]]으로 바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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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보컬에 대해 가수 나얼은 "지금 들어도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워요. 스티비 원더와 함께 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죠. 솔로보다 잭슨스 시절의 음악을 더 좋아해요. 완전히 흑인스러운 느낌을 다 가지지 않아 더 신선했죠. 잭슨의 보컬이 너무 독보적이어서 그런 차이를 느끼는 것 같기도 해요. 보컬이 사실 말도 안 될 만큼 대단하잖아요."라고 평가했고<ref>[http://m.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050308DT11520547698 http://m.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050308DT11520547698]</ref><ref>[http://m.music.naver.com/recommend/magazine.nhn?articleId=3356 http://m.music.naver.com/recommend/magazine.nhn?articleId=3356]</ref> 가수 김범수는 "마이클 잭슨의 어릴 때 미성은 흉내내기도 어려울 만큼 너무 예쁘고, 멋있고, 훌륭해요. 어린 나이에도 그런 성숙한 표현력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워요."라고 평가했다.<ref>[http://www.playdb.co.kr/magazine/Musician_Detail.asp?no=9&seq=7&Page=&flag=Mu&memopageno=1 http://www.playdb.co.kr/magazine/Musician_Detail.asp?no=9&seq=7&Page=&flag=Mu&memopageno=1]</ref> 모타운 창립자 베리 고디는 "그는 제임스 브라운과 재키 윌슨처럼 노래하고 춤췄으며, 인간의 슬픔과 열정을 담아 스모키 로빈슨의 'Who´s Loving You'를 불렀다. 그의 실력은 놀라웠다. 30살의 감성으로 노래를 불렀다. 마이클은 스모키보다 더 뛰어났다. 나는 스모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봐, 마이클이 그 노래를 잘 알고 있더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라고
관련 일화를 밝힌 적도 있다.<ref>[https://m.huffpost.com/us/entry/3428237 https://m.huffpost.com/us/entry/3428237]</ref> 토니 스클라파니 음악평론가는 "잭슨은 깜짝 놀랄 정도의 천부적인 노래 실력으로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이미 11살의 나이에 대부분의 성인 보컬리스트들보다도 더한 능숙함과 열정으로 "I Want You Back,” “ABC,” “The Love You Save”, “I’ll Be There”과 같은 빌보드 1위 곡들을 배출했다."라고 평했고<ref>[https://www.today.com/amp/popculture/jackson-changed-course-music-society-2D80556022 https://www.today.com/amp/popculture/jackson-changed-course-music-society-2D80556022]</ref> 가수 레니 크레비츠는 "사람들은 주로 마이클의 경이로운 솔로 커리어를 말하곤 하는데 물론 그건 분명한 사실이죠.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마이클이 천재성을 가장 유감없이 발휘했던 시기는 어린 시절이에요. 아이였지만 제임스 브라운이나 아레사 프랭클린, 그 어떤 위대한 보컬리스트와도 같은 재능과 소울, 깊이를 가지고 노래했죠."라고 평가했다.<ref>[http://archives.cnn.com/TRANSCRIPTS/1112/21/pmt.01.html http://archives.cnn.com/TRANSCRIPTS/1112/21/pmt.01.html]</ref> 또 레온틴 해스 보컬 트레이너는 "어린 시절의 마이클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정도의 발성 기술이 필요하다. 복성부터 두성, 빠른 발음과 팔세토, 거기에 High G에서 High A까지 자유롭게 넘나드는 보컬 톤.. 마이클은 확실히 보컬의 모든 면에서 천재적이었다. 마이클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굉장한 음역대를 이전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방법으로 발성 운동과 결합시켰다. 거의 오페라 가수 수준으로. 마이클은 무엇보다도 감정표현에 탁월했다. 저음역대로 노래를 부르다가도 초고음 팔세토로 순식간에 넘어가곤 했는데 이럴 때에도 그의 감정은 전혀 흐트러짐이 없이 완벽하게 유지되었다."라고 평가했고<ref>{{웹 인용 |url=http://www.voicecouncil.com/teaching-voice-to-michael-jackson/ |제목=http://www.voicecouncil.com/teaching-voice-to-michael-jackson/ |확인날짜=2017-11-05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71107011438/http://www.voicecouncil.com/teaching-voice-to-michael-jackson/ |보존날짜=2017-11-07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양재영 음악평론가는 "실제로 변성기 이전의 소년 마이클 잭슨은 고음역의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다이아나 로스식의 물 흐르는 듯한 보이스 테크닉을 결합한 독특한 보컬 스타일을 선보이면서, 잭슨 파이브가 1970년대의 포문을 여는 최초의 스타 팝 밴드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보컬리스트로서 마이클의 천재적 역량은.. 