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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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7년]](태조 6년) [[우의정|우정승]]으로 그해 [[10월]] 가례 도감(嘉禮都監) 제조에 겸임되었다.
 
[[1399년]], 등극사(登極使)로 임명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귀국 직후 [[1400년]] [[11월]] 문하부판사(門下府判事)가 되고 [[1401년]], [[조선 태종|태종]]이 즉위한 뒤에도 [[의정부]] [[좌의정|좌정승]](左政丞)에 임명되었고 그해 [[7월]] 병으로 사직하였다. 이듬해인 [[1402년]]에 영사평부사(領司平府事)로써 이무(李茂), 이회(李薈) 등과 함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를 편찬하였고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봉해진 뒤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1407년]], 사망하였고 사후 익원(翼元)의 [[시호]]가 [[추증]]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1>{{웹 인용 |url=http://seoul600.visitseoul.net/seoul-history/inmul/jojeon/1/68.html# |제목=서울육백년사/김사형 |확인날짜=2009-01-28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40821013442/http://seoul600.visitseoul.net/seoul-history/inmul/jojeon/1/68.html# |보존날짜=2004-08-21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개국공신 중에서 [[조선 태조|태조대왕]]이 극진히 아낀 신하들 중의 한 사람이며 신중하고 분수를 지키는 처세로 벼슬을 지냈으며 벼슬을 하면서 한 번도 탄핵받은 일이 없었다.<ref name=autogenerated1 />