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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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 붕괴 이후 ====
{{참고|10.26 사건}}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암살당하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진압 명목으로 등장하자 그는 [[전두환]]이 사태를 수습할 것이라고 보았다.<ref name="대선">{{웹 인용 |url=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4/03/02/200403020500004/200403020500004_5.html |제목=동아일보 매거진::신동아<!-- 봇이 붙인 제목 --> |확인날짜=2009-04-08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40630052422/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4/03/02/200403020500004/200403020500004_5.html |보존날짜=2004-06-30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12월 12일]] 저녁 [[연세대학교]] [[이기택]] [[교수]]의 연락을 받았다. 이기택으로부터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정보과로부터 계속 정보를 듣고 있는데, [[12·12 사태]]가 진압되고 [[정승화]]를 체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사태를 수습하는 게 아니라 정권을 잡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ref name="대선"/>
 
[[12월 12일]] [[12.12 사태]]가 터졌다. [[12월 12일]] 오전 강원용은 [[김영삼]]에게 전화를 걸어 [[12월 13일]] 아침 남산에 있는 식당에서 만나 [[김영삼]]에게 [[김대중]], [[김종필]]과 함께 계엄을 해제시키고, 그 뒤 [[김종필]]은 [[김종필]]대로 가게 하고, [[김대중]]과 손을 잡도록 권고하였다. 손을 잡는 조건으로 [[대통령]]은 [[김영삼]]이 먼저 하고 그 대신 당총재는 [[김대중]]에게 주며, 4년 후에 가서 경선을 하자고 조건을 제시하였다.<ref name="대선"/> 그러나 [[김영삼]]은 우리는 민주주의 신봉자니까 대통령후보든 당 총재든 전당대회에서 민주적으로 결정해야지, 우리끼리 약속을 하고 말고 하는 게 아니라며 강원용의 타협안을 거절하였다. 강원용은 당에서는 절대 다수가 [[김영삼]] 세력이었으니까 조건을 못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아니냐며 [[김영삼]]을 비난하였다.<ref name="대선"/>
 
[[12월 14일]] 아침 강원용은 [[김대중]]을 방문, [[대통령]]을 [[김영삼]]에게 양보를 요구하였다.<ref name="대선"/> [[박정희]]가 사상공세를 한 상황에서 대통령 되기가 어렵다고 지적하고 그러니까 이번에는 [[김영삼]]을 대통령에 앉히고 대신 당권을 쥔 다음 4년 후에 나가라고 권유하였다.<ref name="대선"/> 그러나 [[김대중]]은 군(軍)이란 세계를 모른다며, 군은 통수권자에게 절대 복종한다. [[박정희]]가 있을 때는 [[박정희]]가 통수권자니까 거기에 충성했지만 이제 [[박정희]]는 죽었다. 장군들이 그 다음엔 내가 대통령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내게 충성하고 들어올 것이다라는 이유를 들어 그의 요구를 거절하였다.<ref name="거절1">{{웹 인용 |url=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4/03/02/200403020500004/200403020500004_6.html |제목=보관 된 사본 |확인날짜=2012-02-23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0516070154/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4/03/02/200403020500004/200403020500004_6.html |보존날짜=2009-05-16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이후 강원용은 계엄령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원인을 민족의 미래보다 개인적인 야심을 앞세운 정치인들의 잘못이라 하며 이를 질타하였다.<ref name="거절1"/>
 
==== 제5공화국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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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후반 ===
==== 제6공화국 시절 ====
[[1988년]] [[대한민국 제6공화국|제6공화국]] 출범 뒤에는 방송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ref name="약력1"/> [[1988년]] 강원용은 [[대통령]] [[노태우]]로부터 [[국무총리]]직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www.kdchurch.or.kr/kang/# |제목=경동교회 강원용 소개 |확인날짜=2009-04-08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0717143126/http://kdchurch.or.kr/kang/# |보존날짜=2007-07-17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1989년]] [[12월 7일]]부터 [[12월 9일]]까지 방송위원회 직원연수에 참석하고 돌아왔다.<ref name="기념사7"/> 88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폐막된 뒤 [[1989년]] 서울올림픽 진행에 대한 공로로 대통령 [[노태우]]로부터 대한민국 청룡(靑龍) 훈장을 수여받았다.<ref name="세부사항"/> 한편 [[노태우 정부]]는 그에게 [[총리]]직을 제의했으나 당시 민자당 대표이던 김영삼의 반대로 좌절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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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첩사건 조작론에 대한 견해 =====
한편 일부 운동권 세력 내에 [[사회주의]] 세력이 있었다는 점과 꼬투리 잡힐 짓을 했다는 증언을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 이후 [[1967년]] 민비련(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1979년]]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 [[남조선민족해방전선]]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자 [[2004년]] 월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간첩조작사건 재평가에 대해 [[인혁당 재건위 사건]], 민청학련 사건,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 [[남조선민족해방전선]]<ref>{{웹 인용 |url=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4/03/02/200403020500004/200403020500004_4.html |제목=(강원용 목사의 체험 한국 현대사 ④) 12·12 직후 만난 DJ, "군인들은 내게 충성할 것" 신동아 2004년 03월호(534호) 4면 |확인날짜=2009-04-08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40703081130/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4/03/02/200403020500004/200403020500004_4.html |보존날짜=2004-07-03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중에는 전혀 근거없는 사건들도 많았지만, 이런 사건들이 100% 조작된 것은 아니며 꼬투리 잡힐 구실을 만들어서 잡혔는데, [[박정희]] 정권이 이 꼬투리를 확대, 과장한 것이라고 진술하였다.<ref name="흑백1">{{웹 인용 |url=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4/03/02/200403020500004/200403020500004_5.html |제목=(강원용 목사의 체험 한국 현대사 ④) 12·12 직후 만난 DJ, "군인들은 내게 충성할 것" 신동아 2004년 03월호(534호) 5면 |확인날짜=2009-04-08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40630052422/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4/03/02/200403020500004/200403020500004_5.html |보존날짜=2004-06-30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그에 의하면 '100% 사실이라거나 100% 조작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양쪽 다 똑같은 흑백논리'라고 밝혔다.<ref name="흑백1"/>
 
또한 [[2004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는 직원 6명이 [[금서]](금지된 책)를 읽었는데 이것을 정부가 확대, 과장해서 [[반공법]]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부풀린 것이라 하였다.<ref name="gan1"/> 이 때문에 그가 보수 세력에 투항했다, 타협했다는 인신공격이 나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