특히 'I’ll Be There'는 순수하면서도 혼란스러운 10대의 감성을 마이클의 생기 넘치는 목소리를 통해 육화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이후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을 아우르며 무수히 양산되는 ‘1970년대식 틴 팝’을 위한 교과서 역할을 하였다. 모타운 시절의 잭슨 파이브를 단순히 10대 취향의 팝 그룹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흑인음악 자체의 맥락에서 평가하자면, 잭슨 파이브는 당시 보컬을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오로지 비트만을 강조하던 디스코의 대세에 제동을 걸 수 있었던 유일한 뮤지션이었다. 마이클의 보컬은 주류 디스코 사운드에 대한 대안일 뿐 아니라 흑인음악의 근간을 이루었던 아프로-아메리칸 가스펠/발라드 전통의 급락을 위한 촉매제 역할까지 하였다."라고 평가했다.<ref>[http://www.weiv.co.kr/archives/13106/amp http://www.weiv.co.kr/archives/13106/amp]</ref> 가수 비욘세는 "제가 처음 가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 저의 첫 프로듀서는 제가 마이클의 'Who's Loving You' 라이브 퍼포먼스를 계속 보게 했어요. 몇 시간이고 계속 반복해서 저에게 보여줬죠. 프로듀서가 원했던 건 제가 마이클의 소울을 느끼길 바랐던 거에요. 정말 그걸 느낄 수 있었죠. 마이클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 없는 어린아이였지만 베테랑이었어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다 큰 성인들보다도 더 감정을 잘 표출했죠. 그건 너무나도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것이었어요. 마치 신이 주신 것 같았죠. 마이클은 제게 때로는 테크닉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와 같은 고민을 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내가 느낀 감정 그대로 가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는 걸 가르쳐줬어요. 마이클은 정말 저를 변화시켰어요. 덕분에 오늘날의 비욘세가 있게 됐죠."라고 관련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ref>[http://www.billboard.com/articles/columns/the-juice/6140752/beyonce-tribute-letter-michael-jackson-5-year-death http://www.billboard.com/articles/columns/the-juice/6140752/beyonce-tribute-letter-michael-jackson-5-year-death]</ref>
 
성인 시절의 보컬에 대해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잭슨은 그 목소리만으로도 흑백을 통틀어 역대 팝 보컬리스트 중 열 명 안에 꼽아 억울할 게 없는 인물일 것"이라며 "선율의 기본을 맛깔스럽게 훑어내면서도 때때로 소울풀하게 내지르는 테크닉은 흑인 가수로서 그의 본령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든다. 팝 발라디어로서의 능력이라면 더욱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평생 댄스 음악을 달고 다녔던 가수로서는 정말 드물게, 아니 거의 유일하게, 그의 발라드 능력은 동급 대비 최강의 감미로움을 더한다. 각 소절을 각각 다른 느낌으로 미세하게 바꿔 부르는 능력, 가사의 한 결 한 결을 섬세하게 짚어내는 전달능력.. 동시대를 살다간 록의 거장들조차 잭슨의 보컬의 위대함은 쉽게 무시하지 못했다. 스릴러 앨범으로 록/팝/소울 부문을 모두 휩쓴 것은 이미 전설이 되버린 기록일 뿐더러 수준급의 록 보컬리스트를 뺨치는 댐핑함, 당대 탑 메탈 보컬리스트들이라도 좌절감을 느꼈을 만큼 무시무시하고 러프한 샤우팅 그리고 'Smooth Criminal'의 기가막힌 팔세토와 'Beat It'이나 'Jam' 등이 들려주는 속도감에 위협받지 않는 탄력적 딜리버리도 록커 잭슨의 포텐셜을 증명한다. 발라드, 댄스, 록을 모두 잘 부르는 가수는, 내 기억이 맞다면, 마이클이 유일하다. 그리고 그 수준은 그 어느 장르에서도 존경받을 만한 정도였다. 의심할 바 없이."라고 평가했다.<ref>[https://m.cafe.naver.com/musicy/9289 https://m.cafe.naver.com/musicy/9289]</ref> 오페라 테너 네일 쉬코프는 "그 어떤 테너도 마이클 잭슨과 같은 수준으로 데시벨이 올라간 적은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정말로 질투를 느끼는 부분은, 전대미문의 케이스로, 빠르게 노래하는 동시에 안정적으로 High C를 유지하는 그의 천재성이에요."라고 평가했고<ref>[http://people.com/archive/the-last-word-on-michael-vol-22-no-26/ http://people.com/archive/the-last-word-on-michael-vol-22-no-26/]</ref> Ice J 음향엔지니어는 "마이클 잭슨은 선천적인 미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스릴러 앨범부터 강한 액센트를 사용하고 비브라토를 강하게 사용하는 창법을 유지했다. 이런 창법이 상당히 고난이도인데 지르지 않고 강하게 발음하는 것은 그냥 서서 부르기만 해도 숨이 찰 것이다."라고 평가했다.<ref>[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icej10&logNo=60104771571&categoryNo=30&proxyReferer=https://www.google.co.jp/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icej10&logNo=60104771571&categoryNo=30&proxyReferer=https://www.google.co.jp/]</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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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직비디오 및 안무 ===
잭슨은 자신의 노래와 춤답게 뛰어난 [[뮤직비디오]]도 선보였다.<ref>[Chery, Carl: XXL: Michael Jackson Special Collecters Edition, page 95. American Press.]</ref> 복잡한 스토리 라인과 특유의 댄스 효과 등이 돋보인다. 'Thriller' 뮤직비디오는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인 뮤직비디오로 선정돼 기네스북에 등재됐다.<ref>{{웹 인용 |url=http://uk.news.launch.yahoo.com/dyna/article.html?a=%2F14112006%2F344%2Fjackson-receives-world-records.html&e=l_news_dm |제목=NEWS - Jackson receives his World Records |확인날짜=2011년 5월 27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527045635/http://uk.news.launch.yahoo.com/dyna/article.html?a=%2F14112006%2F344%2Fjackson-receives-world-records.html&e=l_news_dm |보존날짜=2011년 5월 27일 |깨진링크url-status=아니오live }}</ref> 그의 뮤직비디오 안무는 [[필리핀]]의 한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춤을 추며 패러디 하여 5400만이라는 조회수를 기록했다."Thriller" 만화 영화인 [[슈렉]]에도 응용됐다.'Billie Jean'의 안무는 그가 존경하는 많은 댄서들의 안무를 응용하여 만들었으며,'Beat it'은 맨 처음 잭슨이 소리를 지르며 장치를 통해 관중들 위로 올라와 봉을 잡고 위험한 동작을 연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독무로 후반부는 군무로 진행된다.'Thriller'는 [[HIStory World Tour]]부터는 [[마술]]을 활용했다.'Human Nature'는 발라드로 공연마다 안무가 계속해서 바뀌었다. [[Dangerous World Tour]]때부터는 한 여성팬을 추첨하여 무대 위로 올라오게 하여 잭슨과 껴안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마틴 스콜세지와 협력하여 만든 'Bad'의 뮤직비디오는 총 19분으로 그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성적 이미지와 안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I Just Can’t Stop Lovin’ You' 에서는 잭슨은 때때로 여자의 신체 부위를 직접적으로 만지는 장면을 보여줬다. 또한 그는 자신의 가랑이를 잡는 특유의 행동을 보였는데 1993년 [[오프라 윈프리]]쇼에서 그런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며 계획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Man in the Mirror'에서는 [[스핀]] 동작이 자주 활용됐다.'Smooth criminal'의 뮤직비디오는 45도 각도로 기울어지는 춤을 선보이며 단편영화 'Moonwalk'에서도 제작돼 뛰어난 안무를 보여줬다. 'Leave Me Alone'은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단편 뮤직비디오 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여러 시상식에서 많은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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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는 마이클 잭슨의 생전 마지막 해외 투어가 한국 서울에서 개최된다.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이 열렸고 이는 [[SBS]]에서 생중계를 해줬으며 최고 42.3%의 시청률을 기록한다.
당시 SBS 인기 시트콤에 출연중인 미달이가 등장하여 꽃다발을 전해주었다.<ref name="연합뉴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4535658 마이클 잭슨 공연 시청률 최고 42.3%], 2015년 확인.</ref> 잭슨은 공연 중 [[통일]]이 되면 반드시 또 다시 와서 공연을 개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사망함으로 끝내 그 약속은 지키지 못 했다.<ref>{{웹 인용 |url=http://tvpot.daum.net/v/vd601KGoNWooNZJJWWGN1Gf |제목=10년전 마이클잭슨이 한국팬들과 한 약속 |확인날짜=2015-03-2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402114337/http://tvpot.daum.net/v/vd601KGoNWooNZJJWWGN1Gf |보존날짜=2015-04-02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 음반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